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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6.06.10 | 조회수 : 413

제목 : 아시아 패러독스, 어떻게 풀어야 하나(2013.07 Peace Tunnel) 글쓴이 : 러시아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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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완석 |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 러시아연구소장

동북아 영토분쟁, 그 성격과 動學

최근 ‘아시아 패러독스’(Asia’s paradox)라는 신조어가 국내외적으로 자주 회자되고 있다. ‘아시아의 역설(逆說)’로 해석되는 이 용어는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이 미 의회 연설에서 동북아 평화협력 구상(서울 프로세스)의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사용했는데, 그 의미는 아시아 역내국가 간 경제교류가 늘어나면서 상호의존성은 높아지는 반면 정치·안보 협력은 오히려 뒤처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경제와 정치 엇나가는 ‘아시아 패러독스’

아시아의 역설을 초래한 요인은 다양한 수준에서 설명이 가능하다. 아시아의 안보불안을 가중시키는 최대 요인으로 전문가들은 국가 간 얽히고설킨 다수의 영토분쟁을 지목한다. 실제로 아시아, 그중에서도 동북아시아는 전 세계적으로 크고 작은 영토분쟁이 가장 밀도 높게 전개되고 있는 지역 중의 하나이다. 동북아의 주요 구성원인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네 나라 모두가 예외 없이 서로 교차하여 공식·비공식적으로 영토문제를 제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중·일·러 동북아 4국이 상호 중층적으로 연루된 영토문제 현황을 도표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 <표1>과 같다.

소련의 붕괴로 동·서 진영체제가 해체되고, 그 자연스런 결과로서 동북아 역내 국가들이 독자적인 국익추구와 함께 국민국가 정체성 찾기를 본격화함에 따라 과거 냉전기 수면 하에 잠복되어 있던 영유권 분쟁이 노정되기 시작한다. 말하자면 미·소 양극구도의 종식이 전후 국제질서를 지배했던 가지런한 이열종대를 해체시키면서 민족단위 국가이기주의를 촉발시킨 것이다.

영토분쟁, 민족단위 국가이기주의가 촉발

국가이기주의의 출현은 진영 간의 대립을 개별국가들 간의 대립으로 전이시키는 동인으로 작용하였는데, 이는 동북아에서 동시다발적인 영토분쟁으로 나타났다. 성공회대 이남주 교수는 이런 현상을 ‘제국주의와 냉전대립에 의해 규정된 국민국가 경계에 대한 불만’을 해소하고 ‘국민국가를 완성해 가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정적 결과로 분석한다.

동북아 영토분쟁의 근본적 연원은 19세기말 제국주의적 침탈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수천 년 간 기능해왔던 중국 중심의 중화질서가 와해되고 러시아와 일본이 동북아의 새로운 중심부 세력으로 등장하던 시기, 이들이 전쟁을 통해 제국주의적 세력팽창을 전개해나가는 과정에서 영토는 역사적 연고권과는 상관없이 승자의 전리품이 되었다. 요컨대 동북아의 주요 영토마찰은 제국주의시대가 잉태한 갈등의 씨앗들로서, 청나라가 쇠락할 때 제정러시아가 강압에 의해 연해주를 할양받았던 1860년의 러·중 ‘북경조약’, 일본이 동북아의 패권국가로 부상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던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이 밀접히 관련되어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소 냉전의 고조와 한국전쟁의 와중에 체결된 1951년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영토 조항들이 분쟁의 불씨를 제공했다.

제국주의적 침략의 역사에서 기원하고 냉전의 종식으로 촉발된 동북아 영토분쟁의 근저에는 배타적 경제수역(EEZ) 확대를 통해 어족 및 지하자원의 확보를 공고히 하려는 개별국가들의 열망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역내 국가 간 역사불신, 민족감정, 패권경쟁 등이 개입되면서 영토 마찰은 더욱 가열되었고 첨예화되었다.

정치학자 게릿 공(Garritt Gong)의 지적처럼 동북아의 정치는 기억(memory)과 정체성(identity)에 의해 지배되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탈냉전시대 동북아의 영토분쟁은 역사논쟁과 동전의 앞뒷면처럼 밀접히 맞물려 있고, 폐쇄적 민족주의라는 자양분 속에서 성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한국과 중국, 일본 사이에 영토문제와 역사인식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하고 있는데, 한·중·일 3국간 역사논쟁과 영토분쟁이 폭발력을 갖는 것은 그 밑바탕에 다분히 자기중심적인 민족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수적 민족주의 정서에 기대어 취약한 국내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는 극우정치인들의 기회주의적 선동이 영토갈등의 악순환을 반복적으로 재생산하는 도화선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러시아, 중국, 일본,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이 자신의 권력기반 강화를 위한 유용한 도구로서 영토문제를 교묘히 이용해온 게 사실이다. 동북아 각국에서 극우적 민족주의자들이 영토문제라는 숙주에 기생하여 기회적 정치이익을 향유하고 있는 이런 현상을 문정인 교수는 ‘적대적 제휴’로 설명한다.

