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 18962417

작성일 : 12.11.30 | 조회수 : 296

제목 : 옵서버 국가 팔레스타인 65년의 '가시밭길' 글쓴이 : 중동연구소
첨부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텔아비브<이스라엘> dpa=연합뉴스) 팔레스타인이 유엔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 지위를 얻은 29일(현지시간)로부터 꼭 65년 전 팔레스타인의 '가시밭길' 또한 시작됐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영국 위임통치령'으로 불리던 지역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분리하자고 제안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세계 각지에서 이 지역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은 이에 즉각 찬성했지만, 이 지역에 거주하던 아랍인들은 물론 주변의 아랍 국가들도 이에 반대했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이 국가 수립을 선언하고, 주위 아랍 세력이 신생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 사용에 나서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악연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49년 이스라엘과 아랍권의 휴전이 성립했지만 이스라엘은 무력 충돌 과정에서 1947년 유엔총회 제안 때 정해진 것보다 더 넓은 영토를 갖게 됐다.

1967년 6월의 '6일 전쟁'을 통해 이스라엘은 요르단이 점령했던 요르단강 서안지구, 이집트가 통치하던 가자지구에 시리아의 골란고원까지 손에 넣었다.

1974년 11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가 유엔에서 발언권을 얻었다.

이때 가결된 유엔총회 결의안 3236호를 통해 팔레스타인은 자결권을 인정받았고, PLO는 유엔의 '옵서버 단체' 자격을 얻었다.

1988년 11월 PLO는 1967년 이전에 설정된 경계선상의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선언했다.

1993년 이스라엘과 PLO는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로부터 일부 병력을 철수했고,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를 설립했다.

2004년 사망한 아라파트의 뒤를 이어 마무드 압바스가 2005년 1월 PA 수반이 됐고, 같은 해 8월부터 9월까지 이스라엘 정착민과 군 병력이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다.

이슬람주의 과격 무장정파 하마스가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승리했고, 2007년부터 하마스는 가자지구를 통치하기 시작했다.

같은 해 PA와 이스라엘은 두 국가 체제를 기반으로 한 평화 협상을 시작하기로 합의했고 2009년까지도 협상이 진행됐다.

그러나 2010년 이스라엘이 요르단강 서안지구에서의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을 부분적으로 보류해 달라는 PA의 요구를 거부한 것을 계기로 이스라엘과 PA 사이의 협상은 무산됐다.

지난해 PA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유엔 회원국으로 자신들을 가입시켜 달라고 신청했으나 무산됐다.

유엔 산하기구 유네스코는 같은 해 10월 팔레스타인을 정회원국으로 인정했다.

그로부터 1년여 뒤인 29일 열린 유엔 총회에서 팔레스타인은 찬성 138, 반대 9, 기권 4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유엔에서 비회원 옵서버 '국가'로 인정받게 됐다.

smile@yna.co.kr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