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 95376426

작성일 : 12.06.15 | 조회수 : 1355

제목 : TESOL 전문교육원 수기 이벤트 수상작 - 정경선 글쓴이 : TESOL
첨부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10년간의 공백을 이어준 다리

정경선 (12기 - 2008 가을)

 

     잘나가던 삼성의 신입사원으로 해외영업부에서 근무를 하던 나는 1997년 그저 단지 영어를 잘하고자 하는 단 하나의 바람으로 결혼과 동시에 캐나다로 1년간 단기 연수를 떠났다. 원래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는 체질이라 정말 열심히 즐겁게 짧은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얻고 돌아왔지만 한국사회는 IMF로 몸살을 앓고 있었고, 이미 기혼여성인 나에게 ‘영어를 좀 한다?’는 정도로 다시 사회생활의 기회가 주어지지는 않았다.

     그래, 모처럼의 안정을 실컷 누리자 하며 나는 아이 낳고 키우는 것에 전념하였고 바람직한 극성 맘의 대표 주자처럼 열심히 살았다. 영어 품앗이 모임을 장기간 하면서 계속 영어의 끈을 놓지 않았고 오히려 그 몇 년간의 기간 동안 자연스럽게 몸에 밴 수많은 영어 동화들, 영어 동요들은 사실 지금까지도 내 영어선생님으로서의 인생에 주춧돌이 되어주고 있다. 

     그러나 아이가 커 갈수록 사회활동에 대한 욕구는 커져갔고, 어떻게든 무언가를 시작해보고 싶어 안달이던 그 때, 나는 둘째로 쌍둥이를 임신하게 되어버렸다. 세 아이...사랑스럽고, 든든하며, 무엇에 견줄 수 없는 보물이지만, 그럭저럭 둘째들을 어린이 집에 보낼 수 있을 만큼 키워 놓고 보니 이미 경제활동을 그만둔 지 10년이 되어버렸고, 나는 어디서부터도 시작할 수 없을 거라는 절망적인 암울에 정신적인 방황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심각한 중증의 우울증이 나를 송두리째 집어 삼키어 나라는 존재는 검은 그림자에 완벽하게 휘둘리고 있었다. 무기력증과 깊은 우울, 절망감과 싸우며 하루하루 연명하던 차에 테솔에 관한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그저 동네 아줌마였던 습관으로 자꾸 ‘언니’라는 호칭이 튀어나와 꽤 쑥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이미 여러 다양한 분야에서 ‘선생님’으로 일하시던 좋은 친구들을 그때 많이 만났고, 오랜만에 정말 재미있게 공부했더랬다. 수재는 아니어도 워낙 공부를 즐기는 편이라 곧 모든 수업의 교수님들에게 인정받는 기쁨도 정말 쏠쏠했고, 배우는 내용도 새롭고 신기한 게 많아 교육학을 따로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부분도 꽤 많았다. 지금은 정말 많은 곳에 테솔대학원들이 난립 가까이 생겼지만, 그 당시만 해도 다섯 개의 대학 정도 밖에 없었고, 그 중 가장 실용적이라고 알려진 외대 YL(young learner)TESOL을 택했던 것도 나에겐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어쨌건 뛰어난 학점으로 졸업을 했고, 공부를 하는 동안 여러 좋은 선생님들과 교류하고 인정을 받으면서 어두웠던 마음을 상당부분 치유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여러 군데 이력서를 내 보았더니 바로 일해 달라는 곳들이 꽤 있었다는 점이다. 너무나 일하고 싶었던 나에게 취업을 하여 선생님으로서 아이들을 만나게 된 날 우울증은 바로 완치가 되어버렸다. 징검다리처럼 한 다리 건너 또 한 다리 식으로 나에게 오는 기회들을 악착같이 붙잡으며 오다보니 지금은 꽤나 만족스러운 근무조건으로 일하는 좋은 기관의 영어 선생님이 되었다. 공대를 졸업해서 공교육의 영어선생님은 될 수 없겠지만, 가르치는 것이 꽤나 적성에 잘 맞는 나로서는 일할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아이들을 만나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짜릿한 기쁨을 느낄 때 나에겐 일상의 스트레스가 오히려 덜어진다. 내 인생의 진정으로 암울했던 시기에 터닝 포인트가 되어준 테솔과 외대에겐 항상 고마운 마음이다. 첫 단추.. 그리고 성실함은 행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망설이는 많은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어서 부족한 글 솜씨에도 용기를 내어보았다. 희망을 꿈꾸는 많은 분들에게 용기와 행복을 전하며…….

 

2012년 초여름의 시작에

정 경선 드림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