역사논쟁과 민족주의가 짙게 투영된 동북아 영토분쟁은 그 이면에 강대국들의 패권적 야망도 크게 개입되어 있다. 중국과 일본의 지역패권 경쟁은 민족주의와 결부된 영토 마찰을 더욱 격화시키고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아시아의 중심으로 재등장한 중국과 군사대국화의 수순을 밟아가고 있는 일본 사이의 지정학적 경쟁은 최근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첨예한 대치에서 보여주듯이, 영토분쟁에 대한 합리적 해법을 찾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동북아 영토분쟁에는 미국도 직간접적으로 연루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찌보면 미국이 동북아 영토분쟁의 단초를 제공한 원인제공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전후 승전국 미국이 태평양전쟁을 결산하는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패전국 일본과 관련된 독도, 센카쿠열도, 북방 4도의 귀속선을 불명료하게 처리함으로써 영토갈등의 불씨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전후부터 오늘날까지 한·일, 중·일, 러·일 간 첨예한 영토분쟁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패권유지와 지정학적 입지를 강화시켜 준 아주 유용한 전략적 지렛대였다. 따라서 미국이 앞장서서 동북아 영토문제를 적극적으로 중재 해결할 리 만무하다. 영토문제의 ‘현상타파’보다는, 오히려 군사적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일정수준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게 동북아에서 워싱턴의 전략적 수익을 더 크게 해주기 때문에 현상유지를 선호할 것이라는 점은 상식이다.

동북아 영토분쟁의 특징과 동학

실제로 미국은 러·일 영토협상의 진전을 배후에서 방해했고, 독도 및 센카쿠열도를 둘러싼 대립과정에서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면서 지정학적 영향력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는데, 이런 미국의 행태를 두고 러시아 학자 발레리 키스타노프(Valery Kistanov)는 동북아 영토분쟁의 ‘막후 연출자’(a director behind the curtain)로 표현한다.

탈냉전 이후 동북아 지역에 노정된 일련의 영토마찰이 대규모 군사적 충돌로까지는 비화되지 않고 있으나, 긴장의 주기적 고저(高低)를 반복하면서 잠복성 분쟁의 뇌관을 형성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동북아 영토마찰에 현미경을 들이대 보면 다음 네 가지 특징적인 현상이 발견된다.

첫째, 동북아가 중·러, 러·일, 중·일 등 강대국간 영토분쟁이 중첩적으로 존재하는 유일한 국제적 공간이라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미국을 포함해 세계적 권력보유자들이 개입된 동북아 영토분쟁은 현재 경제적 번영과 협력 추세에 의해 은폐되어 있으나, 제어력을 상실한 국가적 야망이나 민족주의적 감정에 의해 점화될 경우 높은 휘발성과 폭발력을 지닐 수 있다.

둘째, 동북아 영토분규의 대상이 주로 하천 또는 해상의 도서(島嶼)라는 점이다. 영토분쟁 지역이 직접적인 국경선을 마주하지 않은 섬이라는 지리적 조건이 역내 국가간 대규모 군사적 충돌의 우발성과 민감성을 일정 수준 완충시켜주고 있다.

셋째, 동아시아 영토분쟁 핵심 연루국가가 암묵리에 세력권 확대를 모색하는 중국(서사군도/남사군도/센카쿠열도)과 일본(독도/센카쿠열도/북방4도)이라는 점이다. 이는 중·일의 영토 집착력을 반영하는 한편, 향후 양국의 팽창주의적 권력욕이 발동될 경우 그 첫 총성은 영유권 사수를 명분으로 한 영토분쟁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음을 암시한다.

넷째, 동북아에서 영토분쟁은 과도한 군비경쟁과 밀접한 친화성을 갖는다는 점이다. 특히 영유권 분쟁과 해상교통로 확보를 위한 해군력 증강 추세가 현저하다. 대양 해군화를 모색하기 위한 한국의 지속적인 전력증강 사업, 역동적인 경제성장을 기반으로 힘의 ‘외부투사 능력’(power projection capability)과 ‘연장능력’(power extension capability)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중국, 중국의 무력 흡수통일 가능성 차단을 위한 대만의 자위력 강화, ‘경제 대국·정치 난쟁이’라는 조소(嘲笑)에서 벗어나 자신의 경제력에 상응하는 정치군사적 대국화를 희구하는 일본의 재무장 등은 모두 동북아 군비경쟁의 현주소를 웅변하고, 영토마찰이 이를 중요하게 추동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적 유대도 영토 국익 앞에서는 허상

