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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10.18 | 조회수 : 1268

제목 : '遺産 기부' 상류층에서 중산층으로 더 넓게 번져가길 글쓴이 : 발전협력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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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계 인사 8명이 최근 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찾아와 자신의 유산(遺産) 일부를 사회에 기부하겠다고 서약했다. 기업 사장·변호사·회계사·전(前) 군참모총장 등 이력이 다양한 이 인사들은 "지금 우리가 있기까지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며 "그 고마움에 답하는 뜻에서 유산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이 의무라고 느꼈다"고 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가 벌이고 있는 '유산 기부, 아름다운 약속'에 동참하겠다고 나선 인사들의 결심의 계기도 각기 다르다. "자녀에게 좋은 뒷모습 남기고 싶어" "감사하는 마음을 일깨워 준 이웃을 잊지 못해" "남은 집 한 채까지 기부했던 어머니를 닮고 싶어서" 유산을 기부하겠다고 했다.

유산 기부는 미국·영국 같은 선진국에서 발달한 기부 방식이다. 미국에선 100명 이상의 억만장자들이 유산 중 최소한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영국은 국민 10%가 유산 10%를 자선단체에 기부하도록 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내에선 2005년 두 사람이 처음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유산 기부를 약속한 이후 지금까지 모두 36명이 기부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전체 기부금에서 유산 기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은 8%, 영국은 33%에 이르지만 우리는 0.5%도 안 될 것으로 추정된다.

우리 민법에는 고인(故人)이 법적 공증을 거쳐 재산을 모두 기부하겠다는 유언을 남긴 경우에도 유족들이 일정한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는 조항이 있다. 우리 사회엔 아직도 자신이 평생 축적한 재산을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고, 자녀들도 부모의 재산을 물려받는 것을 당연한 권리라도 되는 듯이 여긴다. 이런 상속 문화와 법·제도가 유산 기부를 어렵게 하는 큰 걸림돌이다.

국민은 재벌가 형제들이 경영권 대물림 과정에서 원수가 돼 서로 등을 돌리고, 그 여파로 기업 자체가 존폐(存廢)의 위기를 맞는 것을 보고 또 봐왔다. 밑바닥부터 시작해 온갖 풍상을 겪으며 기업을 키운 창업자와는 달리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호를 받아온 2세·3세들이 기업을 경영하다 결국엔 선대(先代)가 물려준 재산도 잃고 창업자의 명성까지 땅바닥에 추락시키고 마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우리 사회는 재산권과 재산 상속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 서 있다. 이런 토대가 흔들리지 않고 유지되려면 재산권 행사와 재산 상속이 국민의 심정적 동의를 얻을 수 있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복지 혜택을 늘려야 하는데도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증세에는 많은 국민이 반발하고 있다.

그래서 민간 자선단체들이 복지 역할의 일부를 떠맡는 게 중요하다. 다른 계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유한 사람들이 솔선해서 기부 문화를 활성화시키는 데 앞장을 서야 자선단체들도 제 몫을 할 수 있다. 유산 기부는 부유층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중산층과 그보다 어려운 사람들도 액수의 다과(多寡)와 관계없이 유산 기부에 동참하는 길이 있다. 적은 재산이라도 이를 선용(善用)해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공동체의 체질도 건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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