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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10.22 | 조회수 : 1188

제목 : ▷개인상담후기◁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글쓴이 : 학생생활상담연구소_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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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한국어교육과 4학년 남학생

 상담받기 전에
  이번 학기는 내게 힘든 시기였다. 학교생활, 공부, 일상의 사소하지만 소중했던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빛과 의미를 잃고 거추장스러운 짐처럼 다가오기 시작했다. 피해의식과 좌절감, 열등감과 우울증,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부정적인 감정들이 하나 둘씩 나를 따라와 괴롭혔고, 극단적인 감정 변화와 무력감, 시도 때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몸의 피로감 등의 증상이 나타났다. 사람들 사이에서 활력을 주는 존재였던 내가, 한없이 작아지고 움츠러들어 친구들조차 마음 편히 만날 수 없게 되었다. 모든 것이 버겁고 부담스러웠다. 이번 학기 초의 내 모습을 떠올리니 지금도 눈물이 흐르고 마음이 아려온다.
 
 상담의 시작
  처음에는 적성검사만 받고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상담을 받는다는 것은 가뜩이나 지쳐 있었던 내게 또 하나의 짐처럼 다가올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교수님께서“상담은 자신을 위한 의미 찾기”라고 하셨기에 나는 드디어 상담을 신청하게 되었다.

 상담, 그 첫 번째 이야기
  상담 선생님은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게 환한 미소를 지어 주셨다. 나에 대한 환영의 의미를 넘어 내 존재에 대한 따스한 시선처럼 느껴졌다. 나는 이제 상담실 문을 열었지만 앞으로는 거기에서 내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그 문을 여는 데에는 선생님의 애정 어린 도움이 필요했다.
  처음부터 말을 꺼내는 것은 힘들었다. 내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마치 꽉 막힌 먼지와 녹슨 문을 비집고 여는 것만큼이나 버거운 일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먼저 내 감정의 문제에 초점을 두셨던 것 같다. 나는 감정적인 고통을 겪고 있었다. 내가 쌓아온 이성적인 모습과 생활, 즉 나의 견고했던 지지기반들이 아프고 괴로운 감정으로 인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은 지금, 감정의 문제는 첫 번째로 중요한 것이었다. 그 문제는 매우 오래된 것이었으며 깊은 침묵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상담과정에서 나는 잊고 싶었던 가족사를 다시 꺼내고 되돌아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극심한 가정불화 속에서 나는 컸고, 그 시기에 받아야할 애정과 관심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자라왔었다. 나는 그동안 노력과 여타의 도움으로 그것을 이성적으로 잘 극복해 왔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린시절상처의 기억은 결국 지금 나의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울고 있는 나의 모습, 크리스마스나 어린이날, 생일날에도 차가운 방에서 울고 있는 모습을 나는 다시 봐야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울지 않으려고 애썼고, 내 눈자위가 계속 벌겋게 되는 것을 선생님께서 알아 차리셨다. 울어도 된다고 아무 말이나 솔직하게 해도 된다고 하셨지만 나는 억압된 감정들을 풀어내기가 매우 힘들었다.
  이 과정은 내게 죄책감을 불러일으켰다. 지금 우리 가정은 불화를 많이 극복했고 화목한 편이었으며, 부모님도 더욱 잘하시려고 노력하고 계셨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내가 과거의 잘못과 우리 가족사의 아픔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너무나 죄송스럽게 느껴졌다. 그것은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았다. 이 이야기 또한 선생님께 솔직히 말씀드렸고, 선생님은 공감하시며 그래도 나를 위해서, 건강한 감정을 위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사랑과 죄책감의 거미줄 속에 꽁꽁 갇혀 있던 미움과 슬픔을 하나씩 꺼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분노나 자기연민, 피해의식, 미움 등, 내가 원하지 않는 부정적 감정만으로 끝나지 않기를 기도했다.

 상담, 두 번째 이야기
  어쩌면 지금 나의 가장 큰 문제는 이전 남자친구와의 관계인지도 몰랐다. 나는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끝내고 혼자 괴로워하고 자괴감과 슬픔에 빠져 있었다.
  상담 과정에서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되돌아보는 동안 성장과정 속에서 나의 인간관계의 문제점을 되짚어볼 수 있었다.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받아보지 못했던 내가 사람에게 깊게 빠지는 단점을 갖고 있다는 것과, 과도한 훈육과 불안정한 가정환경 속에서 나를 심적으로 힘들게 하는 이성에게 더욱 관심을 갖는 성향이 있다는 자기인식이었다. 이런 통찰은 아프면서 무언가 마음 한 구석이 시원해지는 경험이었다. 마치 아픔에 공기가 통하고 시원하고 맑은 바람이 불어오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 분위기가 거칠어지려고 하면 우스운 춤을 추거나 말을 하여 긴장을 완화시키려고 노력했었다. 그것은 어린 나에게 큰 짐이었고, 지금의 나도 상대방을 위해 그런 연기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은 사랑하는 상대를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두려움에 기인한 감정이었다. 나는 아직도 남자친구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것은 미움과 비난보다 큰 감정이었다.

 상담, 세 번째 이야기
  시간이 흘렀고, 나는 남자친구와 관련된 내 감정과 현실을 직시하고 어느 정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불쑥불쑥 일어나는 분노와 슬픔은 때때로 다스리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슬픈 감정을 다시 재현해내고 인정하면서, 과거의 끝나지 않은 기억은 과거로서 정당한 인정을 받고 위안 속에 잠잠해졌다. 나는 그와 헤어진 지 6개월이 되어서야 그를 과거의 사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른스러운 건강함으로 문제를 살펴보고 싶었다. 건강하게 미워하고 건강하게 사랑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제는 가질 수 있었다. 실제로 우리 가족은 지난날에 비해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으며,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사랑의 감정을 말이나 행동으로 많이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마치 금기처럼 서로 조심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그 부분도 조심스럽게 치유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사랑이란 감정이 더 강하고 진실하므로 우리는 함께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피하고 외면하는 것은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닐 것이다.
  남자친구와의 문제는 아직도 내게 아픈 의문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이것 역시 넓게 보아 뜻대로 되지 않는 복병과 우연으로 점철된 인생과 사랑에 대한 의문일 거다.
  이 짧고도 길었던, 아프지만 행복했던 상담의 과정을 통해 내가 배운 것은 바로‘진실함’이다. 진실한 감정, 진실한 사랑, 진실한 표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실을 앞세우며 위장하고 위선하는 것도 아니며, 진실만을 위해 다른 감정들을 압박하거나 죄책감과 의무감에 얽매이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삶의 그 모든 과정이 자연스럽게 진실하게 흘러가도록 하는 것, 인생에서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과 불화와 사랑의 어긋남에 있어서조차, 나의 진실함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다시 사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고, 이제는 더 진실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더 큰 희망을 가지고 상담실 문을 나설 수 있었다.
  내 어깨 위에 있던 낡은 짐들이 내려져 있었고, 그것은 과거의 먼 시간 어느 바다에 개운한 소리를 내며 풍덩 빠뜨려져 있었다. 오래된 미움과 슬픔들은 차가운 공기 속에 작디작은 입자로 흩어져 희망과 맞부딪혀 사그라지고 있었고, 나는 그를 사랑하지만 이제 보내줄 수 있었다. 나는 이제 마지막 눈물을 흘리고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시간을 통틀어 가장 사랑스럽고 해맑은 모습으로 미소를 한 번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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