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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2 | 조회수 : 349

제목 : 아관파천 120주년, 러시아 활용법 찾아야 (2016.02 매일경제) 글쓴이 : 러시아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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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20년 전. 1896년 2월 11일에 결행된 고종의 아관파천은 세계사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이한 사건으로 기록된다. 한 나라의 국왕이 물리적 위협을 느껴 자국 내 치외법권 지대인 타국 공관에서 1년 동안 국정을 운영했기 때문이다. 서세동점(西勢東點)의 시기 고종의 신변 안전과 조선의 운명을 러시아에 의탁했던 아관파천은 우리 민족에게 숨기고 싶은 역사적 치욕에 가깝다. 그래서 아관파천은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반드시 반추해야 할 역사적 교훈이다.

두 갑자(甲子) 세월이 흐른 지금 아관파천이 새삼 주목되는 이유는 한국이 처한 현 상황이 구한말의 데자뷔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반도를 자신의 세력권으로 포섭하기 위한 주변 열강들의 권력투쟁이 치열하고 그 사이에서 한국이 외교적 딜레마에 봉착해 있으며, 한국 외교의 새로운 `선택지` 중의 하나로 러시아가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시장 민주주의 국가로 환골탈태한 러시아가 신동방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아시아 접근전략을 강화하면서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의 권력구도에 세력균형자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아관파천의 21세기적 교훈은 무엇인가? 여러 측면에서 설명이 가능하지만 핵심은 세 가지로 집약된다.

첫째는 자력 자강이다. 구한말 고종정부는 청·일의 과도한 내정 간섭을 차단하기 위해 러시아 세력을 끌어들였다. 그렇지만 힘 없는 균세 정책은 조선왕조의 수명만 조금 연장시켰을 뿐 실효성이 없었다. 자강이 결여된 세력균형은 결국 외세에의 종속으로 귀결되었다. 강대국들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해야 하는 지정학적 숙명성을 지닌 한국이 끊임없이 경제력의 고도화, 군사력의 첨단화, 문화력의 세계화를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둘째는 국제 정세 변화 흐름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적응이다. 1636년 병자호란은 발흥하는 청나라를 배척하고 망해 가는 명나라 귀신을 붙잡고 있었던 인조정부의 외교정책 실수에서 비롯된 바 크다. 아관파천도 거슬러 올라가 보면 시대적 조류인 개화를 거부한 조선의 쇄국 정책이 낳은 후과다. 당시 일본은 서구문물을 적극 수용해 명치유신으로 표현되는 근대화에 성공했고, 결국 세계적 열강의 반열에 올라섰다.

셋째는 유라시아 강대국 러시아 `활용하기`, 즉 `용러(用露)`다. 한국전쟁 시기 미국이 한국에 구원자였던 것처럼, 아관파천 시기 러시아도 조선에 착한 사마리아인이었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 영국 프랑스 등과 함께 서구 제국주의 세력의 일원이었지만, 다른 한편 고종의 황제 등극과 대한제국 탄생에 기여한 세력균형자였고, 서양 근대문물의 핵심전파자였다.

한반도의 운명과 미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러시아의 위상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포함해서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통일은 러시아와 분리해서 설명하기 힘들다. 점증하는 미·중의 대립으로 곤혹스런 입장에 처한 한국에 외교적 출구가 될 수도 있다. 러시아를 과대평가하는 것도 문제지만 과소평가할 경우 치명적인 국익 손상을 입을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북방은 한국에 기회의 공간이었다. 아관파천은 고종정부가 러시아의 지지와 협력을 배경으로 조선을 근대적 주권국가로 변모시키기 위한 일종의 북방 외교의 산물이었다. 현 박근혜정부가 경제적 번영과 민족적 웅비의 기회를 북방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도 고종의 북방 외교와 맞닿아 있다.

아관파천 120주년이 우리 사회에 남긴 가장 큰 교훈은 북방과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한국의 미래를 주도적으로 개척해나가야 하고 국제질서 변화의 능동적 포착과 적응 그리고 튼실한 국력 증강을 통해 더 이상 아관파천과 같은 오욕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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