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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15 | 조회수 : 561

제목 : 시리아 임시정부 위원장, 국내 언론 첫 인터뷰…“전쟁 중인 시리아, 민주화 이룩하면 한국과 수교 희망”(2012-10-28)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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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가 시에다 “학살을 멈추게 하는 것은 국제사회 의무다”

 

“저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시리아 사람들이 자유롭고 존귀하게 사는 꿈입니다.”

 

지난 6일 시리아 최대 반정부 연합체인 시리아국가위원회(SNC) 압둘바세트 시에다(56) 위원장이 한국 언론으로서는 처음 국민일보와 단독 인터뷰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독재정권에 맞서 시리아의 비참한 인권 현황을 세계에 알리고, 국제사회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SNC는 사실상의 임시 정부 역할을 한다. 시리아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 프랑스 등 70개 국가가 참가하는 정기적 외교 회담 ‘시리아의 친구들’의 시리아 측 대표가 SNC다. 시에다 위원장과의 만남은 이스탄불 ‘힐튼 가든 인’ 호텔에서 50분간 이뤄졌다.

 

시에다 위원장은 “아사드 정권이 저지른 범죄는 어린이와 여성을 포함해 3만명이 넘는 희생자를 낸 국민 대학살”이라며 “국제사회가 진심을 갖고 시리아 사태를 도왔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절박하게 말했다. 영국에 본부를 둔 시리아인권관측소가 지난달 발표한 사망자 집계에 따르면 민간인 희생자는 2만1534명으로, 총 사망자 3만여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최근 다섯 달 사이에 집중 발생했다.

 

그는 또 “독재 정권은 혁명가를 암살해 압제와 부정에 맞서 일어난 소리를 잠재우고 두려움을 확산시키길 원한다”면서 “그러나 암살로 인해 흘려진 피가 시리아 국민의 통합, 더 나아가 공정하고 평등한 나라로 향하는 혁명의 길에 오히려 빛을 비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를 만난 날은 SNC 주요 인물이었던 마슈알 탐모 피살 1주기 하루 전이었다. 탐모는 “국민은 자유와 존엄성을 원한다”고 외치며 혁명에 앞장서다 지난해 10월 7일 암살됐다. 시에다 위원장은 정권의 무차별적인 살상에도 불구하고 혁명의 기운은 사그러들지 않는다고 자신했다.

 

시에다 위원장은 수배자 신분이다. 스웨덴으로 망명해 18년간 고국에 들어가지 못한 그는 아버지와 어머니 장례식에도 참석할 수 없었다. 그는 “나에게도 정권의 협박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시에다 위원장은 국제사회의 역할을 호소하는 한편 일부 강대국의 방임을 비판했다. 그는 “학살을 멈추게 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의무”라며 “러시아와 중국이 반대한다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시리아를 제재하지 않는 것은 (방관의) 충분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반인류적 범죄를 조사해 가해자를 확정하고 그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국제사법재판소에서 범죄를 재판해 줄 것과, 유네스코가 나서 정권의 문화유적 파괴행위를 중단시켜 줄 것을 촉구했다. 시에다 위원장은 한국과 시리아간 수교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지금은 아니지만 혁명이 성공하고 민주 사회가 되면 두 나라가 수교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양국 국민의 관계가 미래 세대를 위해 공고해지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언젠가 한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뜻도 전했다. 시리아는 북한과 46년간 협력관계를 다져온 혈맹 국가다. 한국 정부가 2005년 수교를 제의했으나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거절한 바 있다. 한국의 미수교국은 시리아 마케도니아 코소보 쿠바 등 4개국이 유일하다.

 

그는 “범죄 정권과의 타협을 거절하고 과거를 청산하고자 하는 용감한 국민들이 수없이 존재한다”면서 “그들과 함께 시리아에 자유와 존엄성을 되돌리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아사드 대통령은 국내외의 퇴진 요구 속에서도 아버지인 하페즈 전 대통령을 이어 42년째 철권통치하고 있다. 정권의 장기독재에 저항해 지난해 3월 시민 혁명이 시작됐다.

 

“소·닭처럼 죽어가는데…中·러 반대한다고 구경만 하나”

 

“시리아 사람들이 소나 닭, 양처럼 죽어 나갑니다. 우리를 구경하는 외국인들의 감정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요?”(시리아 깔라문 지역 반군 아부 아흐마드)

 

터키 이스탄불에서 마주친 시리아의 민주운동가와 난민들은 인권 불모지에서의 고통을 이처럼 호소했다. 시리아의 비극은 국제인권단체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휴먼라이츠워치(HRW)가 반정부 활동으로 고문당한 200여명을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성기 고문, 몸에 스테이플 박기, 펜치로 손톱 뽑기 등 잔혹한 고문이 자행됐다.

