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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17 | 조회수 : 792

제목 : [한겨레]취업영어를 위해 학문을 죽이는 대학들 글쓴이 : 교수학습개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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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 출신의 서강대 총장은 최근 기숙사 청소원도 영어 사용자로 채용하겠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영어를 쓰지 않고는 생활이 불가능하도록 대학을 바꾸겠다는 것이다. 영어 구사능력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졸업장을 주지 않는 영어 졸업 인증제를 채택하는 학교도 늘고 있다. 이공계 학생도 예외는 아니다. 대학교 전체가 거대한 취업영어 학원으로 변하고 있다는 지적이 지나쳐 보이지 않는다.

지구적 경쟁시대에서 영어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영어는 이미 중요한 정보 전달 수단이 됐다. 무역이나 외교에서도 소통의 표준이 됐다. 이런 시대에 맞는 인력을 양성해야 할 대학으로서 영어 구사능력을 키우는 것은 불가피하다.

문제는 수준이다. 대학교육의 중심은 영어가 아니다. 대학이 연구하고 가르치는 것은 소통 수단이 아니라 학문의 내용이다. 영어는 전공학도의 소양과 능력을 기르는 데 필요해서 배우는 수단일 뿐이다. ‘영어로 학문하기’라는 주장도 있지만, 제 나라 말로도 어려운 학문의 깊이와 폭을 모든 학생이 어떻게 영어로 이를 수 있을까. 언어도 잃고 학문에도 실패한다. 왼손잡이를 오른손잡이로 바꾸려다 학습장애, 성장장애를 겪는 경우는 흔하다.

언어는 정신과 문화를 담는 그릇이다. 그 나라 사람의 세계관·사고체계·미감·습관 따위가 담긴다. 황우석 교수가 자랑하는 젓가락 전통도 마찬가지다. 언어라는 그릇이 깨지면 문화 역시 사라진다. ‘한류’도 있을 수 없다. 프랑수아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은 그래서 제 나라 언어를 잃은 민족에게 귀기울일 사람은 없다고 단언했다. 취업을 위해 대학이 학문을 포기할 수는 없다. 취업영어는 필요한 부문에서 필요한 만큼 가르치거나 사용하면 된다

<한겨레 2005년11월07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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