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 30207

작성일 : 10.08.15 | 조회수 : 483

제목 : 무릎을 꿇은 선생님 (2006/05/23) 글쓴이 : 이길영
첨부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최근 뉴스로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이 어느 선생님이 학부형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사입니다. 무릎 꿇은 이유가 밥을 빨리 먹으라는 선생님의 재촉으로 자신의 아이가 토하고 설사가 났다는 이유였다는 것이니 그 학부형들의 안타까운 마음을 모르는 것이 아니나 참으로 마음 한편이 아려왔습니다. 더군다나 그 학부형들은 전날 그 젊은 선생님의 집에까지 몰려가 사표를 내고 무릎을 꿇으라고 했다니 너무 심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평소 그 선생님의 언행을 저는 알지 못하기에 이번 일만 따로 생각해서 보면 학부형들의 마음속에서 자기 자식의 이기적 편향 속에 선생님의 권위는 이제 없어 보입니다.

제가 학교 교사로 있을 때 담임 반 학생의 아버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15년이 넘었지만 지금도 이름이 생생이 기억나는 이 아이는 그때 두 번인가 연속 결석을 했을 때였습니다. 이 아이가 막내이어서인지 그 아버님은 연세가 많이 드셨었고 백발이 성성하면서도 꼿꼿하신 데가 있는 분이셨습니다. 교무실에서 저를 보자 딸의 담임임을 확인하시고는 거의 90도 각도록 정중히 인사하시고는 꼬박 꼬박 존대말을 하시면서 당시 총각 풋내기 교사였던 저를 자식의 담임으로 정중하게 예우를 하시는 것을 보고 제가 속으로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또 한편으로 선생님이라는 직임의 소중한 사명감과 막중한 책임감이 다가왔습니다. 

지지난 주였습니다. 사대 학장님이 복도에 있는 저를 부르셨습니다. 돌아보니 어떤 연세가 좀 드신 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이 분이 저를 보고 싶어 하신다는 이야기를 하십니다. 보니 제가 잘 모르는 분이셨는데, 알고 보니 지금 모 과 교수님으로 제가 근무했던 그 여고 출신이셨습니다. 그 교수님이 자신의 모교에서 가르친 분이 우리 학교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평소 뵙고 싶었다고 하면서 정중히 인사를 하시는 것입니다. 옆에 계신 사대 학장님도 그 여고출신이기에 아마도 동창 언니이신 그 분에게 제 이야기를 하셨던 모양입니다. 그 교수님은 언제 한번 맛있는 식사대접을 모교 은사님께 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저를 예우해 주시는데, 제가 그 학교 가기 전에 이미 졸업을 한 분이고 저보다 훨씬 연배가 많으신 분으로부터 이런 예우를 받고는 제가 황송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오늘 어느 글을 읽어 보니 다음의 글이 있습니다.
-
‘오성과 한음’으로 널리 알려진 오성 이항복이 재상으로 있을 때 높은 관리들이 찾아오면 당연히 앉아서 절을 받았다. 재상은 조정에서 제일 높은 직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 신 아무개 훈도(訓導)가 문간에 와있다는 전갈을 받고는 버선발로 뛰어가 맞아들이고 공손히 접대했다. 주위 사람들이 이유를 물으니 어렸을 때 글을 배운 훈장이었다는 것이다. 그 다음 날 이항복은 훈장이 묵고 있는 숙소로 몸소 찾아가 비단과 쌀 등을 드리며 노자에 보태어 쓰도록 했다. 그러나 훈장은 “여행에 필요한 경비는 쌀 두어 말이면 족하다”고 말하며 나머지는 받지 않았다고 한다.
-

이것은 조선 중기의 『창석집(蒼石集)』에 나오는 일화이랍니다. 훈도는 시골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천자문 등을 가르치는 종9품의 미관말직이구요. 권세 있는 일국의 재상이 하찮은 시골 훈장을 버선발로 뛰어가 맞아들인 것이지요.  

저를 가르친 선생님은 물론, 우리 아이를 가르치는 선생님께도 존경을 하는 것은 마땅한 것이라 여겨집니다. 특별히 아이들 앞에서 절대로 그 선생님에 대한 험담을 하지 않는 것은 기본일 텐데 자식의 선생님에게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고 사과하고 사표를 내라는 그 학부형의 마음은 참으로 저를 심란하게 합니다. 물론 어느 때는 학부형이 교사로부터 상처를 받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아이들을 맡긴 그 죄( )로 꼼짝없이 당하는 경우도 있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 분이 사심이 아니라 나름대로의 정성과 교육적 방침을 가지고 하고 계신다면 그 방법이 비록 마음에 불편해도 따라가며 존중해 주는 풍토가 아쉽습니다.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