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 170597932

작성일 : 23.02.20 | 조회수 : 155

제목 : 시위 10년 후 레바논에서 곤경에 처한 시리아 난민들 (2023.02.20) 글쓴이 : 중동연구소
첨부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시리아 시위에서 촉발된 내전으로 인해 많은 시리아인들이 레바논과 같은 주변 국가로 도망쳐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다. 21세의 건설 노동자이며 두 아이의 아버지인 시리아 국적의 압둘 레만(Abdul Rehman)은 2020년 8월 4일 베이루트 항구 폭발 사고로 인해 파괴된 문화재 건물을 복구하기 위해 매일같이 일하고 있다. 레만은 2,750톤의 질산암모늄이 베이루트 항구에서 폭발하여 인근 지역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후 베이루트를 재건하는 수백 명의 시리아 노동자 중 한 명이다.

그는 잔해를 치우고 원자재를 등에 짊어지고 여러 층을 나르며 손상된 벽의 페인트를 긁어내고 벽화가 그려진 벽의 먼지를 털어낸다. 레만은 하루 평균 10시간 교대 근무를 하지만 겨우 5달러를 벌지만 이는 가족을 부양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 위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은 자식들을 위해 고기를 살 수 있었지만 현재는 불가능하다.”라고 그는 말했다.

10년 전 이맘때, 시리아에서는 시위가 일어났고 이는 곧 내전으로 번져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발생했다. 그 가운데 레바논은 전 세계에서 1인당 가장 많은 시리아 난민을 수용했으며 170만 명의 시리아 난민에게 피난처를 제공했다. 레만은 2012년에 시리아 내전을 피해 탈출한 많은 어린이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학교를 그만두고 베이루트 근처의 난민 캠프에서 자랐으며 자신이 설령 대학에 진학하더라도 레바논에서 여전히 단순노동자로 고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레만과 같은 시리아 난민들은 수년 동안 레바논에서 지속적인 차별을 당했고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러나 지난해 레바논 경제가 무너지면서 레바논에서 취약계층에 속하는 시리아 난민들은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레만은 당황한 듯 눈물을 참으며 “딸의 기저귀를 살 여유조차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유엔 기관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에는 시리아 난민 중 55%가 빈곤선 이하로 추락해 지난해 전체 인구의 89%나 차지했다. 그 중 93%는 음식을 사기 위해 빚을 지게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끼니를 거르게 되었다. 많은 부모들이 18세 미만의 딸을 시집 보내거나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심지어 거리에서 구걸하게 했다.

유엔난민기구(UNHCR) 대변인 리사 아부 칼리드(Lisa Abou Khalid)는 알 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아동 노동에 종사하는 5~17세 아동의 비율은 2019년 2.6%에서 2020년 4.4%로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라고 말했다. 칼리드는 “지난해 난민들이 전국 콜센터로 전화를 걸어 직원들에게 더 이상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떻게 생존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전화가 급격히 증가했다.”라고 덧붙였다." 다른 활동가들은 난민들이 10년에 걸친 망명 기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더 큰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민 복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식었다고 말한다. 시리아 난민을 위해 일하는 바스메(Basmeh)와 자이토네(Zeitoneh)라는 NGO의 공동 창립자인 파디 할리소(Fadi Hallisso)는 현재 레바논에서 어느때보다도 훨씬 더 많은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고 말했다. "저는 레바논을 많이 사랑하지만 문제는 베이루트 항구 폭발사건 이후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시리아인들이 노동을 한 후에도 아무도 이들의 노력을 눈여겨보지 않는다"라고 그는 말했다. “레바논 내전 이후와 같은 반응이다. 그때도 시리아 노동자들이 도시를 재건하기 위해 모든 건설 작업을 했지만 레바논 사람들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시리아인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았다.” 레바논 사람들의 시리아인에 대한 인상은 레바논 내전 이후 지속적으로 레바논 문제에 대한 시리아 정부의 간섭으로 더럽혀졌다. 레바논인 중 일부는 더 가난하고 더 보수적인 이웃에 대한 인종차별주의자일 뿐이고, 다른 일부는 시리아인들이 그들의 일자리를 훔치고 있다는 정치인들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할리소는 레바논 경제에 기여한 시리아인들이 이곳에서 번 돈을 모두 쓰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받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경제 위기의 결과로 이들에 대한 차별이 증가했다고 말했다. "어제 한 마트에서 사람들은 시리아인들이 보조금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보조금을 받는 쌀을 사기 위해 레바논 신분증을 보여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지난 2주 동안 베이루트의 일부 지역에서 마트들은 시리아인들이 보조금을 받는 식품을 구매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편 레만과 함께 일하는 수석 목수이자 레바논 국민인 폴 쿠사피(Paul Kousafi)는 일자리에서 시리아인을 고용하여 문과 창문을 끌로 깎았다고 말했다. 그는 시리아인들이 레바논 경제에 꼭 필요하지만 경제위기가 나타나 레바논과 시리아 난민 사이의 긴장이 악화되었다고 말했다. “레바논인들은 시리아인들이 하는 일을 하지 못하지만 상당수가 난민들을 학대한다. 그런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레바논에 대한 경제적 압박은 난민에 대한 그들의 태도를 더욱 적대적으로 만들고 있다.”

