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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10.05 | 조회수 : 306

제목 : 북러 간 교역 결제통화로서 루블화 도입의 의미와 배경 (2016.05 EMERICS) 글쓴이 : 러시아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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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현재 북한과 러시아는 모두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구의 제재를 받고 있다. 북한은 수차례의 핵실험 때문에,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의 접수와 동부 돈바스 분리주의 세력에 대한 배후 군사 지원 때문에 그렇다. 이런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상황에 처한 러시아와 북한은 자국에 유리한 이익균형과 세력균형을 창출하기 위해 상호 전략적 밀착을 강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북-러 간 다양한 협력 추세 가운데 경제 및 통상 분야에서의 협력 강화 움직임이 가장 눈에 띈다. 모스크바와 평양은 양국 간 미약한 경제협력 수준을 인식하고 이를 획기적으로 확대하기 위한 유용한 경제협력 환경을 구축해 나갔다. 먼저 러시아는 북한과의 경협증진의 걸림돌로 작용한 북한의 대러 채무를 대폭 탕감해주는 조치를 취했다. 2014년 4월 러시아 하원은 구소련 당시 북한에 제공한 109.6억 달러(약 11조 3,797억 원) 중 90%인 90.8억 달러를 탕감하는 협정에 비준했다.1) 동년 5월엔 푸틴 대통령이 신속히 이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그동안 북-러 경제관계 발전의 장애물로 작용했던 채무문제를 제거했다.2)

 

이어서 2014년 6월에 개최된 제6차 북-러 정부 간 통상경제·과학기술협력위원회에서는 루블화를 쌍무교역의 결제통화로 사용하기로 합의했고, 이와 관련된 실무준비와 몇 가지 기술적 문제를 해결한 후3) 그해 10월 루블화 결제를 시작했다.4) 모스크바의 우호적 조치에 평양은 러시아 투자자들과 북한에서 활동하는 러시아 회사 직원들에게 외국 국적의 민간인 가운데 처음으로 장기복수비자를 발급해주고 핸드폰과 인터넷 사용을 허용하는 특혜로 화답했다.5)

 

쌍무교역에서 루블화 사용 합의는 북-러 간 무역과 경제협력을 간편하게 함으로써 낮은 수준의 경제통상 관계를 현저히 활성화시키는 일종의 촉매제로 작용했다. 실제로 루블화 결제방식 도입으로 러시아기업들의 북한 진출이 활발히 모색되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의 거대 금융·산업 그룹 '바조비 엘레멘트'(Базовый элемент)의 동평양 열병합발전소 복구 사업과 구리·무연탄 채굴 사업 참여; 러시아 석유화학기업 '타이프'(ОАО ТАИФ-НК)의 북한 주유소 망 구축 사업; 러시아 기업 '세베르니 프리스키'의 북평양 금광 개발 사업6); 러시아 기업 ‘스바스키 베콘’사의 황해도 양돈 사업 참여; 평양에 러시아 약국과 패스트푸드 체인망 개점; 택시 서비스 제공을 위한 운송기업 설립; 원산-금강산 국제관광지대 관광객 운송기업 설립 등이 검토되고 있다.7) 이밖에 루블화 결제시스템 도입에 힘입어 북-러 양국은 2013년 1억 1,200만 불 규모의 교역액을 2020년까지 10억 달러로 늘려가기로 합의했다.

 

루블화 결제제도 적용은 북-러 양국 간 경제협력을 심화시킬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갖는다. 그렇지만 모스크바와 평양에 결제통화로서 루블화 사용은 단지 양국 간 직교역을 제도적으로 증진시키는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또 다른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우선 북한이 러시아 화폐인 루블을 결제통화로 이용한다는 것은 대러 협력관계 강화 의지를 상징적으로 반영한다. 루블화는 러시아의 국부에 의해 가치를 보장받지만 북한의 원화는 그렇지 않고 국부와도 관련되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에게 루블화 활용은 대러 교역뿐만 아니라 대외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한다.8) 연이은 핵실험이 초래한 유엔의 제재로 외국 금융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러시아 은행을 통해 국제금융시스템에 접속할 수 있게 된다. 또 북한의 만성적인 국제 경화 부족을 우회하고, 중국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현재의 대외무역 구조를 개선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경과의 관계가 악화되어가는 상황에서 북한 경제의 중국 종속성을 막는다는 가운데 중-러 균형외교를 복원하고자 하는 전략적 포석도 담겨 있다.