역사적으로 동북아에서는 영토가 국제관계에 가장 민감하게 개입하는 중요한 상수로 작용해 왔는데, 이는 역내 국가들이 영토를 그 어떤 가치에 우선하는, 지켜야 할 핵심적인 국가이익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도널드 자고리아(Donald S. Zagoria) 박사도 동북아에서는 전통적으로 지리·영토적 이해관계가 이데올로기보다 더 국제관계를 규정하는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요소’(permanent and constant element)였다고 지적한다. 그는 과거 냉전시절 동북아지역에서 발생했던 일련의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전쟁을 수반한 영토분쟁, 즉 중·소간, 베트남·중국간, 캄보디아·베트남간의 국경충돌을 그 실증적 사례로 제시하고 있다. 이들 상호 인접한 공산국가들 간 영토분쟁의 역사는 수세기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뿌리깊은 역사적인 연원을 지닌 것으로,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에 의해서도 완화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중·소 국경분쟁의 경우, 양국이 지고한 가치로 간주했던 이데올로기적 유대가 영토적 국익 앞에서는 한낱 허상에 불과함을 만천하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1969년 우수리강 중류의 전바오다오(珍寶島)에서의 국경 무력충돌은 급기야 철의 단결을 과시했던 동맹적 양국관계를 해체하면서 숙적관계로까지 돌변시켰고, 그런 앙숙관계를 근 30년 동안 지속시켰다.

북방 4도를 둘러싼 러·일 영토분쟁의 지속도 동일한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 지난 냉전시절 북방 4도 영유권 문제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으로 러·일관계는 국제적 환경변화로부터 격리되어 마치 화석처럼 오랫동안 정체되었다. 그런 현상은 냉전구조 해체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소련의 붕괴로 이념의 이분법적 대립구도가 사라졌고, 양국 간 상호 군사적 위협인식이 현저히 해소되었으며, 더욱이 러시아가 일본과 동일한 서구적 가치체계의 시장민주국가로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토문제에 대한 상호 비타협적 태도로 인해 양국관계는 여전히 국제법상 ‘전쟁의 지속’ 상태에 머물러 있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 이후 교전 당사국인 러시아와 일본이 아직까지 평화조약을 체결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를 한순간에 경색시키는 독도 신경전도 같은 범주에 속하는데, 이런 일련의 사례는 동북아 국제관계에서 지리영토적 팩터가 차지하는 비중을 여실히 반영하고, 오늘날까지도 영토문제가 동북아 국제관계의 ‘동학’을 일정하게 규정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일본의 독도문제 제기, 어떻게 할 것인가?

아베 신조(安倍晋三)를 대표로 한 일본 내 극우정치 세력들이 장기 경제침체와 후쿠시마 원전 폭발사건으로 인한 전 국민적 히스테리를 해소하기 위한 출구로서 민족주의와 영토문제를 이용하고 있고, 그럼으로써 일본사회가 급속히 보수 우경화되고 있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일본의 독도 영유권 억지 주장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일본 정부의 독도문제 제기 방식에서 과거와 다른 한 가지 차이점이 발견된다. 그것은 한국 내 반일 감정의 격화와 한일관계의 경색을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독도 영유권 주장이 점차 강경해지고 도발적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일본 정부는 독도 영유권 문제 제기 시 우회적이고, 신중하며, 상대적으로 조심스러운 접근태도를 보여 왔다.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되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가급적 갈등의 확산을 자제하는 분위기였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런 외교적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 치밀하고 용의주도한 전략 하에 물리적 방식을 동원해 독도 영유권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독도를 둘러싼 영유권 논쟁은 외견상 한국과 일본 두 나라만의 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논쟁의 발단과 지속에 대한 원인을 깊이 있게 분석해보면 독도 문제는 동북아 역내 국가 간에 얽히고설킨 다수의 영토분쟁들 가운데 일부이고 미국,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들의 이해관계가 직간접적으로 개입된 다자적 게임의 속성을 지닌다. 이렇게 볼 때 독도문제는 동북아의 전체 영토분쟁과 전략환경이라는 보다 큰 틀의 지정학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져야 하고, 일본의 영토 공세에 대한 대처도 그런 맥락 속에서 강구되어야 할 것이다.

세계사를 관통해 볼 때 지구상에 고정된 영토란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한 국가의 공간적 규모를 구성하는 영토는 영구불변의 것이 아니라, 그것은 해당 국가의 흥망성쇠의 부산물이었다. 요컨대 세계사는 전쟁을 통한 지속적인 국경 변동의 역사였고, 전쟁을 결산하는 강화조약은 승자의 논리를 패자에게 강요하여 승자의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는 외교적 안전장치에 불과했다. 이 과정에서 대부분의 경우 영토는 ‘할양’(cession)이라는 이름으로 승자의 전리품이 되었다. 따라서 한 국가의 영토 지리적 범위는 힘의 법칙에 의해 크게 좌우되어 시대적 흐름에 따라 팽창과 축소를 반복하였다. 그렇기에 국가 간 영토분쟁은 법리적인 측면으로만 설명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오직 힘의 법칙만이 정의였고, 강자만이 자국에 유리한 ‘영토보전의 원칙’(principle of territorial integrity)을 내세울 수 있었다.

이런 영토보전의 속성을 명료하게 인식한다면, 한국은 자신의 영토를 스스로 사수할 수 있는 국력의 신장과 국가안보 능력을 최우선적으로 강화해 나가야 한다. 독도 사수를 위한 다양한 세부적인 대응전략은 이것이 전제되었을 때 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논리를 강화하는 가운데 실효지배를 영구화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게 가장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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