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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1.19 | 조회수 : 315

제목 : '아랍의 봄 맞아 하마스는 어떻게 바뀌었나'(2012-11-16)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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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군사지도자 아흐마드 알자바리가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사망하면서 가자지구를 둘러싼 긴장이 커지고 있다. 하마스 측도 반격을 개시한 가운데 15일까지 양측을 통틀어 최소 16명이 사망하고 부상자는 100명을 넘어섰다.

이번 공격의 직접적인 원인은 팔레스타인 측의 로켓포 공격으로 알려져 있지만 내년 1월 선거를 앞둔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가 지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해 팔레스타인을 공습했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중동 대부분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성토하고 나선 가운데 미국 정책연구소(IPS)의 조르지오 카피에로는 15일(현지시간) 외교 안보분야 싱크탱크 '포린 폴리시 인 포커스'(FPIP) 홈페이지에 올린 글(☞원문 보기)에서 지난 2010년 12월 튀니지에서 시작된 아랍의 봄으로 바뀐 중동 정세가 하마스에 미친 영향을 설명해 주목을 끈다.

중동의 각국 독재 정부가 저항세력의 공격을 받으면서 이들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던 하마스는 초기의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특히 시리아 사태를 계기로 하마스는 오랜 관계를 맺고 있던 이란의 '알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이슬람 정권이 들어선 이집트 등과 관계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새롭게 바뀐 중동 정세에서 활로를 모색하는 하마스의 시도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미지수다. 카피에로가 설명한 하마스의 최근 정세는 다음과 같다.

 

 

 

아랍의 봄 맞은 중동, 하마스의 변화

"아랍의 봄, 혹은 이슬람의 겨울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개혁의 길을 찾는 시리아 국민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스마일 하니야 하마스 총리가 2012년 2월 24일 이집트 카이로의 알 아즈하르 사원에 모인 군중 앞에서 발표한 선언문의 내용이다.

2011년 하마스는 시리아에서 사무실을 철수시켰고,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캠프에서 시리아 정권을 지지하는 집회를 열어달라는 바샤르 알아사드의 요청을 거절했다. 하니야의 성명은 하마스가 공식적으로 오랜 지원국이었던 시리아 정부와 관계를 단절했음을 확실히 했다. 1999년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 단체가 추방당한 여파로 아사드 정권과 맺었던 동맹관계는 아랍의 봄에 의해 끝났다.

시리아에서 일어난 봉기는 하마스를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아넣었다. 하마스가 고립됐을 시절 경제 원조 및 무기를 제공하던 정권과 굳건한 관계를 유지하려는 찰나 수니파가 주도하는 반대파들의 운동을 잔혹하게 탄압하던 정권과 동맹을 이어갈 수는 없었다. 아사드와의 관계를 끊는 게 자신들의 장기 목표를 이루는 데 최선이라는 하마스의 최종 판단은 시리아 사태에 대한 평가, 특히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과 팔레스타인인들의 여론에 의해 추동됐다. 하지만 중동에 민주적이고 온건한 수니파 이슬람주의의 물결이 일어났다는 점이 아마도 하마스가 시리아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이집트, 터키, 카타르와 동맹을 추구하게 만든 가장 큰 동기가 됐을 것이다.

하마스는 중동에서 새롭게 등장한 지정학적 현실이 자신들에게 고립을 탈출하고,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들의 적법한 대표성을 인정받고,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이웃들과의 관계를 심화시킬 기회가 될 것이라는 데 도박을 걸고 있다. 그렇다고 해도 아사드와의 관계를 끊고 이란의 전략적 경쟁국들과 관계를 맺음으로써 하마스는 이란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만들고 있기도 하다.

시리아 사태의 전개

2011년 3월부터 12월까지 하마스는 시리아 사태에 대해 상대적으로 중립적인 태도를 유지하려고 했다. 그들은 심지어 시리아 정권과 반대파 사이의 협상을 중재하려고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들은 소용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마스가 만나려고 했던 반대파 지도부들은 투옥됐고, 시리아 정부는 초기 하마스의 협상 제안을 거절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하마스 관계자들은 여전히 자신들이 양다리를 걸치고 있는 것처럼 표방하면서 자신들의 정책은 중립적이며 시리아 국민들의 의사를 지지하지만 아사드에게 반대하는 것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하마스의 웹사이트를 보면 "우리는 현재의 상황이 시리아 국민들의 희망과 염원을 충족시키면서 시리아의 안정과 내부적 화합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극복되길 희망한다"고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1차 걸프전의 뼈저린 교훈은 시리아 상황에 대한 하마스의 초기 반응에 영향을 끼쳤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야세르 아라파트 의장이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했을 당시 사담 후세인을 지지하자 쿠웨이트에 살던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고통을 받았다. 20년 후의 하마스는 약 50만 명에 달하는 시리아의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분노한 아사드 정권의 타깃이 되길 원치 않는다.

