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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7.09.17 | 조회수 : 1066

제목 : 'KAIST 윤정로 교수님의 강의 노하우 글쓴이 : 교수학습개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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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낳는 팀플레이 - 윤정로 KAIST 교수.사회학

새 학기 첫 수업시간이면 으레 하는 일이 있다. 내가 가르치는 과목에 대한 소개다. 준비된 강의계획서를 나눠주고, 강의 내용과 수업진행 방식, 성적평가 등에 대해 학생들의 질문과 제안을 받는다. 언제나 학생들이 커다란 관심을 보이는 사안이 과제와 성적평가 방식이다.

내 과목에서는 학기 내내 팀으로 수행하는 과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개인으로 하는 과제보다 훨씬 높은 비중을 둬서 평가한다. 물론 같은 팀에 속하는 학생들은 모두 같은 점수를 받는다.

팀별로 같은 점수를 주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학생들이 있다. 같은 팀원이라도 서로 능력이 다르고 다른 팀원들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얌체들도 있는데 같은 점수를 받으면 불공평하다는 논리다. 이런 학생들의 이의 제기에 대해 나는 두 가지 논리를 든다.

첫째는 우리 옛말에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百聞不如一見)고 했는데, 내 생각에는 백번 보는 것이 한번 해보는 것만 못하다(百見不如一行)는 것이다. 훌륭한 주제로 멋지게 쓴 논문과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자기가 스스로 문제를 찾아서 주제를 잡고 실제로 글을 써봐야만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명강의를 아무리 많이 보고 들어도, 자기가 스스로 자료를 준비해 발표를 해봐야만 명료하고 간결한 발표를 할 수 있다. 이것을 영어로는 'learning by doing'이라고 한다는 말까지 곁들인다.

둘째는 앞으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해야 할 모든 일이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팀플레이에 대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축구나 농구.배구 같은 운동경기를 예로 든다. 누가 드리블을 잘한다 해서, 누가 정확한 패스를 한다 해서, 누가 문전에서 슛을 잘한다 해서, 또는 수비를 잘한다 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모든 재능이 한데 어우러져 한 '팀'으로 점수를 올려야만 경기에서 이길 수 있다.

학생들에게 중.고등학교 체육시간에 어떤 내용을 배우고 어떻게 시험을 쳤는지 물어본다. 축구나 농구.배구 같은 팀플레이 종목을 배우는데, 점수는 개인별로 드리블이나 패스.슛.토스와 서브를 얼마나 잘하는지에 따라 매긴다는 것이 중론이다. 30여년 전 내 학창시절과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치열한 대학입시 경쟁 속에서 학생들의 점수와 등수를 세밀하게 구분해야 하는 고등학교에서는 어렵지만, 대학에서는 성적 평가도 팀플레이 정신에 맞추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학생들을 설득한다.

좋은 팀이란 단순히 능력이 뛰어난 개인들의 집합이 아니라 여러 개인이 모여 함께 세운 공통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각자가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팀원 간 서로 도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개개인의 능력보다 나은 결과를 내야 한다. 물론 팀플레이를 잘하려면 훌륭한 팀원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반드시 내가 앞장서야 한다는 아집은 버리고, 서로 다른 장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할 때 상승효과가 난다.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도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서로 잘잘못을 가리기보다 격려해 같은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중들은 지는 팀에 있는 뛰어난 선수에게도 박수를 치지만 이긴 팀 선수 모두에게 더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상패와 부상도 이긴 팀 선수 모두를 위한 것이다. 우리는 선수 개개인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하나의 '팀'으로 월드컵 4강에 올랐다. 사회 각 부문에서 멋진 팀워크로 우리의 능력을 모으면 또 다른 신화를 이뤄낼 수 있다.

-중앙일보 2004년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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