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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5 | 조회수 : 1586

제목 : (이상훈 교수님 칼럼) 일본 세습정치인 ‘파벌·보수화’ 먹고 자란다 (한겨레 신문, 2008.10.06) 글쓴이 : 일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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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월간현대> 8월호는 1991년 11월 취임한 미야자와 기이치부터 (지난달 사임한) 후쿠다 야스오까지 10명의 총리 가운데 무라야마 도미이치를 뺀 9명이 세습 정치인이었다고 보도했다. “일본의 최고권력이 사실상 세습제가 됐다”는 지적이 따라붙었다.

3대째 정치인 가문 출신의 아소 다로가 총리직을 이으면서 그 원칙은 새삼 확인됐다. 그의 첫 내각에는 18명 각료 가운데 11명의 세습 정치인이 포함됐다. 비슷한 시점에 정계 은퇴를 선언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차남에게 지역구를 물려줄 뜻을 내비쳤다. 집권 시절 파벌정치 개혁에 목소리를 높였던 그였기에 실망감이 터져나왔다.

세습 정치인들은 △명문대를 졸업해 △대기업·정부관청에 잠시 근무한 뒤 △정·재계 명문가 자녀와 결혼해 △아버지의 선거 기반으로 의원에 당선되는, 일정한 ‘규칙’을 따른다. 서민 생활을 모르는 ‘오봇창’(도련님)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현실에 만족하고 변화를 바라지 않는 일본 사회의 보수화 움직임과도 궤를 같이한다. 3일 만난 이상훈 한국외대 교수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정치가 사물(사적인 물건)화되는 것은 방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치의 대표적 특징인 정당 계파주의는 현재 한국 정치에도 만연해 있다.

지난해 일본 정부가 벌인 초등학생 장래희망 조사에서 운동선수(남·33.6%)와 수의사(여·11%)가 수위로 꼽혔다. 10위(2~4%)까지 내려가도 ‘총리대신’은 없었다. 한국 초등학생에 대한 같은 조사에서도 ‘대통령’은 언제부턴가 자취를 감췄다. 한국에서도 정치인은 ‘감히’ 꿈도 꾸지 않는 직종으로 바뀌고 있다. 김외현 기자

 


세습의원, 조직·지명도·자금서 유리
의원 중심 ‘이익 공동체’ 재생산 구조
사회 전반적 보수화 조류도 한몫


-세습 정치인은 일본에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들어 그 실태가 국내외에서 조명받는 이유는?

= 맞는 말이다. 하토야마 가문처럼 벌써 5대째 정치인을 배출하고 있는 집안도 있다.(그림) 이번에는 아소 다로 1기 내각에 대거 등장한 세습 정치인들이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 차남의 선거구 승계 등과 맞물렸기 때문이다. 세습정치인은 일본 시민단체들의 단골 낙선운동 소재로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일반 국민들의 보편적인 의식으로는 자리잡지 못했다. 이번에도 주목받을 계기가 없었다면 평소처럼 그냥 넘어갔을 것이다.

- 일본 정치인들의 세습은 어떻게 이뤄지는가?

=3대째 정치인인 고이즈미 전 총리의 집안을 보면 여러가지 경우가 나타난다. 고이즈미의 외할아버지는 체신대신까지 올랐던 마타지로(1865~1951)였다. 아들이 없었던 그는 자기 집에 드나들다 자신의 딸과 야반도주한 한 당직자를 사위로 들여 후계자로 삼았다. 이 당직자는 장인의 후광에 힘입어 32살에 중의원에 진출한다. 그는 성을 고이즈미로 바꿔 가문의 상속자가 됐고 나중에 방위청 장관까지 올랐다. 고이즈미 전 총리의 아버지 준야(1904~69)다.

1969년 준야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영국 런던대학에 유학중이었던 아들 준이치로(전 총리·1942~)가 급히 귀국했다. 준이치로는 그해 선거에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그 뒤 후쿠다 다케오 전 총리 문하에서 ‘정치 수업’을 받았고, 3년 뒤 선거에서 30살 나이로 당선됐다. 고이즈미 전 총리는 지난달 은퇴를 선언하면서, 미국 유학에서 귀국한 차남 신지로(27)에게 선거구를 물려줄 뜻을 분명히 했다. 선거를 불과 두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이었다. 선거를 앞두고 갑자기 승계를 발표하는 행태는 흔한 세습방식이다. 치사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경쟁자들에게 시간을 주지 않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 세습 정치인들이 선거에서 강점을 보이는 이유는?

=일본 정치에서는 선거승리의 필요 요소로 ‘3반’을 꼽는다. 첫째는 지반(地般), 곧 선거를 치를 수 있는 조직 기반이다. 둘째는 간반(간판·看板)으로, 유권자 및 지지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지명도를 의미한다. 세번째는 가반(가방)이다. 선거자금을 모으는 통로 등 자금원을 뜻한다. ‘3반’에서 세습 정치인은 비세습 정치인에 비해 월등히 뛰어나다.

- 세습정치인을 낳는 지역구와 중앙무대의 특수성은 없는가?

=일본의 오랜 중선거구 전통은 한 선거구에서 여러 명을 당선시키기 위해 중앙당 대신 당내 각 파벌이 선거를 개별적으로 준비하는 현실을 낳았다. 때문에 후보의 선거운동은 후원회와 이익단체 등 지역 지지자 단체들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당선 뒤에도 지지자 단체들은 공공사업 배당 같은 이권 분배에 관여하는 등 정당 지역사무소 기능을 일부 갖는다.

이런 막강한 조직도 의원이 은퇴하면 해산 위기에 내몰린다. 후원회의 유지와 존속을 위해 후계자를 택해야 하는데,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부인·자녀가 ‘안전한 선택지’인 셈이다. 결국 의원을 중심으로 하는 ‘이익 공동체’는 세습을 통해 존속·재생산되고 기득권 구조가 유지된다. 90년대 정치개혁으로 소선거구제를 도입해 이른바 ‘돈 적게 드는 선거’로 변화했다고 하지만, 오히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기득권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현실이다.

중앙 무대에서 세습 정치인들은 ‘거물’이 되기 쉬운 구조다. 30대에 초선의원으로 시작해 4~5선 의원이 되고 40대 후반에 장관직을 맡으면, 자연히 파벌의 지도급 인사가 되고 총리감으로 언급된다. 50대나 돼서야 정계에 첫발을 내딛는 비세습 정치인들과 비교할 수 없다. 예외적으로 지난 2005년 고이즈미 전 총리의 우정민영화 개혁 당시 정치 신인들이 대거 원내에 진출한 적이 있었다. 아주 특수한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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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외대 일본어과 이상훈(47) 교수는 일본 국립 오사카대학 정치학 박사로, 일본의 현대 정치와 정치 과정론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일본의 민주주의>(2007·공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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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사회의 비판적인 문제제기는?

=고이즈미 정권 시절, 세습 정치인인 아베 신조 당시 간사장이 자민당 후보 공모 과정에 변화를 준 적도 있었다. 시민사회가 내는 반발의 목소리도 그치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짧은 선거운동 기간(중의원선거는 12일), 호별방문 금지 등 조직·자금·배경을 갖춘 세습 정치인들에 유리한 제도가 많다. 게다가 현직 의원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법안을 만들려 하지는 않는다.

이런 문제들은 유권자들이 초래한 것이기도 하다.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를 배출한 니가타현처럼, 지역발전을 위해 힘썼던 선대 정치가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 자녀에게 ‘보은성 투표’를 하는 지역도 있다. 그러나 끊이지 않는 정치 세습은 전반적으로 보수화되는 일본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글·사진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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