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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27 | 조회수 : 786

제목 : (이창민 교수님 칼럼) 과녁을 향해 날아간 세 번째 화살(외대학보, 2015.03.25) 글쓴이 : 일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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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녁을 향해 날아간 세 번째 화살

 

192910, 미국 월가의 주식 대폭락으로 시작된 대공황은 전염병처럼 전 세계 모든 자본주의 국가로 번져 나갔고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1930년부터 농산물과 섬유제품을 중심으로 물가가 반 토막이 나고, 도시부를 중심으로 실업자가 급증했으며, 궁핍해진 농촌지역에서는 어린 딸을 사고파는 반인륜적인 범죄마저 횡행하였다. 하지만 일본경제가 대공황을 탈출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1932년경부터 회복세로 돌아 선 일본경제는 결과적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대공황을 졸업하게 되었다. 대공황이라는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일본경제를 구출한 것은, 일본의 케인즈(Keynes)라 불리던 다카하시 고레키요(高橋是清)가 실시한 과감한 금융완화 정책이었다. 대공황의 암운이 드리워지기 시작했을 때 재무장관으로 임명된 다카하시는 가장 먼저 금본위제를 폐기하여 엔화가치의 급격한 평가절하를 유도함과 동시에 중앙은행의 국채인수를 통해 통화량을 증대시켰다. 또한 군사비를 증액하고, 토목사업을 실시하는 등 적극적인 재정지출도 감행하였다. 이러한 과감한 재정금융정책을 실시한 덕분에 일본경제는 대공황이라는 당시로서는 인류사상 최악의 디플레이션 상태를 단시간에 벗어날 수 있었다.

201212월 제96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된 아베신조(安倍晋三)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디플레이션의 극복에 강한 의욕을 보이며, 실험적이고 대담한 경제정책의 조속한 실시를 선언했다. 과감한 금융정책, 기동력 있는 재정정책, 민간 소비와 투자를 유도하는 성장전략, 이른바 세 개의 화살로 이루어진 아베노믹스의 탄생이 그것이다. 세 개의 화살이라고 하는 아베노믹스의 핵심정책들은 엔저, 저금리, 재정지출의 확대를 통해 디플레이션 탈출에 성공한 다카하시의 경제정책과 많이 닮아있다. 실제로 아베총리가 지명한 중앙은행 부총재인 이와타 키쿠오(岩田規久男)씨는 다카하시 재정을 연구한 대표적인 경제학자이다. 아베노믹스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지난 2년간의 성적을 살펴보면 세 개의 화살 중에 적어도 두 개의 화살은 과녁을 향해 제대로 날아간 듯 하다. 2% 라는 인플레이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중앙은행은 장기국채 매입을 통해 1300조원이 넘는 돈을 풀면서 엔저를 유도하고 수출기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한 대규모 공공투자를 중심으로 재정지출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법인세를 낮추어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도 내놓았다. 그 결과 닛케이지수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해 2만 선에 육박하고 있으며 물가도 마이너스에서 플러스 기조로 돌아섰다.

대공황을 탈출한 다카하시의 경제정책처럼, 아베노믹스는 장기 디플레이션 시대를 마감할 수 있을 것인가? 대담한 금융정책은 국민들로 하여금 물가상승의 기대감을 갖게 해 민간소비와 기업의 설비투자가 활발해지고 그 결과 기업의 수익이 증가하면서 노동자의 임금이 상승하고 이것이 다시금 소비와 투자의 확대로 이어진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에 들어서기까지 총수요 부족을 보충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재정지출을 확대한다. 이것이 아베노믹스의 성공 시나리오이다. 그런데 대담한 금융정책이나 기동력 있는 재정정책은 양날의 칼과도 같아서 쓰면 쓸수록 그에 동반되는 리스크도 높아진다는 함정이 있다. , 과도한 인플레이션이나 재정파탄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뿌리는 정책은 곧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고,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경기의 선순환을 위해서는 민간의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는 성장전략이 필요하다. 민간의 소비와 투자를 촉진시키는 성장전략, 이것이 바로 아베총리가 말하는 세 번째 화살이다.

아베노믹스의 성공여부를 가늠할 세 번째 화살은 작년 봄 춘투(春闘)에서 결정된 임금인상을 시작으로 과녁을 향해 힘차게 발사되었다. 지난해 주요 대기업은 1998년 이후 최고 수준인 2.28%의 임금인상을 단행했다. 아베노믹스의 효과로 인해 기업실적이 개선되었다는 측면도 있지만, 재작년 말 아베정권이 재계에 임금인상을 강력하게 요구한 결과였다. 그러나 내수활성화를 목표로 힘차게 쏘아올린 세 번째 화살은 아베정권의 기대치를 크게 밑돌았다. 양적완화 정책으로 인한 엔저가 수입 물가를 상승시켰고, 지난해 4월 단행한 소비세율의 인상이 결과적으로 실질임금의 하락을 가져와 임금인상의 효과는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어떻게든 임금상승을 통해 민간소비를 활성화하고자 하는 아베정권으로서는 올해도 작년 수준의 임금인상을 재계에 요구하고 있다. 재계는 임금인상이 곧 소비활성화로 이어지지 않는 일본경제의 구조적인 측면을 지적하면서도, 기본적으로는 정부의 방침에 동의하고 있기 때문에 올해 또한 작년 수준의 임금인상이 기대된다. 이를 바탕으로 미즈호종합연구소는 올해 실질임금이 전년대비 1.2% 증가해서 4년 만에 감소세에서 증가세로 전환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 번째 화살의 성공여부는 불투명하다. 그 이유는 재계가 지적하고 있듯이, 일본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예컨대 제조업의 경우, 예전처럼 국내에서 만든 제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비율보다 공장의 해외이전을 통해 현지에서 생산, 판매하는 비율이 높다. 해외 생산, 판매를 통해 수익을 증대해 온 기업이, 수익과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는 국내 종업원의 임금을 인상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또한 해외시장과 관계없는 내수중심의 기업은 엔저의 효과를 누리지도 못한 채 큰 폭의 임금상승을 단행해야 하는 입장이 부담될 수도 있다. 게다가 아베노믹스의 수혜자가 대부분 대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중소기업에까지 임금상승을 요구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큰 폭의 임금인상을 단행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내수활성화에 기여한다는 보장도 없다. 2014년 시간제 노동자가 과거 최고인 29.8%에 달하는 등, 노동시장의 비정규직화는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결국 대기업의 정규직 노동자를 기준으로 임금인상이 이루어진다면, 민간 소비와 투자를 활성화 시키는데 임금인상 만으로는 충분한 효과를 낼 수 없다는 뜻이다.

아베노믹스는 일종의 경제실험이다. 유례없이 긴 디플레이션을 극복하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가며 죽어가는 경제를 되살리고자 하는 극약처방이 바로 아베노믹스이다. 극약처방은 잘하면 목숨을 건질 수 있지만, 잘못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어떤 결과로 끝이 나던 경제학 교과서에 길이 남을만한 역사적 실험임에는 틀림없다.

 

 

<이창민 | 한국외대 일본학부 교수  changminlee@huf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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