레만과 그의 동포들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리아의 데이르 아즈 조르(Deir Az Zor)에 있는 그의 집은 여전히 파괴된 상태이며 시리아의 경제 상황은 레바논보다 심각하다. 내전이 발발한 지 10년이 지났음에도 그는 불안정한 안보 상황으로 인해 여전히 시리아로 돌아갈 수 없고 레바논에서는 생활비를 벌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레바논은 그의 노동력을 필요로 함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레바논으로부터 거부당한다고 느낀다.

2011년 3월 15일 시리아 내전 발발 이후 10년이 넘는 시간동안 여전히 지속적인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앞선 레만의 사례를 비롯해 시리아 난민들은 다양한 아랍 국가들로 피난을 가고 그곳에서 힘들게 생활을 이어가고는 한다. 그러나 보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이 시리아 어린이들을 거리를 비롯해 열악한 환경으로 내몰고는 한다. 국제법상으로는 레바논 내의 시리아 난민을 비롯한 모든 레바논 어린이들은 무상 의무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러나 실제 대부분의 시리아 어린이들은 이러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 다양한 원인 중 가장 큰 이유는 경제활동을 위해서다. 앞서 언급했듯이 레바논의 경제위기 이후로 시리아 노동자들이 받는 보수는 훨씬 줄어들었다. 따라서 난민 아동은 집안을 위해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농작물을 수확하는 일 뿐만 아니라 길거리에서 구걸하고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이 얻는 보수는 성인에 비해 적지만 시리아 난민 성인들은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며 아이들은 비교적 검문소 통과가 쉽고 추방 가능성이 적기에 어린이들이 돈을 벌어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 어린이들은 학교에 등록을 한 경우라도 보통 돈을 벌기 위해 학교를 빠지는 경우가 더 많고 결국은 교육을 포기하게 된다. 이렇게 어린이까지 동원해 경제활동을 시키는 모습은 레바논 국민들에게도 부정적인 인식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한다. 부모들을 무책임하고, 몰상식하며 지저분한 인간이라는 인식을 심고 이는 곧 그들을 도둑과 같은 범죄자 취급을 하기까지 한다. 이러한 굴레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여러 방안이 있겠지만 역사적으로 봤을 때 타인을 바꾸려는 시도보다 자주적으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더 효과가 있었다. 우리 조상분들의 사례를 비추어 봤을 때 일제강점기, 6.25 등 국권을 상실하거나 억압당하는 와중에도 본인을 희생하면서까지 후손의 배울 권리를 위해 힘썼던 노력 덕분에 대한민국이 세계 최저 수준의 문맹률을 자랑하며 국가경쟁력 또한 높아졌다. 물론 국제사회의 관심과 적극적인 도움 역시 필요하다. 언론의 경우 고의적으로 난민을 배척하는 기사를 내보내거나 반난민 정서를 조장하는 보도 행태 역시 시정해야 할 것이다. 선제적으로는 시리아 내전이 하루 빨리 끝나야 하겠지만 말이다.

 

출처: Syrian refugees’ plight in Lebanon 10 years after the uprising, Anchal Vohra, Mar 19, 2021

https://www.aljazeera.com/news/2021/3/19/syrian-refugees-in-lebanon-ten-years-after-the-uprising

기사날짜: 2021.03.19 (검색일: 2023.01.28)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