 

탄압과 망명생활

 

억압 상태에 있는 시리아 국민 2300만명의 자유와 평화에 대한 열망을 책임진 이는 시리아국가위원회(SNC) 압둘바세트 시에다 위원장이다. 지난 6일 이스탄불 ‘힐튼 가든 인’ 호텔에서 만난 그의 첫인상은 혁명 조직의 수장과는 거리가 먼 조용하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강행군에 따른 피로 때문인 지 수척해 보였다. 간밤에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심한 몸살을 앓았다고 했다. 그러나 시에다 위원장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시리아 안에 갇힌 사람들을 생각하며 용기를 얻는다”며 “그 사람들에겐 음식도 물자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알 아사드 정권의 잔혹한 인권탄압에 눈을 뜨면서 정치인으로 변모했다. 다마스쿠스대 철학 박사인 그는 언론기고와 인터뷰로 인권 상황을 외부에 알리다 수배를 당했다. 리비아로 건너가 3년 동안 교수를 지내던 그는 1994년 스웨덴으로 망명했다. 그곳에서 고대문명을 연구하고 시리아에 대한 저술 작업도 이어갔다.

 

“사람들을 계속 죽이는 정권이기에 10대 때부터 자연스레 비밀 정치 활동을 시작했어요. 쿠르드 정당에 소속돼 있었죠. 저의 내면엔 학자와 정치인으로서의 두 길이 서로 늘 갈등했어요. 스웨덴으로 망명한 뒤로는 정치를 그만두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면서 정치인의 길로 돌아왔지요.”

 

그와 만난 때는 마침 시리아와 터키 간 전운이 최고조에 달해 있었다. 시리아 정부군이 발사한 박격포가 터키 산리우르파 지역에 터져 인명 피해가 발생하자 터키는 즉각 보복 공격을 감행했다. 시에다 위원장은 자신이 머무는 이스탄불의 한 호텔 투숙객 명단에 실명을 쓰지 않았다. 기자가 그의 소재를 파악하기 위해 호텔 프런트 직원에게 투숙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직원은 수차례 검색해도 그의 이름이 없다고 손사래를 쳤다. 시에다 위원장으로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처였다. 그의 해외 일정은 SNC 본부에서도 파악하기 힘들 만큼 때로 비밀에 부쳐진다.

 

인터뷰 이틀 전까지 세계를 돌며 외교활동을 벌이다 이스탄불로 돌아온 그는 국제사회가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제사회가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해 일하지 않아요. 중국과 러시아가 반대한다는 이유만 가지고서는 이유가 충분치 않습니다. 의지만 있었다면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바깥에서도 사태에 개입할 수 있는 상황과 여력은 충분히 있었다고 봐요. 정말 도와줬더라면 인명 피해도 덜하고 사태도 오래전에 끝났을 겁니다.”

 

한국 기자를 처음 만난다는 그는 한국에 대해 “경제를 잘 발전시켰으며 민주화 성과를 이룬 나라로 알고 있다”면서 “국가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사회”라고 말했다. 반면 북한에 대해선 “(정권은) 핵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질 뿐이며, 배고픈 국민들은 개인을 숭배하는 감옥 같은 사회”라고 비판했다.

 

18년 만의 비밀 귀국

 

그는 지난 6월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SNC 창설자이자 소르본 대학 교수인 버한 갈리온 전 위원장이 조직을 편향적으로 운영한다는 비판을 받고 물러난 직후였다. 시에다 위원장은 온건하고 중립적인 리더십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9월 창설된 SNC는 다양한 정파와 민족으로 구성돼 있다.

 

“대화가 가장 중요해요. 서로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일하다 보면 부딪치거나 부정적인 견해도 나올 수 있기 때문에 공동의 목표를 발견하고 집중하는 데 노력합니다.”

 

시리아는 아랍 투르크 쿠르드 아시리아 등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국가다. 이슬람부터 기독교까지 종교도 다양하다. 그는 시리아 인구의 9%를 차지하는 쿠르드인이다. 소수 민족 출신이 위원장으로 선출된 것은 혁명 과정에서 동일성과 조화를 추구하겠다는 SNC의 의지가 반영돼 있다. 시에다 위원장 역시 다양한 인종·종교 집단을 아우르는 데 조직 운영의 중점을 두고 있다. 그는 시리아 내 쿠르드인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며 이에 관한 책을 저술하지 않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쿠르드인에 관한 것뿐 아니라 그동안 다양한 책을 저술했다”며 “나에겐 무엇보다 시리아가 중요하다”고 답했다. 쿠르드인으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시리아 혁명의 리더로 각인되길 원하는 모습이었다.

 

시에다 위원장이 지치고 외로울 때마다 바라는 꿈은 인권이 보장되는 조국, 시리아다. “민족이 무엇이든, 생각이 무엇이든, 남녀노소 상관없이 자유롭고 존중받으며 사는 나라, 그것이 저의 꿈입니다. 민주 선거가 치러지고 차별 없는 사회 말입니다.”

 

즉석에서 기자에게 한국말 인사를 배운 그는 마무리 인사를 했다. “캄사합니다.” “슈크란(감사합니다의 아랍어).”

 

인터뷰가 끝나고 사흘 뒤 시에다 위원장은 망명 18년 만에 처음으로 시리아에 잠입해 반군 지도자들을 만나고 격려했다. 외신은 이를 전격 보도했다. 사선(死線)을 넘어 시리아에 입국했다 돌아온 그를 며칠 뒤 SNC 본부에서 마주쳤다.

 

“시리아 다녀오셨죠?”

 

“그럼요.”

 

목숨을 건 혁명은 오늘도 이어진다.

 

이스탄불=글·사진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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