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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1.21 | 조회수 : 1187

제목 : [인도] 델리 성폭행 사건으로 엿보는 인도의 문화코드 글쓴이 : 김평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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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일어난 비극과 그 비극에 대해서 나올 수밖에 없는 반응들을 보면서, 필자는 이 모든 장면이 이미 어디선가 본 것 같지는 않은지 묻고 싶다.

2011년 후반 뭄바이에서 키난 산토스와 루벤 페르난데스라는 청년 두 명이 거리에 쓰러져 죽어가고 있었는데도 행인들은 도와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결국 숨졌다. 비극이 발생한 이후 키난 산토스의 친구이자 사건 현장에 있었던 피르얀카 페르난데스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들이 잔인하게 여러 번 칼에 찔리고 있을 때 주위에 목격자가 적어도 50명은 있었다. 우리는 도와달라고 소리 쳤지만 다들 무신경한 눈빛으로 가만히 있었다. 극악무도한 범죄에 맞서 싸우며 우리를 도우려고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이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에도 타인의 불행에 무관심한 것이 현대 인도의 문화가 돼버렸다며 전통적인 도덕과 가치가 무너진 것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뭄바이 사건에서나 델리 참사를 이렇게 문화적으로 분석하는 것이 과연 타당할까?

 

비벡 데헤자(Vivek Dehejia) 경제학 교수와 필자는 최근 발간된 ‘인디아노믹스: 현대 인도를 이해하는 방법(Indianomix: Making Sense of Modern India)’에서 뭄바이 사건을 심층 분석했다. 최근 중국에서 어린 아이가 길에서 죽어가고 있는데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사건도 탐구했다. 이 책에서 필자와 데헤자 교수가 시도한 분석은 델리 사건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데헤자 교수는 이런 무관심이 나타나는 원인을 문화적 현상에서 찾지 않고, 기본적인 경제학적 개념인 ‘보상(incentive)’과 진화생물학의 이타적 행동을 통해 해석했다.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인간 사회에서든 동물의 왕국에서든 이타주의란 언제든 깨질 수 있는 몹시 취약한 개념이다. 인간의 DNA에 아무리 이타적 경향이 강하게 잠재돼 있더라도, 자기자신을 보호하려는 본능 또한 이타심 못지않게 강력하다. 이타주의와 자기보호 본능은 이처럼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의를 본 ‘영웅’이 이타적 충동에 이끌리더라도, 자신이 앞으로 치러야할 ‘비용’과 타인을 돕는 것 중 어떤 것이 더 이득인지 저울질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비용’은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적인 비용이 아니라, 시간에 대한 기회비용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건에 휘말린 사람이 경찰서에 출석해서 진술하고 조사를 받으면서 보낼, 몇 시간, 며칠, 어쩌면 몇 주가 될지도 모를 시간을 가리킨다. 필자와 데헤자 교수는 책에서 인도 사건과 중국 사건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나선 사람이 경찰 조사에 시달리고 가해자로 잘못 기소되거나 심지어는 도와주려고 했던 피해자로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기술했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대부분 사법당국을 신뢰하지 않으며 앞에서 말한 결과에 휘말릴까 두려워 사건에 연루되려고 하지 않는다. 도와주기 싫어서도 아니고, 인도 문화에 무관심이 아로새겨진 것도 아니다. 도와주고 싶은 마음보다, 도와주다가 경험하지 않아도 될 괴로움을 겪고 싶지 않은, 인간이라면 당연한 마음이 더 크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구 여러 나라와 인도 사이에 중요한 차이점이 하나 존재한다. 바로 이른바 ‘선한 사마리아인 법(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위험에 빠지지 않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구조를 이행하지 않는 사람을 처벌하는 법, 구조거부죄 또는 불구조죄라고 함)’의 부재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조한 사람은 (중과실이 아닐 경우)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에 휘말리지 않도록 법적으로 보호하는 조항이다. 유럽과 캐나다 퀘벡의 민사법 영역에도 ‘구조의 의무’를 명시한 법 조항이 있다.

 

 

원문 :  Wallstreet Journal India   Delhi Rape: Why Did No One Help? 

By Rupa Subramanya    January 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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