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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7.23 | 조회수 : 364

제목 : 한-EU수교 50주년 기념 바호주 EU 집행위원장 인터뷰 글쓴이 : eu-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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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재정위기는 글로벌 경쟁력 갖추라는 잔인한 자명종”

유로존(유럽의 단일화폐 유로를 쓰는 18개국) 위기가 5년째 이어지면서 유독 존재감을 인정받게 된 인물이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59)과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 조제 마누엘 두랑 바호주(57)다. 

트로이카(EU, 유럽은행, 국제통화기금)의 한 축을 맡아 구제금융을 둘러싼 국가간 갈등을 조정하고 “더 많은 유럽을(More Europe)”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서 그의 위상은 마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처럼 높고 굳건해졌다. 

석 달 전 필자가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유럽저널리즘센터가 공동 주관한 펠로십을 받아 EU 본부가 있는 벨기에 브뤼셀로 향하면서 추진한 인터뷰는 18일 서울행 귀국 비행기를 타는 날 오전에야 서면으로 성사됐다. 


한국, 세계 교역시스템서 핵심적 역할

―올해 한-EU 외교 관계 50주년을 맞았다(EU 출범은 1993년이지만 우리나라는 유럽경제공동체(EC)와 외교관계를 맺은 1963년을 수교 원년으로 삼고 있다). 한국에서는 ‘유럽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고, 유럽을 공부하는 정치인도 늘고 있다. EU는 한국의 전략적 위상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가.

“한국은 EU에 대단히 전략적 중요성을 지닌 나라다. 동아시아에서 특별한 지정학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서만은 아니다. 혁신적 경제의 무역국가로서 세계 교역시스템에서 역동적 역할을 하고 있고, 아시아에선 보편적 가치와 민주주의의 방위선으로서 핵심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2010년 EU와 한국이 전략적 파트너 관계를 맺고 자유무역협정(FTA)을 결정한 것은 EU가 이 같은 한국의 중요성을 분명히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김창범 주(駐) 벨기에 유럽연합 대사는 바호주 위원장이 한국의 현대미술과 영화에 대한 관심이 상당하다며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뒤 이것저것 물어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짧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길게는 유럽의 태동 이후 숱한 갈등을 겪어온 유럽이 마침내 EU 아래서 전쟁 없는 통합의 역사를 쓰고 있다. 한국에 어떤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보는지.

“한국의 최근 역사에는 유럽의 오랜 역사와 공명하는 코드가 있다. 20세기 중반 유럽과 한국은 두 개의 진영으로 나뉘었고, 유럽은 마침내 20세기 마지막 10년에 위대한 변화(소련 붕괴, 독일 통일 등 공산독재 체제의 붕괴와 자유민주 진영의 승리를 의미)를 이뤄냈다. 지난 50년간 한국의 발전에는 유럽 자유민주 진영의 역사를 연상시키는 특징이 담겨 있다. 전쟁으로 찢겨졌던 나라가 강한 경제력과 다이내믹한 민주주의를 자랑하는 나라로 성장한 것이다.”

EU는 2차 세계대전의 폐허 위에서 프랑스와 독일을 중심으로 서유럽 나라들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협력기구로 출발했다. 유로존 위기 이후 유럽의 빛이 다소 바랬다지만 7월 28번째 회원국으로 크로아티아가 가입하는 등 EU는 여전히 꿈의 연대보증 기관임을 바호주는 자부하고 있었다. 

“이번 가을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전략적 파트너십을 보다 강화함으로써 경제성장과 일자리 확대를 위한 정책 협력을 격상시킬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위원장은 “EU가 초국가적 협력체의 실험실 역할을 통해 글로벌 거버넌스의 챔피언이 됐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유로존 위기의 근본 원인은 무엇이기에 유럽 경제가 이리도 풀리지 않는 것인가. 

“유럽의 채무 위기는 1990년대 고안해 실행한 현재의 유럽경제통화공동체(EMU)가 불완전했음을 보여준다. 1999년 유럽중앙은행(ECB)이 유로존의 금리를 정하는 것으로 통화연합은 성립됐다. 그러나 예산정책이나 금융감독 등 경제 영역에서는 비슷한 수준의 통합이 이뤄지지 않았다. 현 상황은 이런 문제에 적극 대처해야 할 정치적 기회를 제공한 것이기도 하다.”

바호주는 균형 재정을 법제화한 신재정협약 마련, 유럽의 상설 소방관으로 유로안정화기구(ESM) 설치, 은행감독 규정 강화 등 지난 3년간의 EU 내 정치적 진전에 대해 설명했다. 

“물론 아직 상황은 어렵고 문제가 완전히 풀린 건 아니다. 그러나 1년 전만 해도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라는 둥, 유로가 깨질 것이라는 전망이 난무했지만 지금 그런 위협은 사라지지 않았나. 나는 이번 위기를 통해 유럽과 유로가 더 강해질 것이라는 걸 의심하지 않는다.”


유럽경제 구조개혁에 고통은 불가피

―위원장의 고향인 포르투갈의 리스본에는 14세기 지리상의 발견을 주도한 엔히크 왕자와 영웅들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과거 포르투갈은 탐험과 혁신, 문명국으로 유명했지만 2011년 구제금융을 신청한 세 번째 나라가 되고 말았다. 그때 위원장의 심정이 어땠는지 물어도 되겠는가.

