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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4.03.05 | 조회수 : 390

제목 : (이상훈 교수님 칼럼) 한·일 갈등, 마주 달릴 수만은 없다. (경향신문, 2012,8,24) 글쓴이 : 일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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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한·일 갈등, 마주 달릴 수만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하고, 일본 국왕의 사과를 요구하면서 한·일관계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격랑에 휩싸이고 있다. 한국 대통령이 갈등의 단초를 제공하고, 일본 정부가 강력한 대응 조치를 취하면서 양국 간에는 심각한 대립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일본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 제소를 한국에 제안하고, 한국과의 각료급 회의를 중단한 이후 양국 간에는 총리 서한을 둘러싼 갈등과 국회의 결의안 채택 등이 이어지고 있다.

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과는 달리 ‘친일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안정적’ 한·일관계를 중시하는 자세를 일관되게 취해 왔다. 그것이 아시아 중시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일본 민주당 정권 출범 후 ‘안정적’ 한·일관계를 유지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대통령의 자세에 변화가 보이기 시작한 것은 2011년 말에 개최된 한·일정상회담 이후부터이다. 이 회담에 앞서 헌법재판소는 8월30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일본군위안부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자 했으나, 양국의 견해 차이만 부각됐다. 이 대통령으로서는 문제해결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지 않는 일본정부에 실망감을 느꼈을 것이다. 광복절 경축사에서 독도 문제가 아닌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것도 그 연장선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독도 문제는 다르다. 영토문제는 국민감정을 자극한다. 그것을 주의깊게 제어하는 것이 정치지도자의 무거운 책임이다. 실효지배를 하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이 일부러 독도 영유권을 과시하는 것은 독도에 관심이 없었던 일본인들을 포함해 일본 여론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이 대통령이 독도를 방문한 것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저하된 정치적 구심력과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평가도 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치지도자로서의 책임을 포기하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물론 대통령의 독도 방문이 가져 온 파문의 플러스 요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역설적이긴 하지만, 독도문제에 감정적으로 대응한 결과가 무엇인지, 왜 일본이 강경 조치로 대응을 하는지, 이러한 강경 조치의 의도는 무엇인지 등을 한국 국민이 인식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점은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한·일 관계에 난제를 남겼다. 첫째, 한·일 양국 모두 가지고 있는 카드를 다 사용했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독도 방문은 최후의 외교 카드였으며, 일본은 이에 대해 가능한 모든 대항 카드를 내보였다. 양국의 국민 여론을 고려했을 때 수습은 지극히 험난하다. 냉각된 한·일관계를 해결해야 할 차기 정권에 과중한 부담을 안겨주었다. 둘째, 대통령의 독도 방문을 둘러싸고 청와대와 외교부 간에 소통의 부재가 노출됐다는 점이다. 그것은 전략의 불일치를 넘어 부재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과거사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을 상대한다는 것이 쉽지 않음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그러한 일본이기에 한·일관계에 대한 더 큰 틀을 정하고, 흔들림 없는 대일정책을 수립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도 문제로 양국이 강경자세를 지속하는 것은 양 국민의 이해를 얻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해결을 더욱 곤란하게 한다. 일본을 버리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버리고 무시하며 살기엔 한·일관계는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복합적 중층적 관계를 맺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은 강경책의 응수에 의한 순간의 갈채가 아니라 장기적인 상호이익을 깊이 고민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상훈 | 한국외대 일본학부 교수 lshoon@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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