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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8.15 | 조회수 : 357

제목 : 발디 홀 113호 (2006/09/25) 글쓴이 : 이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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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dy Hall 113호...

제가 유학을 가 첫 학기에 수강했던  ‘Reading Strategy’, 즉 '읽기 전략'이라는 과목의 수업이 있었던 교실입니다. 같은 학과에 아는 사람도 없고 첫 학기이기에 딱히 조언을 구할 사람이 아무도 주변에 없어 프로그램 북에 그저 나와 있는 대로 수강신청을 한 과목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업 첫 주가 지나고 둘째 주가 지나면서 이 과목은 미국학생들도 수강하기를 꺼려하여 맨 마지막 학기에 듣곤 하는 과목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주에 교실에 들어가니 교수님이 학생들을 두 개의 원으로 만드셨습니다. 일곱 명이 한 원을,  그 원 밖으로 여덟 명이 또 한 원을 만들어 앉으라고 하셨습니다. 수업방식은 매 주마다 안 쪽에 있는 원의 사람이 2시간 30분 동안 미리 읽어온 과제에 대해 토론을 하고, 밖의 원의 사람들이 듣고 나머지 30분 동안 질문을 하거나 코멘트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안 쪽의 원에 배정이 되었고 그 다음 주에 준비한 과제를 토론하는 일곱 명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한 주 동안 열심히 읽고 준비하고는 목요일 4시 그 수업에 들어갔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토론식 수업...
그것도 영어로 해야 하는 부담...

미국학생들의 말의 홍수 속에 멍하니 있다가 두 시간이 그저 흘러갔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교수님이 ‘아직도 이야기 하지 않은 학생이 있네. 지금이 좋은 시점인데, 자... 들어갑시다....’ 했지만 결국은 이야기 뻥긋 하지 못하고 수업을 마치고 말았습니다.

그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녁 7시 가까이 되어 기숙사로 돌아가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무겁고 힘겨웠는지요... 그 수업을 듣는 동양인이 한 명 더 있었는데 일본에서 영어교사를 8년 하다가 온 일본학생이었습니다. 그 학생과 함께 동병상련의 마음을 가지고 터벅터벅 기숙사가 있는 서쪽을 향하여 걷는데 맞은편의 석양에 마음이 한 없이 오그라들었습니다. ‘유학을 잘 못 온 것은 아닐까  그냥 교사생활 잘 하고 있었는데 괜히 온 것은 아닐까 ’ 이런 생각이 문득 스쳐가기도 했습니다.

유학 첫 학기, 계속되는 그 토론 수업은 큰 부담이 되었습니다. 목요일 4시가 수업시작이었는데 언젠가부터 낮 12시경 쯤 되면 서서히 배가 아파 설사가 나오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매 주 목요일 그 시간이면 어김없이 이를 경험하면서 숨 막히는 심리적 긴장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이런 심리적 위축을 이기게 해 달라고 기도도 했었지요...

이번에 미국에 가면서 그 교실을 둘러보았습니다. 그리고 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여전히 그 교실은 거기에 있었습니다...  

그곳에 들어가서 옛날을 생각하면서
심호흡을 크게 내쉬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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