하지만 시리아에서 사망자 숫자가 늘어나자 아사드는 하마스에게 골칫거리가 됐다. 팔레스타인과 중동에서 벌어진 여론조사에서 아사드에 대한 지지가 곤두박질치면서 하마스는 역사의 어두운 편에 설 수는 없다고 결론 내렸다.

몇 달 동안 시리아 내 자산을 처분한 하마스는 2011년 12월 다마스쿠스로부터 직원들을 철수시킨다. 이 결정 뒤에는 터키와 카타르 정부의 압력이 있었다. 다마스쿠스를 떠난 한 하마스 관계자는 "카타르와 터키는 우리에게 당장 시리아를 떠나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창피한 줄도 모르나? 썩 꺼져라'라고 했다"고 밝혔다. 이러한 철수를 둘러싼 복잡한 심정은 또 다른 하마스 관계자의 말에 요약돼 있다. "우리는 가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가 이 정권에 고마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해 줬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많은 친근한 관계들이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여기 머물 이유가 없다."

하마스의 중동 국가 관계 재편

시리아에서 수니파 이슬람주의자들의 부상을 두려워하는 헤즈볼라와 달리 시리아가 보수적인 수니파 정체성을 띈 이슬람 국가가 될 것이란 전망은 하마스에 불안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시리아국가연합(SNC) 내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인 시리아 무슬림형제단은 전통적으로 하마스를 지지해 왔다. 만약 (시리아 집권당인) 바트당의 질서가 붕괴하고 무슬림형제단이 정권을 잡는다면 (무슬림형제단의 분파 격인) 하마스는 아사드 이후 시리아와의 우호적 관계를 기대할 만한 이유가 생긴다.

하마스는 중동 전역에서 다른 수니파 이슬람주의자와의 관계도 구축하고 있는데 가장 중요한 세력은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이 이끄는 민선 정부다. 미국 및 유럽연합(EU)과의 관계를 유지하고 이스라엘과의 군사적 대립을 피할 수 있는 시나이반도의 안보를 유지하는 것을 포함해 이집트의 특정 국익에 의해 하마스와 이집트의 관계가 위태로워질 수 있지만, 호스니 무바라크 축출 이후 이집트와 하마스의 관계는 의심할 바 없이 새로운 장으로 넘어갔다. 이집트 정부가 하마스의 이집트 사무실 설치에 동의하고 시나이반도와 가자지구 사이의 통행 제한을 완화하는 데 동의하는 등 이집트와 하마스 관계의 미래에 대한 하니야의 낙관은 잘 자리 잡고 있다. 게다가 2011년 10월 하마스와 이스라엘 사이의 수감자 맞교환 당시 이집트 정부의 역할은 향후 하마스의 국제적 고립을 완화시킬 수 있는 이집트의 역량을 보여준다.

하마스 지도자 칼레드 메샬은 2012년 9월 30일 터키 앙카라에서 집권 여당 정의개발당(AKP)이 개최한 회의에 참석해 모하메드 무르시 이집트 대통령과 만났다. 터키 언론에 따르면 메샬은 관중들이 "빌어먹을 이스라엘"이라고 외치던 회의장에서 "가장 많은 갈채를 받은 외빈"이었다. 하니야가 2012년 1월 터키를 방문했을 때 그는 레제프 에르도안 터키 총리에게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봉쇄 해제를 계속해서 지지한 터키에" 감사의 뜻을 표했다. AKP의 오메르 켈릭은 "만약 이스라엘이 평화 협상에 진정성이 있다면 협상을 지지하는 하마스와 같은 단체를 불법으로 규정하는 것을 중단하고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라고 밝혔다. 따듯한 수사를 넘어, 터키는 가자지구에서 터키어를 강좌에 포함시킨 하마스의 이슬람대학 병원에 4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카타르 국왕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는 4억 달러 규모의 인프라 투자를 위해 2012년 10월 23일 가자지구를 방문했는데, 이스라엘의 봉쇄가 시작된 이후 아랍의 국가 수장이 이곳을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타임>의 선임 에디터 토니 카론은 하마드 국왕의 방문을 시리아에 대한 카타르의 이해관계에 연결시켜 해석했는데, 카타르는 시리아 반군의 무장을 적극적으로 돕고 있다. 카론은 "카타르의 목적은 부분적으로 하마스가 아랍 안으로 돌아와 이란에 대한 지지를 거두도록 하는 것이다. 하마드 국왕의 가자지구 방문은 넓게는 아사드 정권과의 관계를 단절한 하마드에 대한 보상 격으로 해석된다"라고 썼다. 카타르의 가자지구 방문 동기와는 관계없이 시리아에서 튀니지까지 무슬림형제단 세력에 대한 카타르의 지지는 하마스가 구현하는 민주적 수니파 이슬람주의에 대한 지지와 일치한다. 게다가 과거 파타당과 하마스 사이의 분쟁을 중재하려던 카타르의 노력은 하마스를 적법한 정치세력으로 인식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란과의 도박

