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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20 | 조회수 : 178

제목 : [기고] 불안을 먹고 큰 ‘푸틴’ (2018.03.20. 동아일보) 글쓴이 : 러시아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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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달 18일 치러진 러시아 대선은 ‘기정사실’의 공식적 확인이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제외한 나머지 7명의 출마자는 중과부적의 ‘들러리’였고 오합지졸의 ‘잔잔바리’에 지나지 않았다. 적수가 없는 푸틴 대세론에 대선의 흥행이 심히 걱정됐다. 다양한 선거 독려로 70%대의 투표율에 70%대의 높은 득표율로 21세기 차르는 2024년까지 6년 임기의 네 번째 크렘린 권좌를 예약했다.

 러시아 대선은 시진핑의 장기집권 시나리오와 오버랩되면서 국제사회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서구가 내심 기대했던 반푸틴 정서의 확산은 희망사항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국제유가 폭락과 서구의 제재로 경제위기가 엄중한 상황에서도 푸틴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동인은 무엇인가?

 푸틴이 펼친 애국마케팅이 러시아인의 ‘불안’과 ‘열망’에 정확히 적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방이 항상 자국을 포위·봉쇄해 고사시키려 한다는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지속적인 나토의 동진 팽창, 탈소비에트에서 색깔혁명의 확산 등을 그 명백한 증거로 확신한다. 푸틴은 서구의 위협에 대한 민초들의 집단적 히스테리를 자극하는 가운데 ‘포위당한 성채’ 러시아의 방어를 위해 전 국민적 단합을 호소했고, 조국 수호의 유일한 지도자로서의 상징 조작을 통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손상된 러시아의 대국적 자존심을 회복시켜 준 점도 중요한 대선 승리 요인이다. 집권 3기 푸틴은 정치 안정과 경제 성장의 자신감을 토대로 힘과 영향력의 외부 투사를 확대했고 강한 근육질의 군사력을 과시해 전통적, 역사적 세력권을 일부 복구하는 데 성공했다. 미국 군사방어의 폴란드 및 체코 배치 무력화, 크림반도 접수, 키르기스스탄에서의 미군 축출, 유라시아경제연합 창설 등이 적절한 사례일 것이다. 이는 ‘제국증후군’에서 헤어나지 못한, 루스키들이 가지는 과거 초강대국 영광에 대한 향수를 해소시켜 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푸틴의 네 번째 대권 쟁취가 갖는 핵심 의미는 이른바 ‘푸틴주의’가 국가사회적으로 여전히 유효하고 그 기제가 지속적으로 작동될 것이라는 점이다. 푸틴주의는 한마디로 시장민주주의의 러시아적 수용으로 유라시아적 정체성과 독자적인 국가발전 모델을 통해 글로벌 초강대국으로 자리 잡겠다는 것이다. ‘주권민주주의’와 ‘국가자본주의’로 표현되는 이 푸티니즘의 작동원리는 이렇다. 푸틴 자신의 강력한 리더십으로 국내의 질서, 안정 및 경제성장을 구현하고, 대외적으로는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위상을 확보할 테니 그 과정에서 정치적·시민적 권리와 자유, 시장 원리는 당분간 유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안정’과 ‘국가 권력의 자의성’ 교환인데, 이 ‘푸틴과의 계약(Putin Contract)’은 선거라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대중의 자발적 동의와 지지를 얻었다. 

‘썩은 독재라도, 혼돈에 대한 공포보다는 낫다’란 여론에서 확인되듯, 2000년 푸틴시대 개막 때 맺은 일종의 묵시적 계약은 이번 대선에서도 유효했다. 이는 러시아가 여전히 2000년 체제에 갇혀 있다는 점을 반증하고, 푸틴 4.0 시대에도 과도하게 집권화·사인화한 권력구조 아래서 통치체제와 사회경제적 제도의 큰 변화 없이 서구와 대립각을 세우는 방향으로 국정을 운영할 공산이 크다는 점을 예고한다. 시대적 개혁과 변화의 물결을 거부하면서 사회주의 이념의 허상을 붙잡은 채 서구와의 무리한 패권투쟁과 군비경쟁에 몰입했던, 그럼으로써 깊은 정체의 나락으로 빠져 소련 해체의 단초를 제공했던 브레즈네프 시대가 데자뷔 된다. 21세기 푸틴의 러시아, 어디로 가는가?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원문보기: 
http://news.donga.com/3/all/20180320/89179335/1#csidx3b0711d95dc4b3f8f3d2dc3e05ce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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