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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8.15 | 조회수 : 230

제목 : 빠른 세월 (2005/03/31) 글쓴이 : 이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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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학부 수업시간에 번데기 이야기가 나와 내 어린 시절, 참으로 즐겨 먹던 것이라 소개하면서 '삼천만의 영양소, 번데기!'하고는 어린시절 번데기 아저씨 수레에 늘 있던 원판돌리기 흉내를 내어 보였는데 이 학생들은 '저게 뭔가 ' 하면서 아무 감동이 없는 표정들이다. 우리 때는 번데기 하면 10원의 돈을 내고 원판에 찍어 운이 좋으면 30원 짜리 종이봉지에 번데기를 눌러 넣고 또 국물을 가득담아 봉지 밑 바닥부터 빨며 좋아하던 모습을 곧 떠 올리는데 학생들은 그냥 노점에서 아줌마들이 얌전히 파는 번데기를 생각한다.

'다방' 이야기 하면 학생들은 어디 일제시대 이야기 하는 줄 안다. 열대어가 있고 한복을 입은 종업원이 있는... 하하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 그래도 고상하게 음악다방이 있었다. 클래식 전문다방이 있었다. 외대 앞에도 길 건너자 마자 지금의 '롯데리아' 옆의 '석우동' 자리에 '외대다방'이 있었고 저 쪽 중국음식점인 '영화장' 쪽 넘어로 음악다방인 '필 다방'이 있었다. 그 건너편엔 '작품 80'이 있었다. 조그만 다방이지만 무대가 있어 때때로 통키타를 치며 포크송을 불렀고, 또 현대적이고 추상적인 그림들을 걸어 놓은 젊은 이들의 공간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학생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는 그야말로 먼 이야기인 듯 듣는다.

하긴 내가 초등학교 때, 시골 갈 때 증기기관차를 타고 간 기억이 분명하고 시골 큰 댁에 가면 전기가 없어 호롱불을 켠 기억이 또렷하다. 화로도 있었고, 초가집이 가득한 그 분위기... 새마을 운동을 하기 전이니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TV는 커녕 전화 없는 집이 더 많았고, 내 대학 때가 되서야 비로소 칼라 TV가 나왔으니 나도 꽤 구세대임이 분명하다.      

가르치는 이 학생들과 나의 나이 차를 한 번 생각해 본다. 25년의 차이이다. 깜짝 놀란다. 차이는 좀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25년이나 된다는 것은 결코 적잖다. 내가 80학번이라고 이야기하면 이들은 '악... 그렇게나 나이가 들었나 하며' 놀라는 표정들이다. 하긴 25년차이면... 거꾸로 내 나이에 25년을 빼면 바로 1937년생의 할아버지이니 끔찍하다. 37년이라면 일제시대 때 태어나 8.15와 6.25를 겪고, 4.19와 5.16을 겪은 그 세대이다. 내가 그 할아버지를 느끼는 그 마음처럼 학생들과 나의 나이가 바로 그렇다.

격세지감...  세월은 참으로 빠르게 가고 있다. 오늘 이들의 월드컵 전 축구를 보면서 젊은 선수들의 발놀림 만큼이나 빠른 세월을 나는 직감했다.    

그렇게 세월은 갔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은 흐르고 있다...

이 세대만 바라보고 소망을 두고 살기엔 허무하다.
그래서 천국을 바라봄은 진실로 행복하다.

이 생은 생각해보면 나그네의 삶...
돌아갈 곳이 있는 방향이 있는 삶...
나그네의 삶에서 나는 진정한 자유와 기쁨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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