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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17 | 조회수 : 779

제목 : [바로 서는 한국사회―학교의 토론교육 부재] 말은 있어도 대화는 없... 글쓴이 : 교수학습개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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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서는 한국사회―학교의 토론교육 부재] 말은 있어도 대화는 없다

“토론 교육이요  사실상 없다고 봐야죠. 관심있는 선생님들 몇 분 빼고는 잘 몰라요. 언제 토론을 배우기나 했어야죠.”(D초등학교 K모 교사)

“토론식 수업이 뭐죠  학급회의 시간에 몇분 정도 하는 토론 빼고는 해본 적 없는데요. 그냥 선생님이 가르쳐주면 외우는거죠.”(A 고등학교 3학년 K군)

한국에 토론문화가 없는 까닭은 제대로 된 토론 교육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데서 비롯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토론은 처음이에요=H대학 강당. 교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고등학생들이 각자 적어온 인쇄물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며 쉴새 없이 작은 소리로 웅얼거리고 있었다. 이 학교가 주최한 토론대회에 참가한 24개 교교 대표들이 대회 시작전 준비해 온 자료를 최종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었다.

이윽고 시작한 대회에서 김모(K고 2)군은 ‘조기유학 찬성’에 대해 준비해 온 입론을 읽어 내려갔다. 곧이어 이모(S고 2)양의 반대 입론이 이어진 뒤 양쪽에 반론과 재반론 시간이 주어졌다.

상대방의 주장을 듣고 이를 반박해야 할 시간이었지만 학생들은 준비해 온 자료를 바탕으로 자신의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었다. 심사관들의 미간이 찌푸려졌고 학생들의 이마에선 땀이 송글송글 맺혀났다.

대회가 끝난 뒤 양측 학생들은 지도교사와 함께 모여 토론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김군은 “4주동안 준비를 했지만 막상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 나오자 당황스러웠다”며 “이번 대회가 11년동안 학교생활하면서 처음해 본 제대로 된 토론이었다”며 땀을 닦았다. 김군을 지도한 송모(44) 교사는 “미리 주제를 통보받고 준비했지만 한번도 제대로 해본 적 없는 토론을 하려니 미숙한 점이 많다”며 “토론을 지도하는 교사 입장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토론교육이 없다=일선 교사들은 토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동감하면서도 실제로 토론식 수업에 나서면 어려움을 겪는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초중고 정규교과엔 ‘토론’이라는 과목은 아예 편성돼 있지않다. 대학교육 과정에서도 한양대 등 10여개 대학만이 토론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실정이다.

올해 고3 학생들까지 확대된 7차 교육과정에서는 실천 중심의 다양한 체험 교육과 토론학습을 강조하고 있지만 정작 토론을 가르쳐야 할 교사들에 대한 재교육은 극히 미미하다.

연구단체인 서울초등연구회 주관으로 방학마다 열리는 교사 직무연수 프로그램에 희망자에 한해 15시간의 프로그램이 개설돼 있으며 서울시 교원연수원 주관 연수 과정에 100분짜리 1강좌가 마련돼 있는 정도다.

대학에서 토론반을 지도하고 있는 강태완 교수(경희대 언론정보학부)는 지난해 교사 대상 토론 연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지원자가 없어 강좌를 폐기했다. 그는 “한국의 토론 문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교육부에 토론을 특별활동 과목으로 지정할 것을 요구했지만 부정적인 대답만 돌아왔다”고 말했다. 강교수는 또 “부실한 교육제도를 보완할 일선 선생님들의 열정이 절실하지만 대부분이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토론을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래 교사’들의 배움터인 교육대,사범대에도 토론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교과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서울교대 대학원에서 독서교육연구를 강의하는 김병원 교수(전 포항공대 인문사회학부)는 “교대,사대에서 예비교사들을 대상으로 토론 교수법을 가르치는 곳은 드물다”며 “강의 시간에 토론에 대한 내용으로 수업을 하던 도중 학생들이 처음 접해보는 과정이라며 놀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먼저 교사들부터 토론에 익숙해져야 한다”며 “한국의 토론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무엇보다도 교사들에 대한 토론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토론 문화가 자리잡아야=전문가들은 “토론은 듣기에서 비롯된다”고 입을 모은다. 상대방의 주장을 주의 깊게 들어야 논지를 파악한 뒤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종합 언어 예술’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

뿌리 깊은 유교 문화로 인해 수직적 의사결정 구조가 사회 전반을 억누르고 있긴 하지만 사회 민주화와 더불어 토론 문화가 자리잡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데에도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서울초등토론교육연구회 곽영화 회장은 “배고플 때 ‘엄마 밥’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아이들이 가정에서 올바른 문장으로 대화를 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며 “가정에서부터 논리적인 의사소통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말하기 능력이 형성되는 제도 교육 이전 시기가 학교 교육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가정에서 대화의 시간을 많이 가질 것과 아이와 ‘공통의 관심사’를 만들 것도 전문가들이 빼놓지 않는 ‘토론 능력 강화’의 지름길이다.

정규 교과과정을 통해 체계적인 토론 교육을 시키는 것 또한 ‘토론문화 바로세우기’의 핵심. 토론 교육이 뿌리내리기 위해선 재교육을 통해 토론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고 교과 수업에 토론을 적극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국민일보 2004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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