시리아 사태에 대한 하마스와 이란의 반대되는 태도는 양쪽 사이의 긴장을 조성했다. 2011년 8월 이란은 하마스가 아사드를 지키는 것을 거부하자 3억 달러에 달하는 원조금을 삭감했다. 게다가 하마스는 어떤 형태의 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에도 이란에 군사적 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현재의 긴장이 일시적일지 양측의 단절을 초래할지는 풀리지 않은 문제로 남아 있다.

비록 하마스와 이란 모두 시리아 사태에 대해 깊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지만 지금은 사이가 많이 벌어졌다. 수년간 하마스는 다른 어느 정부보다 이란으로부터 많은 자금과 무기, 훈련을 제공받았다. 하마스 정치국의 에자트 알라쉬크에 따르면 하마스는 이란 정부의 자금 지원 없이 4만5000명의 구성원에게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한 영향력을 이란에 제공하고, 대부분의 아랍 국가 정부가 아랍 세계와 이스라엘의 갈등에서 대립하지 않는 주체가 되어갈 때 이란을 팔레스타인의 수호자로 여기게끔 하는 특권을 부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마스는 도박을 하고 있다. 이란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힘을 약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란 정부는 하마스의 라이벌들(이슬림지하드(PIJ), 인민저항위원회(PRC) 등)과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데, 이들은 하마스가 이스라엘과의 정전을 모색할 때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이란이 그런 단체들에 이스라엘에 미사일을 쏘라고 재촉한다면 하마스의 가자지구 통제력은 확실히 약화될 것이다. 게다가 그런 공격이 이스라엘의 반격을 이끌어낸다면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갈등 국면에서 하마스는 정전을 통해 국제적 정당성을 획득하는 동시에 저항단체로 남아야 하는 복잡성이 증가할 수 있다.

국제 무대에서의 하마스

이란과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의 중동판 냉전에서 시리아는 중심이 됐다. 하마스 지도자들은 이란이 지원하는 시리아 정권이 걸프지역 국가들과 터키의 자금으로 무장한 반군에 대항해 생존을 위해 싸우는 상황에서 결국 중동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을 기쁘게 하거나 중립적인 포지션을 취하지 못한다는 현실을 수용했다. 시리아 정권과 관계를 단절하고 반군을 지원하기로 한 하마스의 결정은 이란에겐 중요한 전략적 차질이고 아사드의 적들에게는 중요한 승리다.

하마스에 대한 여러 국가의 증대되는 이해관계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은 분명히 아랍의 봄이 시작되면서 자신들만의 아젠다를 추구하고 있다. 하마스의 지도자들은 중동 전역의 온건하고 민주적인 이슬람 정당의 성공에 주목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당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2007년 쿠데타에도 살아남은 사건, 이스라엘-이집트 국경 봉쇄, 그리고 2008~2009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폭격 등을 거치며 여러 아랍 국가들은 미국와 이스라엘의 바람에도 불구하고 하마스가 사라질 처지에 놓인 게 아니라는 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렇더라도 이스라엘 공군이 지난해 정전 협상에 나섰던 하마스의 군사지도자 아흐마드 알자바리를 암살한 이후 가자지구에서 긴장이 매일 고조되면서 더 큰 중동 전쟁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이 커지고 있다.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의 지속되는 가자지구 공격은 내년 1월 선거를 앞둔 네타냐후가 이끄는 우익 진영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네타냐후의 정치적 미래에 대한 관심과 이스라엘의 장기적 안보가 항상 일치했던 건 아니다. 한편으로는 하마스에 대한 국제적 지지가 늘어가는 것을 인정하고 군대를 거둘 수 있는 지도자를 선출하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김봉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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