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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6.29 | 조회수 : 124

제목 : 튀니지와 서방 그리고 값비싼 오해 (2022.06.27)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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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의 봄’ 이후 튀니지에서 나타난 정치계급과 서구의 파트너들 간 관계는 여러 오해로 특징지어졌고, 이는 당사자들 사이에 많은 실망을 안겨주었다.

오해 중 하나는 2011년 이후 튀니지의 지배 엘리트들이 이전 체제를 해체하고 단순히 민주적 체제로 전환하는 것이 튀니지의 필요와 권리를 충족시키고 서구의 지속적인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었던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체제는 전 정권의 붕괴가 사회 내 많은 계층들의 생활 여건의 악화로 인해 발생했다는 교훈을 배우지 못했다.

역사적 오해

튀니지에서 서방이 이루고자 하는 주된 도전은 독재 정치를 벗어나 다른 아랍국가들이 ‘아랍의 봄’의 서사를 바탕으로 본받을 수 있는 모델로서 민주적 경험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튀니지는 민주주의를 위한 모델이 되는 것에 열광하지 않았고, 서방 역시 설득력 있는 계획을 구체화하지 않았다. 특히 서방은 이러한 목표를 위해 자신들의 자원을 동원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정치적 오해

서방은 튀니지에서 민주적 전환의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행동했다. 튀니지 내 새로운 정치계층 민주적 경험에서 최소한의 성공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었. 서방 강대국들 튀니지에서 새로운 체제가 경험 부족과 통치 효율성에 대한 회의감에도 불구하고 국가 업무를 수행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을 테러리즘, 불규칙적인 이민의 위험에 면역될 수 있다는 이해 관계에 따라 행동하고 있었다.

유럽과 미국을 포함한 서방은 민주적 전환의 과정에서 직면하는 어려움과 실망, 정치 엘리트들에 대한 신뢰성 하락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았다. 민주적 실천을 위한 공식적인 틀에 대한 초점은 실질 그 이상이었다. 선거, 헌법, 의회, 정치적 다원주의가 존재하는 한 우려할 이유가 없다는 인상이 지배적이었다.

정치적 오해의 가장 큰 원인은 튀니지에서의 우선순위가 지배 엘리트들의 목표와 다르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튀니지에서의 경험에 대해 낙관론적이었던 서방과 달리 튀니지 현실에 대해 현지 내부 여론은 더 미묘하게 현실적이었다. 그리고 튀니지인들은 2011년 이후 획득한 정치적, 언론의 자유에 여전한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정치인들의 행동과 경제 상황의 악화로 인해 정치인들과 정부기관들에 대한 신뢰는 약화되었다.

경제적, 사회적 난국

2011년 이후 정치계층은 국가가 스스로 달성해야 할 도전에 대해 깨닫지 못했다. 오히려 일부 정치계층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을 약 2000억 달러만큼 재건한마셜 플랜(Marshall plan, 유럽 부흥 계획)'과 같은 규모의 외부 지원을 꿈꿨다. 특히 지배층은 경제적, 사회적 전환을 달성할 방법에 대한 진정한 비전을 갖고 있지 않았다. 이는 발전의 불균형과 재정적 불균형으로 인해 계속해서 계획 구체화가 연기되었지만 이제는 축적되어 온 경제적, 사회적 압력을 미룰 수 없을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가장 큰 증거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에 기부율이 90%를 넘었던 것과 달리 튀니지의 경제 원조 대부분은 대출 혹은 은행예금의 형태라는 점이다.

이러한 지표들은 튀니지 정부에게 해외에서 꿈꾸던 관대함은 한계가 있으며 경제를 개선하고 사회적 이익을 충족시키기 위한 통합 계획을 시행할 인식이 없다면 정부의 예산은 계속 모래 위에 서 있을 것이라는 것을 경고했어야함을 나타낸다

하지만 그러한 계획은 일어나지 않았고 튀니지는 끝나지 않은 부채와 재정적자의 악순환에 빠져들고 있다.

마지막 상자

서방 국가들은 선구적인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수립이 분열과 위기에 빠진 정치계급의 우선순위가 아니고, 튀니지 국민들의 우선순위가 아니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튀니지인 대다수가 관심을 갖고 있는 목표는 더 나은 경제적, 사회적 조건을 보장할 수 있는 품위 있는 삶을 얻는 것이었다. 다른 모든 것은 사치와 같았다. 자유를 공고히 하고 권리와 의무의 평등을 보장하며 부패와 뇌물에 저항하는 발전된 정치 체제를 구축하려는 튀니지인들의 열망과 모순되지 않지만, 핵심은 생활 수준을 개선하는 것이었다.

또한 이민은 특히 유럽 정치인들의 근시안적 시각을 보여주는 거울이기도 했다. 많은 튀니지인들은 2011년 이후 유럽이 노동시장에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유럽 정책은 여전히 그룹 내 국가의 정치적 고려와 선거권에 의해 통제되었다. 예를 들어 마그레브 지역 출신의 이민자들과 관련된 테러 사건 이후 프랑스는 튀니지인과 모로코인들에게 허용되는 비자 수를 줄였다. 동시에 유럽국가들, 특히 프랑스와 독일은 자국의 이익을 고려한 선택적 이민 정책의 틀 안에서 튀니지의 역량을 유치하려고 노력했다.

더 나아가 서방은 경제적으로 튀니지를 재정 위기에서 구하는 데 개입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기 때문인데 오히려 서방은 튀니지 지원을 위해 걸어온 길과 정반대의 발걸음을 내딜 준비를 마쳤다.

한편, 튀니지인들은 서방이 자신들을 어떻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다. 많은 이들의 걱정은 단지 기본적인 생활 조건을 보장하는 해결책을 모색하거나 해외로의 이주 방법을 더 쉽게 하는 것이다. 


출처: أسامة رمضاني, تونس والغرب وسوء التفاهم المكلف , Al-arab, June, 02, 2022

https://alarab.co.uk/%D8%AA%D9%88%D9%86%D8%B3-%D9%88%D8%A7%D9%84%D8%BA%D8%B1%D8%A8-%D9%88%D8%B3%D9%88%D8%A1-%D8%A7%D9%84%D8%AA%D9%81%D8%A7%D9%87%D9%85-%D8%A7%D9%84%D9%85%D9%83%D9%84%D9%81

기사날짜: 2022.06.02 (검색일: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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