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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1.05 | 조회수 : 764

제목 : 2017-2 수료생 수기(일반TESOL 노경진 선생님) 글쓴이 : TE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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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7-2 수료생 수기

 

일반 TESOL

노경진

 

 

언어의 세계관은 가시적이지 않아서 허공에 아무렇게나 떠다니다가 사람의 말, 사람의 문자로 비소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 따라서 하나의 세계관이 표상되는 것은 각기 다른 외국어로 발현된다는, 우리가 모두 아는 그 이야기. 하지만 내가 느낀 테솔 수업은 이런 언어 세계관의 철학적 깊이를 느낀 것이 아닌 다른 특별한 것이었다. 그것은 마치 향을 구성하는 향료가 내 몸에 안착하여 잔향이 오랜 시간 나의 일부인 것처럼 숨 쉬는.

다시,

자의적으로 표현해본다면 이런 것일 수도 있겠다. 어떤 한 단어가 분쇄되고 그것이 단어를 이루는 형태 통사 조각이 아닌 단어가 내뿜는 미지의 향료로서 그것이 나의 머리, 심장, 콧등 그리고 눈동자 밑에 천천히 가라앉는다. 체화된다.

이 표현이 부족한 걸까.

그렇다면 어떻게 간결하게 표현해야만 하는 걸까.

날씨가 화창한 5월 어느 날.

꽃받침 모양으로 흘러내리는 네이비색 목선이 포인트인 원피스를 입고, 발등에 얹힌 꽃이 아름다운 카키색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가만히 앉아서 대기하던 강의실, 나의 신분증을 확인하던 그 사람의 얼굴마저도 선명하다. 아뿔싸, 옷차림도 기억난다. 그에게서 어떤 안타까운 아우라가 잠시 내게 전해져서 그런 듯. 기분 좋은 출발이 기분 좋지 않음으로 변한 찰나였다. 파편 같은 것들까지 또렷이 기억하는 그날, 드디어 차례가 돼 인터뷰를 시작했다.

창문을 투과한 몽환적인 햇살만큼 그날의 인터뷰가 아늑했다면 내가 인터뷰를 끝내고 후회라는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조그마한 외부의 충격이 내면에서 자란 기민한 부분에 맞닿을 때 그 고통이 미학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표출되곤 한다. 나는 이상하게 그날 인터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내 안의 어느 한쪽을 예리하게 찔린 것 같아서 불편했고, 조급한 마음이 들었던 찜찜한 기억을 잊지 못한다. 이 감정은 한동안 사라졌다가 첫 수업에서 가라앉았던 앙금이 수면 위로 올라오듯이 나를 오도했고, 그 불편함은 테솔이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이 괴로움의 실체를 나는 모르기 때문에 그저 날카로움에 괴롭힘을 당한다고 자기 연민의 우물에 빠져 어떻게든 넘겨보려 했으나. 결국, 그 실체를 알고도 자꾸 반복하는 자신을 타자로부터 지도를 받아 자기 투영했을 때의 비참함은 어쩔 수 없이 나를 뒤돌아보게 하는 시간이었다.

목표 언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구사하느냐의 고민에서 테솔을 접근한 나는, 이내 누군가를 가르치는 길목에 아무 대책 없이 들어섰음을 깨달았다. 지도편달을 할 자격을 갖기 위한 오만함의 독가스가 무의식적으로 발동되었음을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알고도 모르는 척 한 것일까. 테솔 수업 대부분이 서두에는 이 문제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자기 문답을 통해 자신을 깨달아간다. 이 과정의 반복이 한 학기에 그치는 것이기는 하지만, 거창히 내면의 정수를 닦는 것이라고 차용을 하겠다. 이름은 거창하나 내면의 정수를 갈고닦는 길은 그렇다고 무척 거창하지만은 않다. 학업에 정진하는 자세에서도 발현된다고 생각한다. 일편적으로 지식을 습득하는 단계에서 벗어나 나와 함께 공부하는 여타 교우와의 상호작용 그리고 나를 이끌어 주는 스승과의 상호작용이 테솔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나는 선생이면서 학생이었다. 그러니까나는 너이면서 너는 나이다라는 역지사지로 테솔에 임했다. 대단원을 지날 때마다 훌륭한 연출가들은 바로 수업을 담당하신 교수님이셨다. 모두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하고 계셨지만, 항상 I.n.t.e.r.a.c.t.i.o.n을 강조하셨다.

 

각각의 수업에는 세상이 압축돼 있었다. 세상은 오묘한 조합이 있는데 상상을 배제하면 대체로 논리적으로 연결된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논리적인 창의성의 조합도 필요하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다면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 그리고 그것을 다양한 패턴의 문제로 표현하기 위한 창의적인 접근방법, 그 세계가 집약된 공간이 Testing이라고 생각한다. Testing 수업을 통해 내가 이 수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결국 마지막 수업에서 담당 교수님께 테스팅 수업을 좋아한다고 고백을 하고 말았다. 우스꽝스러운 프러포즈였다.

그리고 Tels, Methodology, MDD, Multimedia 세계도 꽤 흥미로웠다. 짧은 식견으로 세계를 운운하는 것이 오만하다고 하겠지만 무식한 관점에서 보자면 직조된 세상을 계속 답습해 나가는 자기 연마의 의미가 강한 공간이었다. 내게는 그러했다. 제아무리 뛰어난 설계자가 만들어놓은 세상이라도 그 안에서 다시 견고한 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예를 익히고 수많은 연마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세 과목이 내게는 연마술을 익히는 적용의 과목이었다. 하지만 다 좋을 순 없었다. 중간에 내 성향과 다소 맞지 않는 과목을 대면할 때 겪었던 극심한 스트레스로 하루에 두 번 샤워한 날들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단어가 분쇄된다.

분쇄된 단어는 실체를 잃는다.

공장에서 새로 포장된 물품처럼 전혀 다른 의미와 형태로 변모된다.

 

큰 기다림과 인내.

그새 추운 겨울이 됐다.

내가 이메일에서 그에게 고한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줘서 감사합니다라는 그 말의 의미가 한 단어에서 분쇄된 내가 오롯이 만든 언어의 향료로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나의 스승은 내가 어떤 과정을 거치고 있었음을 이미 눈여겨보았고 자칫 내가 갖고 있던 여러 설명할 수 없는 내상의 겹으로 중간에라도 내게 실망하고 질책을 할 법도 하였으나, 언제나 격려와 배려나는 너이다라는 한 단어, I.n.t.e.r.a.c.t.i.o.n이 그의 상념에서만 또는 과제물 속 코멘트에서만 머물지 않았음을 나는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내가 언어를 가르치는 직업을 가지려는 사람으로서 찬란한 지식의 무장만큼이나 선생의 의미에 대하여 항상 생각하고 고민해야 함을 더욱 잊지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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