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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17 | 조회수 : 726

제목 : [한겨레]“교수님 휴강해요”를 듣는 교수의 속마음 글쓴이 : 교수학습개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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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휴강해요” 란 말을 들으면 갈등이 생긴다. 사실은 나도 휴강을 하고 싶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오늘은 이 주제를 학생들에게 이야기해주어야지, 이번 시간에는 이런 문제를 학생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들으면 재미있겠다. 이런 생각들이 항상 드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나도 휴강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아니 솔직히 많다.

먼저 멋있는 말을 해보면, 학생들과 진짜 알찬 수업을 하고 나면 느끼는 뿌듯함은 참으로 행복한 것이다. 야! 이런 것이 대학이 가질 수 있는 아름다움이구나! 이 작은 강의실에서 정말로 인류역사의 중요한 한 장을 우리가 쓰고 있구나 라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자만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런 생각을 하고 기대를 하면 강의 시간이 기다려지고 수업이 자연스러운 배움과 토론의 장이 된다.

그런데 그럴 때도 항상 낙오하는 학생들이 한둘씩 있게 된다. 때론 내 수업이 힘들고 재미없어서, 혹은 그렇지는 않은데 그날따라 몸의 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런 학생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것 말고도 애당초부터 나의 수업이 도무지 그 학생의 스타일에 맞지 않아, 한마디로 교수와 학생의 코드가 맞지 않아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문제는 줄여나가도록 교수나 학생이 서로 조정해 나가려고 노력을 하지만 결국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게 인간의 군상이니 이는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로 인하여 “교수님 휴강해요.” 라고 한다면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국지적인 문제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으로 “교수님 휴강해요.”라는 분위기가 좀더 근본적인 문제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진짜 문제란 말을 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 대학의 현실이 문제의 핵심에 놓여있다. 그냥 무작정 대학수업 자체가 별 의미를 못 가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당연히 휴강은 가장 큰 미덕이 된다. 대학에서 배우는 것이 별것 없고, 이 수업에서 내가 느끼는 것이 없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 수업은 전공필수고, 이 수업 펑크나면 학점에 문제 생기고, 이 수업은 이래서 이렇고, 저 수업은 저래서 저렇고 한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수강해야하는 것이다... 학점은 따야겠고 수업은 의미가 없고 그러니 적당히 휴강하고 학점을 받는다면 그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결론이 된다. 그게 문제다!

이 정도 이야기를 하다보면 기가 막혀 말이 안나온다. 주객이 전도된 대학교육의 현실을 보고 있으려면 도무지 대학의 기능이 이래가지고야 그 누구에게도 쓸데없는 곳이 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4년 이상 다니는데 배우게 되는 것과 유익한 것이 아주 없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대학 교육의 수준이 그 정도에서 만족할 일은 아니지 않는가.

“교수님 휴강해요.” 소리에 부끄러움도 고통도 없다. 그냥 아주 자연스러운 “쿨”한 말이 된다. 학생들의 애교 섞인 칭얼거림에 교수는 아주 유쾌한 선심쓰기 배려를 해주기도 한다. 물론 다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말도 안된다. 그렇지만 이것이 엄연히 존재하는 대학의 부정적인 현실의 단면이다.

문제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고 대안도 그만큼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근본적인 면에서부터 무언가 빗나가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배워서 익히고 그래서 즐겁고, 같이 밤을 세워가며 토론을 하고, 진리를 생각한다는 거창한 대학의 근본적인 이념을 굳이 여기서 들먹이지 않아도 최소한 그냥 취업을 위한, 대졸자의 졸업장을 주기위한 혹은 스무살의 젊음을 마냥 즐기기 위한 도피처로서의 대학이라면 그 존재의 이유가 2% 가 아니라 최소한 20%, 아니 200% 부족한 일이다.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국가와 사회에 있다. 그렇지만 그래도 당사자인 학생들을 먼저 나무라고 싶다. 세상이 그렇다고 한들 젊음마저 이래서야 되겠는가! 학생들은 이러한 잘못을 사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사회를 정화시킬 지혜와 용기가 젊음에서 비롯된다는 현실을 그대들은 자신에 대한 반성으로 이해해야 할 일이다.

근데 사실은 학생들에 대한 비판은, 솔직히 말하면, 그냥 끼워팔기식 혹은 구색 맞추기이다. 더욱 준엄한 비판을 받아 마땅한 인간들은 나를 포함한 교수 집단이다. 이런 대학의 현실을 그냥 수수방관하고 조장까지 하여 적당히 철밥그릇 차고 기득권을 누리는 대학교수라는 인간들은 한마디로 쓰레기다.

최고의 지성이라는 역겨운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최고의 지성에게 최고의 책임과 최고의 비판이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니 “교수님 휴강해요.” 란 말을 듣는 자들은 자폭이라도 해야한다는 비장한 마음으로 문제를 인식하라. 이렇게 극단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이 굳이 나의 스타일이여서만은 아니다. 현실은 훨씬 더 침울하다. 아니 침울하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최고의 지성으로 사회와 국가와 인류를 끌어안고 갈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의 책임있는 문제의식과 실천적인 행동이 없다면 말이 되겠는가. 그래서 “교수님 휴강해요.”의 책임은 온전히 우리에게 있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겨레 2005년11월1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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