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 76565750

작성일 : 16.06.10 | 조회수 : 225

제목 : 크렘린은 굴복하지 않는다(2014.12 매일경제) 글쓴이 : 러시아CIS
첨부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StartFragment>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국제지역대학장

루블화가 연일 폭락을 거듭하면서 러시아 경제가 1998년에 이어 국가부도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올해 초 달러 대비 32루블 수준을 유지했던 환율이 한때 80루블까지 추락해 패닉 징후까지 보였다. 러시아 정부가 기민하게 일련의 고강도 금융안정화 대책을 내놓음에 따라 루블화 환율이 진정세로 돌아섰지만, 여전히 경제위기 불안감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러시아 통화가치 급락은 우크라이나 동부 분리주의 반군세력 배후 지원에 대한 서구의 징벌적 경제 보복에서 비롯된 바 크다. 여기에 배럴당 60달러대로 반 토막 난 국제유가 하락이 결정타를 날렸다. 일각에서는 국제유가의 가파른 하락 뒤에는 ‘러시아 숨통 조이기’라는 미국 음모론을 제기한다.

그렇다면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의 대러 경제제재가 성공할 것인가? 다양한 견해가 있겠지만, 러시아 경제에 큰 타격을 줄지언정 크렘린을 굴복시키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몇 가지 논거가 있다.

첫째는 러시아의 경제력과 금융위기 대응능력이 1998년 디폴트 때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이다. 지난 15년간 지속된 국제유가의 고공행진에 힘입어 러시아는 2013년 국내총생산(GDP) 세계 8위 규모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다. 이 과정에서 외환건전성 확보를 위해 외화의 해외차입 비율을 적절히 조절해 왔고, 외부 충격을 흡수할 수 있는 외환보유액도 꾸준히 늘려왔다. 현재 러시아의 외환보유액은 4190억 달러로 세계 4위 규모다. 유가 하락과 루블화 방어로 외화 곳간이 계속 비워져가지만 당장 내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대외채무 1250억 달러를 갚기에 충분한 것이다.

둘째는 서구의 대러 제재 지속의 어려움이다. 유럽연합(EU)은 에너지와 교역에서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밀접히 교직되어 있다. 2013년 기준 러-EU 무역액은 4177억 달러에 이르고 EU는 러시아로부터 전체 가스 소비량의 25%를 수입하고 있다. 이 두 가지 경제지표는 서구의 대러 제재 장기화가 결국 EU 경제에도 악영향을 주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예시한다. 저유가의 지속은 미국에도 이로울 게 없다. 미국이 러시아의 에너지 패권 행패를 제압하기 위해 셰일혁명을 통해 에너지 수출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셰일자원은 기본적으로 개발 단가가 높다.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셰일개발의 채산성을 미루어 보건대 60달러대의 현 유가는 셰일오일·가스의 생산 및 개발 중단을 의미한다. 미국이 저유가 출혈수출을 지속할 수 없는 이유다.

셋째는 견미(牽美)·비서구연합 우군으로서 중국의 지원이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동(러시아)·서(미국 및 EU) 간 대립에서 최대 수혜국은 중국일 것이다. 서구에 격렬히 저항하는 러시아가 미국의 대중국 봉쇄를 헐겁게 해주고 동시에 유가 하락이 ‘에너지 먹는 하마’ 중국에 더할 나위 없는 호재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은 크렘린이 서구의 압박에 굴복할 경우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 것이라는 점을 명료히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중국은 한편으론 저유가의 호황을 누리면서, 다른 한편으론 러시아가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를 기다리면서 푸틴체제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줄 가능성이 높다.

푸틴의 러시아는 서구의 경제제재에 대해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고통을 감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본다. 나토 및 EU와의 경계선에 위치한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국익 수호와 영토적 안전보장, 위대한 강대국 러시아의 재건을 좌우하는 사활적 이해가 걸린 국가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 당시 소련의 레닌그라드는 독일군에 의해 고립된 채 900일 간의 고통스러운 포위를 견디며 수십만의 아사자와 사상자를 발생시키면서도 독일군에게 점령되지 않았다. 이런 역사적 경험을 현재 서구에 의해 ‘포위된 성채’ 러시아에 적용하는 것이 억측일까?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