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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2 | 조회수 : 203

제목 : 한·러 극동 경제협력의 의미 (2016.08 매일경제) 글쓴이 : 러시아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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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박근혜 대통령이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해 한·러 정상회담을 하고, 제2차 동방경제포럼(EEF)에도 주빈으로 참석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회담이 한·러 전략적 동반자관계의 지속성 여부를 가름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간 한국에 쌓인 러시아의 불신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양국관계가 다시 후퇴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에 대한 성공 전망은 미지수다. 한·러 정상의 `동상이몽`, 말하자면 양국이 상대방에 대해 추구하는 정책목표의 비대칭 때문에 그렇다. 한국이 사드 배치의 불가피성과 대북 비핵화 압박에 러시아의 이해와 협력을 구하는 외교안보적 측면에 주안점을 둔다면, 러시아는 경제발전 우선전략에 요구되는 한국의 경제력 유인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박 대통령의 방러가 전략적 동반자관계를 공고히 하는 방향으로 결실을 거두려면 어떤 접근법을 구사해야 하는가?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은 세계적 영향력과 국력의 크기에서 러시아가 `갑`이고 한국이 `을`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크렘린의 우호적 협력 유도를 위해서는 먼저 궁지에 몰린 러시아의 입장을 배려하고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는 가운데 상호 이해관계를 수렴시켜 나가는 노력이 요구된다. 현시점에서 러시아가 절실히 원하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국제적 고립의 탈피다.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러시아는 서구로부터 소위 `왕따` 신세다. 엄격한 경제 제재뿐 아니라 G8에서 축출되었고 서방 주요국과의 정상외교도 거의 단절된 상태다. 서구 세계의 일원인 한국이 미국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한 채 대러 제재에 동참하지 않고 러시아 방문 정상회담을 결정한 것은 크렘린의 환심을 살 만하다.

둘째는 극동개발을 위한 대규모 투자 유치다. 극동개발은 블라디미르 푸틴이 국가적 명운을 걸고 추진 중인 초대형 국책사업이다. 문제는 극동 개발에 요구되는 물적 재원, 기술력,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런 제약성을 해외투자 유치를 통해 극복하고자 하는데 러시아는 주변국 가운데 고효율 성장모델과 첨단 선진기술력, 세계 11위 경제력을 갖춘 한국과의 경협을 가장 선호한다.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한국이 러시아 극동지역의 경제 및 안보 주권에 위협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러시아에 경제 거인 중국과 일본은 부담스럽고 한때 전쟁을 경험한 역사적 악연이 있다. 일본과는 북방영토분쟁으로 대규모 투자 유치와 경협 확대에 한계가 있다. 인구진공지대 러시아 동북지역으로 몰려드는 한족들의 인구삼투압과 극동경제의 중국 종속화 심화로 베이징에 대한 경계감도 크다.

한국이 시장사회주의를 채택한 중국의 경제적 욱일승천에 최대 공헌국인 것처럼 러시아의 국가자본주의적 극동개발에도 적극 나서달라는 것이 크렘린이 서울에 보내는 핵심 메시지다. 이렇게 볼 때 블라디보스토크 정상회담의 성공 관건은 농업, 수산업, 조선 클러스터 조성, 극동의 항만 개발 및 현대화, 나진~하산 프로젝트 재개, 남·북·러 전력망·철도·가스관 연결 등 러시아가 요구하는 투자와 경협에 대해 우리 정부가 어느 정도로 호응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본다.

국제관계의 핵심 원리가 국익 `주고받기`이듯 러시아에 주는 것 없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물론 한국 기업의 극동개발 참여는 러시아의 관료주의, 사업성 결여, 서구의 제재 등으로 리스크가 큰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리스크가 큰 곳에 보상도 크다는 고전적 명제를 고려하고 극동이 지닌 경제적 잠재력의 장기적 가치를 감안할 때 한국이 정부 차원에서 투자를 확대하는 것이 한·러 전략적 관계의 내실화에 기여할 것이라 판단된다.

리스크를 껴안은 전략적 극동 진출은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 통일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다는 면에서 일종의 안보비용이고 통일비용이며, 북한 개방의 우회로이자 남북 관계의 경색으로 꺼져가는 유라시아이니셔티브의 불씨를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경우에 따라서 꽉 막힌 남북 관계의 출구가 될 수도 있다. 이번 한·러 정상회담에서 동상이몽이 수렴되길 기대해본다.


[홍완석 한국외대 교수·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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