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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17 | 조회수 : 895

제목 : [동아일보] 인문-자연 통합적 사고가 지식사회 무기 글쓴이 : 교수학습개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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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 - 자연 통합적 사고가 지식사회 무기”


동아일보 회의실에서 신년 대담을 나누고 있는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오른쪽)와 정민 한양대 교수. 이들은 대담 내내 “학문의 경계, 경직된 사고의 경계를 허물지 않으면 한국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면서 통합적인 학문 연구와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미옥 기자 

20세기가 전문화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통합의 시대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 자연과학과 예술의 만남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지식이 서로 통합해 더욱 새롭고 창조적인 지식과 학문,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통합은 왜 필요하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인지, 자연과학자 최재천(53·생물학) 이화여대 석좌교수와 인문학자 정민(46·국문학) 한양대 교수가 흥미로운 대화를 나눴다.


최 교수는 2005년 ‘지식의 대통합, 통섭’이라는 책을 번역 출판해 통합과 같은 뜻의 통섭(統攝) 개념을 전파한 데 이어 2006년 가을 이화여대에 통섭원을 개원하고 지식과 학문의 통합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정 교수는 한국 역사상 최고의 전방위적(全方位的) 사상가인 다산 정약용의 통합적 사고를 소개한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라는 책을 최근 출간한 바 있다.


∇최재천=최근 ‘다산선생 지식경영법’이란 책을 내셨는데, 다산 선생의 통합적인 지식경영법을 그대로 실천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우리 학계를 보면 인문학자들이 자연과학에 접근하는 것을 특히 어려워하더군요. 그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만날 수 있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에서 생태학을 강의할 때, 처음엔 기본 방정식도 모르던 학생들이 혼자 공부해 따라오는 걸 보았습니다. 우리의 경우, 혼자 수학을 공부해서 따라올 대학생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사회학과 학생에게 물리학과 양자역학 강의를 들어보라고 하면 한 시간도 견디지 못할 겁니다.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정민=선생님께서 번역하신 ‘통섭’을 보니, 그동안 우리의 학제간(學際間) 연구가 다(多)학문적인 유희에 그치고 범(汎)학문으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지적해 놓으셨더군요. 그동안 각자 얘기만 해놓고 그걸 학제간 연구라고 해 왔으니 진정한 통합적 연구가 아니었던 거죠. 전문가라는 미명 아래, 자기 영역만 고수하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서로 다른 길을 갔습니다. 이젠 통합적 식견이 필요합니다.


∇최=옛날엔 한 사람이 커버할 수 있는 지식의 양이 많지 않아서 전방위적이고 르네상스적인 지식인이 가능했지만 지금은 한 사람이 이렇게 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여럿이 함께 해야 합니다. 제가 통섭원을 만들고 이화여대 이화학술원에서 이론적인 학문과 실용적인 학문을 융합하려고 노력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정=그러기 위해선 정보를 집어 주는 교육이 아니라 식견을 늘려 주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최=우리 대학은 전문화라는 것에 집착해 과도하게 학과를 세분해 놓았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좋은 대학들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초 학문을 중시합니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고령화를 감안해 보면 대단히 중요합니다. 수명은 90세까지 늘어나는데 ‘사오정’이다 ‘오륙도’다 해서 직장 생활은 점점 짧아집니다. 그 험악한 입시 지옥을 겪고 대학에 가서 공부했는데 그걸 써먹는 기간이 고작 20년이라니…. 제가 서울대에 있을 때 한 최고경영자(CEO)가 강연을 하면서 “기업이 원하는 대로 학생들을 교육해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표시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물었죠. “서울대가 당신 기업을 위해 맞춤형 직업훈련소가 되라는 말이냐. 당신 기업이 우리 학생들을 죽을 때까지 먹여 살려주겠다고 약속하면 내가 총장과 상의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신 기업에 딱 맞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다.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고작해야 10년 써먹고 차버릴 사람들이…”라고 말이죠. 그래서 응용력이 있는 기초학문이 중요합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통합적인 기초 학문을 잘 다져 놓으면 언제든지 활용 가능합니다. 고령화 사회에 새로운 직업으로 변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는 말입니다.


∇정=전문 분야의 연구 능력이 심화되는 것도 아니면서 학문 분야나 학과가 너무 심하게 쪼개지고 있습니다. 세포 분열만 하다 보니 통합적인 안목과 통합적인 사고가 사라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죠.


∇최=앞으로 기업들이 엄청난 경쟁 속에서 생존하려면 기초 학문의 통합적 연구에서 그 가능성을 찾아야 합니다. 미국의 대학들처럼 인문계도 자연과학을 필수로 공부해야 합니다. 고등학교의 문과, 이과의 구분도 깨져야 합니다.


∇정=다산 선생의 다방면에 걸친 방대한 연구를 보고 놀라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다산의 저작물을 잘 들여다보면 통합적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다산이 자연과학적인 정보와 인문학적인 정보를 한데 아우를 수 있었던 것도 통합적 사고 덕분이었습니다.





∇최=이제, 싫든 좋든 90까지의 인생을 스스로 디자인해야 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이고 유연하게 사고하지 않으면 백발백중 무너집니다. 휴대전화를 예로 들어 볼까요. 휴대전화는 이제 갈 데까지 갔습니다. 누가 더 얇게 만드느냐 정도인데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휴대전화 제조회사의 한 간부에게 ‘귀뚜라미는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더니 각별한 관심을 보이더군요. 새로운 분야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야 합니다. 한 제자가 삼성의 입사 면접에서 이렇게 말했다더군요. “강화도 갯벌에서 수컷 게가 어떻게 암컷 게를 유혹하는지, 이런 아이디어를 휴대전화에 적용해 대박을 터뜨리고 싶다.” 얼마 후 그 회사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 학생 더 추천해 달라고요. 이게 바로 경계를 허무는 통합적 사고, 통합적 연구입니다. 이게 없으면 미래 산업도 불투명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생물학과 대학원에 간 국문학과 제자가 한 명 있는데 제게 이런 말을 하더군요. “연암 박지원의 눈으로 생물학을 보니 잘 먹혀 들어가더라”고 말입니다. 다산의 글 가운데 ‘어망득홍(漁網得鴻)’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고기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렸다고 그걸 버릴 것이냐’는 뜻입니다. 당연히 버리지 말아야죠. 학자의 미덕은 호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동업자의 글보다는 다른 분야 사람들의 글에서 연구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진리는 우리가 만들어 놓은 학문의 경계, 사고의 경계를 전혀 상관하지도 않고 존중하지도 않습니다. 진리는 제 마음대로 돌아다니는데 우리는 경계를 정해 놓고 그 경계 안으로 진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경계를 허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미래의 경쟁력입니다.


정리=이광표 기자 kplee@donga.com <2007년 1월 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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