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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8.15 | 조회수 : 299

제목 : 어느 삼치구이 (2006/01/10) 글쓴이 : 이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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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다니는 교회의 어느 청년이 임용고시를 보았습니다.
그 결과가 좋지 않았네요... 담담히 쓴 그녀의 글이 제 맘을 울컥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 아침겸 점심상에 삼치구이 한 마리가 올랐습니다.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삼치구이를 보고,

갑자기 눈물이 울컷 솟았습니다.

엄마가 눈치를 차릴까 화장실이 급한 척하며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숨 죽여 한참을 속으로 울었습니다.



오늘 아침 임용고시 결과 발표가 있었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생각보다 너무 담담했습니다.

'그래,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으니까, 이미 나온 결과인데 어쩔 수 없지...'

과거에 연연해서 현재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은 사람

이라고 평소에 아이들한테 얘기했기 때문에,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그런지 마냥 투정을 부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참을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일부러 잡생각하지 않고, 잠을 청해 봤습니다.

다만, 엄마, 아빠께 뭐라 드릴 말씀이 없어 마음이 쓰였습니다.

조금 뒤 운동을 가신 엄마가 돌아오셨는지 현관문 소리와 강아지들이 짖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엄마는 시험 결과가 궁금하실텐데도 내 방문을 두드리지 않고, 묵묵히 당신의 일을 하셨습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식탁에 앉아 고구마 하나를 집어 들고 껍질을 까 입에 넣으며,

"엄마, 나 안 됐어. 엄마가 기도하느라 고생했는데, 미안해서 어쩌지..."

씨~익 웃는 여유까지 보였습니다.

엄마도 그 여유에 답하듯 가볍게 웃으시며,

"그건 그렇고, 그렇게 공부했는데 안 되서 어쩌냐..."

대수롭지 않게 대꾸를 하시고 식사를 준비하셨습니다.



우리 엄마는 새내기 성도이십니다.

작년에

'엄마가 기도해 주면 임용공부 평안히 준비할 거 같다'는 제 말을 듣고 교회에 등록을 하셨습니다.

사실 예수님보다 절 보고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분이십니다.

주기도문도 사도신경도, 성경에 어디에 뭐가 있는 지도 잘 모르십니다.

그런 분이 제가 시험 보는 당일,

목사님께 기도 부탁을 드리기 위해 마음 졸이며 온 교회를 돌아다니셨다는군요.

-당신이 기도하고 싶은데, 그 방법을 몰라 그랬다는군요.

임용시험은 주일에 있습니다.

시험을 치러 가기 전에 지나가는 말로,

"엄마, 나 전공 시험 11시니까 그 때 예배 드려,

아참~! 혹시 로비에서 목사님 뵈면 기도부탁 좀 드려줘."

라고 내뱉고 갔는데,

엄마는 9시 예배부터 계속 예배를 드렸답니다.

또 주차지도 봉사를 하러 가신 그 목사님을 찾기 위해 몇 시간을 맘 졸이며 여기저기 뛰어다니셨다고 하더군요.

몇 번의 엇갈림 끝에 간신히 기도부탁을 드리고,

식사도 거른 채 예배를 드렸답니다.

시험을 치르고 온 날,

엄마는 제 앞에서 눈물과 콧물 범벅으로 당신 하루를 말씀하셨습니다.

참 가슴이 아팠습니다.

드라마 볼 때 말고는 제 앞에서 눈물을 잘 보이시지 않는 분인데...



아침상에 오른 삼치구이를 보는 순간,

시험 당일

예배당에서 맘 졸이며 목사님을 찾아다니는 엄마 모습이 스쳤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삼치구이...

시험에 떨어진 딸에게 모진 말 한 마디 못하고,

노릇노릇하게 삼치 한 마리를 냉큼 구워 상에 올린 엄마.

당신은 연신 김치 쪼가리에 손을 뻗으며,

삼치구이는 내 몫으로 건들지도 않는...

한 숟갈 입에 밥을 넣고, 젓가락을 드는데

눈물이 왈칵 솟았습니다.

도저히 삼치에는 손이 안 가더군요.

한참을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낸 뒤,

무사히 식사를 마쳤습니다.

물론 삼치 구이도 맛있게 먹었고요^^

-맛있더라고요~



저 나쁜 딸이죠 

하지만 더 나쁜 딸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까지만 반성하고,

오늘까지만 우울해하려고요.

비록 지금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엄마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음을 간증하고 싶습니다.

2006년 다시 그 기도빨  받아 불끈불끈 힘내 보렵니다^^



작년 한 해 행복했습니다.

문자로, 기도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힘주는 친구들 때문에 평안한 가운데 공부할 수 있었습니다.

올해 또 다시 정교사가 아닌 기간제로 교단에 서야 되고,

공부와 1년을 더 씨름해야 하지만,

지금 주위에 하나님의 형상들 속에서 주시는 기쁨 온전히 누리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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