 

러시아에게도 대북 교역에서 루블화 결제시스템 구축은 다양한 수준의 국익을 제공한다. 첫째는 중국에 경사된 북한에 대한 영향력 회복이다. 루블화를 무역대금 결제통화로 채택함으로써 대북 경제협력의 확대가 이루어지게 되고, 특히 김정은 정권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에너지, 전력, 무기, 식량 등 전략자원에 대한 루블화 수출이 늘어남으로써 자연스럽게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 투사가 강화될 수 있다. 또 러시아가 연간 2만 명 정도 받아들이고 있는 북한의 잉여 노동력이 시베리아 극동지역 개발에 매우 유용하지만, 역으로 북한에게도 대러 인력 송출이 주요 외화 획득원이고 이런 거래의 결제수단이 루블화라는 점에서 러시아의 대북 영향력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둘째는 루블화의 국제화, 세계화이다. 오래전부터 러시아는 중국과 함께 달러 중심의 세계금융시스템을 강하게 비판하고 국제통화의 다양성을 요구해 왔다. 말하자면 기축통화의 다극화 체제를 큰 목소리로 외쳐온 것이다. 그 연장 선상에서 러시아는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에 도전장을 내밀면서 루블화의 기축통화화 야망을 숨기지 않고 있다. 실제로 러시아는 자국산 원유 및 가스 수출 시 루블화 결제비중을 높여나가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데, 대북 교역에서 루블화 결제제도 구축은 러시아 화폐의 국제적 위상 강화와 함께 루블화를 기축통화 반열에 오를 수 있는 여건 조성에 기여한다.9)

 

셋째는 장기적 포석으로 루블 경제권의 확대이다. 러시아는 유럽연합(EU)에 대항하는, 자국이 주도하는 정치경제공동체 창설을 꾸준히 모색해왔다. 오랜 준비와 노력 끝에 러시아는 2015년 1월 유라시아경제연합(EEU: Eurasian Economic Union)을 야심 차게 출범시켰다. 2015년 출범 당시 러시아, 벨라루스, 카자흐스탄 등 3개국이었던 EEU는 현재 키르기스스탄, 아르메니아가 추가로 가입해 5개국으로 늘어났고 장기적으로 아시아 국가를 포함해 회원국 수를 약 40개국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설정하고 있다. 유럽연합이 유로화로 화폐통합을 한 것처럼 푸틴의 러시아도 궁극적으로 화폐통합을 통해 EEU를 Rouble 경제권으로 만들고자 한다. 이렇게 볼 때 대북 교역에서 루블화 결제시스템의 도입은 장기적으로 북한을 러시아 경제권으로 편입시킬 가능성을 내포한다.10)

 

정리하면 러시아의 대북 루블화 결제제도 적용은 일차적으로 평양에 대한 자국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유리한 기회를 갖게 하고, 동시에 전 세계적 수준의 루블 경제권 확대, 루블화의 명성 강화 및 기축통화화를 위한 유익한 환경조성, 미국의 대러 제재에 대한 대응 등의 의미를 지닌다.

 

위에서 살펴본 바처럼, 2014년 6월에 합의한 북-러간 루블화 무역결제제도는 양국이 경제협력의 가속화를 위해 합의한 조치이지만 그 의미와 배경은 다층적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한마디로 루블화 결제시스템 도입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능동적으로 적응하고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북-러 양국 지도부가 상호 밀착의 필요성과 그 의지를 경제적 문법으로 표현한 정치‧외교적 합창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성일 : 2016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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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나머지 10%인 10억9천만 달러는 향후 20년간 40회에 걸쳐 러시아 대외은행 계좌로 분할상환 받되 이를 북한의 보건과 교육, 에너지 분야에 재투자하기로 했다.
2) 북한은 자국에 대한 부채 탕감의 보답으로 러시아의 크림 합병을 공식 지지했다. Gregory Toloraya, “Russia-North Korea Economic Ties Gain Traction,” 38 North,
http://38north.org/2014/11/toloraya110614/.
3) 북한의 대외무역은행과 고려개발은행은 러시아 우파 '지역개발은행'에 루블 대리계좌를 개설했다.
4) “Россия и КНДР перешли на рубль во взаимных расчетах,”
https://lenta.ru/news/2014/10/20/rubl/
5) 러시아와 북한은 향후 상호 무비자 제도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고, 이 아젠다를 양국 공식 회담 의제에 포함시켰다. “러시아-북한, 무비자 제도 도입 전망,” 『러시아의 소리』 , 2014년 10월 28일.
http://kr.sputniknews.com/korean.ruvr.ru/news/2014_10_28/279312632/
6) “러-北 경제협력 가속도…양국 경협회의 큰 성과,” 『연합뉴스』, 2014년 6월 17일.
7) 김다예, “2014년 한러, 북러 교류 협력 일지,” 『2014 RUSSIA REPORT』 (용인: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2015), pp. 206-208; 김다예, “2015년 한러, 북러 교류협력 일지,” 『2015 RUSSIA REPORT』 (용인: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2016), pp. 166-171.
8) “러, 북한 철도망 10구간 나눠 현대화 작업 착수,” 『Russia 포커스』, 2014년 12월 5일.
9) 현재까지 러시아와 국가통화결제 협정을 체결한 국가는 독립국가연합, 중국, 베트남, 북한 등이 있다.
10) “북-러 新밀월시대, 경제협력에 가속 페달 ②,” 『통일경제』 , 2015년 6월호.
http://www.yonhapmidas.com/article/150607174803_914326 (검색일: 2016년 4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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