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 28459

작성일 : 07.09.17 | 조회수 : 728

제목 : 광주교대 박남기교수 강의법 칼럼(11)-꽃다발, 화분, .. 글쓴이 : 교수학습개발센터
첨부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꽃다발, 화분, 그리고 숲 속에 핀 꽃 


  대학에 자리를 잡고 가르치는 일을 하기 위해 강단에 섰을 때 나를 고민하게 했던 것 중의 하나는 주어진 교재를 가지고 어떻게 하는 것이 강의이고, 강의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 나의 활동이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많은 경우 학생들이 스스로 읽고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가 굳이 강의라는 활동을 통해 학생들에게 교재 내용을 설명하는 활동을 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책도 구하기 어렵고 복사 시설도 없던 시절에는 교수가 강의실에 들어와 책 내용을 불러 주면 열심히 받아 적는 것도 강의로 통한 시절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대학 시절에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이제는 누구나 교재를 가지고 있고, 학생들도 교수 이상으로 다양한 자료에 접할 수 있는 상황인데 주어진 교재를 가지고 강의를 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일까 
 
  어느 해 스승의 날, 졸업해 교직에 있는 제자들이 찾아와 예쁜 꽃다발을 가득 안겨 주고 갔는데, 재학생 한 아이가 연구실에 들러 수줍은 모습으로 아주 작은 러브체인 화분을 하나 건넸다. 졸업생들이 주고 간 값비싼 꽃다발들은 수일 내에 모두 시들어 버렸다. 그런데 재학생이 가져온 조그마한 러브체인 화분은 물을 주었더니 아주 잘 자랐다. 그래서 분갈이를 하고, 여름에는 줄기를 잘라 다시 다른 화분에 심어 찾아오는 제자들에게 분양도 했다. 잘 길러서 자신들의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당부와 함께. 그러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교재는 예쁘게 피어 있는 꽃이다. 강의는 교재의 내용을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활동인데, 그 핵심은 교재 내용의 뿌리까지 파서 학생들의 가슴에 심어 주는 것이다. 가르침은 꽃을 꺾어 학생들의 가슴에 안겨 주는 것이 아니라 꽃을 뿌리째 아이들의 가슴에 옮겨 심어 자라서 열매 맺도록 하는 작업이다. 깊은 뿌리를 제대로 밝히어 심어 주면 뿌리를 내리고 번성하여 열매를 맺게 될 것이지만 그리하지 못하면 금방 시들어 버리게 될 것이다.
 
  주어진 교재의 핵심을 밝히고, 그 주제가 나타나게 된 배경과 역사, 관련된 뒷이야기, 다른 주제와의 관련성 등을 제공하고, 교재에 들어 있지 않지만 추가되어야 할 내용을 보완하는 등의 활동이 뿌리째 뽑아서 심어 주기 위한 활동의 예가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학생들 가슴에서 주어진 내용이 뿌리를 내리도록 하기 위해서는 더 중요한 활동이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심어 놓은 꽃이 시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물과 거름도 함께 주어야 할 것이다. 강의를 통해 전달되는 잔잔한 감동은 대지를 촉촉히 적시는 비와 같고,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일화는 심어 놓은 꽃이 열매를 맺도록 하는 거름과 같다.
 
  뿌리를 밝히어 심어 주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학생들 스스로 교재라는 꽃의 밑에 숨겨져 있는 뿌리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함께 길러 줄 필요가 있다. 따라서 부교재, 다른 읽을거리나 참고 사이트 등을 소개할 때에는 이들이 주어진 강의 주제의 뿌리를 찾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내 나름대로 꽃다발과 화분의 비유를 발전시켜 가고 있던 중 <채근담>에서 권력으로 얻은 부귀와 명예는 화병 속의 꽃과 같고, 재능으로 얻은 부귀와 명예는 화분 속의 꽃과 같으며, 덕망으로 얻은 부귀와 명예는 숲 속에 핀 꽃과 같다는 더 세련되고 심도 깊은 비유를 발견하게 되었다. 화병 속의 꽃은 화려하지만 며칠 가지 않아 시들고, 화분 속의 꽃 또한 지속적으로 물을 주고 가꾸지 않으면 시들어 버린다. 그러나 숲 속에 핀 꽃은 공들여 가꾸지 않아도 제 스스로 번성한다. 이 비유는 심어 놓은 꽃이 스스로 잘 자라도록 하기 위해서는 화분이 아니라 꽃밭에 심어야 함을 깨닫게 한다. 학생들이 머리로 받아들이는 정도가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가르칠 때 그 꽃은 스스로 번성하게 될 것이다.
 
  <채근담>의 비유는 가르침을 제공하는 권위의 근원에 관한 비유로도 이해할 수 있다. 즉 학점이나 상벌 등의 통제력으로 주는 가르침은 화병 속의 꽃과 같고, 실력으로 주는 가르침은 화분 속의 꽃과 같으며, 사랑과 덕으로 주는 가르침은 숲 속에 핀 꽃과 같다. 굳이 더 설명이 필요치 않은 아름다운 비유이다. <채근담>의 비유는 가르침에 관한 비유를 찾아왔던 나에게 선현의 지혜에서 배우려는 노력을 선행하라는 깨우침을 주었다.

<한국대학신문>  news@unn.net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