“유로존 국가들 사이에 재정 형편의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포르투갈과 그리스 키프로스 같은 나라들은 변화하는 글로벌 세계에 맞춰 경쟁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재정위기는 이들 나라의 오래된 경제모델이 한계에 부닥쳤음을, 철저한 재적응이 필요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일깨워주는 잔인한 자명종이었다. 균형 재정과 구조개혁 과정 중에 단기간의 고통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성장과 고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2011년 당시 바호주는 포르투갈의 지원 요구에 너무 무르게 대응한다며 독일 메르켈 총리의 의심을 받았다는 보도가 있었다. 초국적 기구의 행정수반도 팔이 안으로 굽는 건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도 강인해진 것일까. 최근 포르투갈에서 긴축재정을 주도해온 장관의 사임으로 정국이 요동치자 단호하게 “정책이 옳으면 민주주의에서는 정치가가 정책을 따라와야 한다”고 강조해 주목받았다.

―2009년 재선되면서 위원장은 “유럽인은 사회적 시장경제를 원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그전의 바호주는 신자유주의를 지나치게 신뢰한다는 공격을 받았다고 뉴욕타임스는 소개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한국에 적합한 경제체제를 놓고 논쟁이 벌어졌다.

“EU의 사회적 시장경제에선 사회적 요건이 시장만큼이나 중요하다. 시장경제와 복지국가의 원칙이 함께 가야 한다는 의미다. 사회적 시장경제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첫째가 시장경제다. 경쟁을 통해 물가를 안정시키고 성장과 혁신을 만들어내며 (시장) 왜곡을 없애는 룰을 만드는 것이다. 둘째는 노동조건과 인권 및 노동권, 완전고용의 목표에 그 룰을 적용하는 일이다. 셋째는 균형 잡힌 성장과 환경 등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다. 물론 고유의 경제모델을 선택하는 것은 개별 국가의 몫이다. 그러나 나는 개방경제, 사회적 통합, 그리고 지속가능성이야말로 조화로운 사회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하지만 유럽을 하나로 모으려던 EU가 오히려 민족주의를 일깨웠다는 지적도 받고 있다. 인간 본성으로서의 민족주의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민족주의는 복잡한 국제문제 풀 수 없어

“민족주의는 경제적으로 불안한 시기에 기승을 부렸다. EU의 아버지인 프랑스 외교장관 출신의 로베르 쉬망은 유럽에서 전쟁 없는 삶이 ‘생각할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생각해냈고 오늘의 EU를 이끌었다(쉬망은 1950년 전쟁무기를 만드는 철과 석탄을 프랑스와 독일이 공동 관리할 것을 제안한 ‘쉬망선언’을 발표했다). 이번 금융위기의 큰 교훈이라면 우리 모두가 상호의존 경제 속에 살고 있음을 일깨워준 것이다. 민족주의적 접근으로는 어떤 문제도 풀 수 없다. 나는 지역적 협력과 다차원적 거버넌스를 통해서만이 오늘날의 복잡다단한 문제를 풀어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미국의 블룸버그 비즈니스위크지는 위원장을 “나는 ‘Mr. Nice Guy(좋은 사람)’가 되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을 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 유로 위기가 깊어지면서 점점 큰 정치력과 리더십을 발휘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리더십을 연마하는 비결이 있다면…. 

“나는 학생운동에서 시작해 포르투갈에서 장관과 총리를 지냈고, EU 집행위원회까지 오랜 기간을 정치 속에서 지냈다. 새로운 단계마다 배운 것이라면 유럽 정치에서는 대화와 상호 이해, 그리고 타협이 핵심이라는 점과 국민들에게 언제나 정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민이 이해하지 못하면 그 정책은 성공하기 힘들다.” 


학생운동 출신으로 사민당에서 활동

―지난해 정상회담 무렵, 위원장의 어머니가 늘 아들을 걱정한다면서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위원장 어머니의 전화를 대신 받아 “아들은 잘 지내니 걱정말라”고 했다고 독일의 슈피겔지는 전했다. 걱정 많은 어머니, 정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은 한국과도 참 비슷한 것 같다. 한국에도 위원장처럼 학생운동 출신의 정치인이 많다.

“한국의 50대처럼 나도 젊은 날을 독재 치하에서 보냈다. 유럽의 민주국가들을 바라보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살았다. 1974년 고향인 리스본에서 민주혁명과 자유를 외치던 때를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민주주의를 쟁취해낸 한국인들도 나처럼 말로 표현하기 힘든 벅찬 감정을 안고 살았을 것이다.”

바호주 위원장은 리스본대 법학도 시절 공산당 계열의 학생운동에 참여했고, EU에서 중도우파로 분류되는 포르투갈 사회민주당에서 정치활동을 해왔다.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찰고무 같은 복원 능력과 용기, 그리고 결단이 필요하다. 지난 60년간 한국인이 세계에 보여준 그 세 가지 능력을 한반도 분단을 극복하고 평화와 번영을 일구어 내는 데도 발휘해주기를 기대한다.” 

EU 안의 약소국 출신으로 주권국가와 초국적기구, 유로크라트와 국내 정치인 사이에서 살아남기가 쉬웠을 리 없다. 어려울수록 고무공처럼 튀어 오르는 회복력과 용기, 결단을 통해 유럽의 거물로 우뚝 선 것은 바로 바호주 자신이었다.



* 이 글은 동아일보의 7/22일 칼럼기사를 옮겨온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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