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경제

location   l 폴란드 l 폴란드 정치사회 동향

가. 폴란드 약사

1) 왕조시대

폴란드 땅에 거주한 민족은 슬라브계통으로 9세기에서 10세기에 걸쳐 서슬라브계의 부족들이 연합하여 폴란드 국가가 이루어졌다. 966년 Mieszko(미에슈코) 1세가 기독교를 수용하면서 Piast(피아스트) 왕조가 성립되었으며, 1039년 Kazimierz(카지미에슈) 1세가 수도를 Gniezno(그니에즈노)에서 Kraków(크라쿠프)로 천도하면서 크라쿠프는 정치의 중심지로 발전하게 된다.
왕위 계승에 대한 갈등과 몽골의 침입, 독일 등과의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지면서 14세기까지 봉건분열시대가 진행되었는데, 1385년 피아스트 왕조가 끝나고 Jadwiga(야드비가) 여왕이 리투아니아의 Jagiełło(야기에워) 대공과 결혼하면서 폴란드-리투아니아연합 왕국의
Jagielloński(야기엘로인스키) 왕조가 탄생된다.
1572년 야기엘온스키 왕조는 왕위 계승자가 없어 막을 내리고, 귀족들이 국왕을 선출하는 일종의 귀족 공화정(Noble Republic)이 등장하는데, 이로써 국왕의 권력은 귀족들에 의해 제한을 받게 된다. 1596년에 Zygmunt(지그문트) 3세가 수도를 크라쿠프에서 중부 바르샤바로
옮기면서 모스크바 대공국과 갈등이 커졌으며, 1655년에는 스웨덴,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국력이 약해지게 된다.
이후 1772년, 1793년, 1795년 3차에 걸쳐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해 국토가 분할되어 123년간 국가가 소멸되었으며, 1815년 빈 회의 결과에 따라 제정러시아 내에 독자적인 정치체제를 갖춘 폴란드 왕국이 수립되고, 제정러시아 황제가 폴란드 왕을 겸하게 된다.

2) 독립과 공산정부 수립

폴란드는 제1차 대전 중 윌슨 대통령이 제창한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힘을 얻어 1918년 11월 11일 연합국에 의해 독립국가로 재 수립되었다.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러시아로부터 영토를 반환 받고 1918년부터 1939년까지 독립을 유지한다.
소련, 독일과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1939년 서쪽에서는 나치독일이, 동쪽에서는 소련이 침공함으로써 1945년까지 독일과 소련의 지배를 받게 되는데, 이때 폴란드를 점령한 독일은 폴란드 문화 말살과 유대인 학살을 저지르게 된다.
2장 정치사회동향>국가일반
최종정보확인일: 2014. 12. 폴란드-2

나치독일의 점령 이후 폴란드는 영국에 망명정부를 수립하였으며, 국내에서는 게릴라 활동을 펼쳤다. 1945년 소련이 독일을 폴란드에서 몰아내면서 폴란드는 공산주의자들이 이끄는 임시정부를 수립하였으며, 2차 세계대전 전후 처리결과로 폴란드 동부지역은 소련 국토에 편입되는 대신 독일 동북부지역을 폴란드로 편입하였다.

3) 냉전시대
2차 세계대전 이후 1947년 1월에 치러진 총선 결과, 폴란드 공산당과 사회당 중심의 인민전선이 압승을 거두면서 폴란드는 공산 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그러나 공산 정권의 경제정책이 실패하고 지도층의 부정부패가 심해지면서 1980년 여름 전국적인 노동자 파업이 일어나고 자유화 운동이 확산되었다. 1981년 9월 자유노조 지지자들에 의해 제1회 자유노조 전국회의가 개최되었고, Lech Wałęsa(레흐 바웬사)가 전국 자유노조 의장으로 선출되었는데 당시 Wojciech Witold Jaruzelski(보이치에흐 야루젤스키) 당 서기장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자유노조활동 금지, 바웬사 등 반체제 지도자 구금 등의 강경조치를 단행하였다. 그러나 자유노조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 운동은 지속되었으며, 1988년 Schlesien(슐레지엔) 지방 광부 및 Szczecin(슈체친), Gdańsk(그단스크) 항구와 그단스크 조선소 노동자들이 자유노조의 인정, 임금인상 및 경제개혁을 요구하는 파업을 일으켰고 이는 전국적으로 확대되었다.

4) 체제개혁 이후
전국적인 파업이 지속되자 1989년 2월 폴란드 정부는 자유노조 합법화, 정치개혁 등을 협의하기 위한 원탁회의를 개최하고, 같은 해 6월 자유선거로 총선이 실시되어, 자유노조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7월에 개최된 상·하원 합동 회의에서 야루젤스키가 단독 출마하여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며, 8월 야루젤스키 대통령은 자유노조 지도자 바웬사와 회담을 갖고 자유노조가 주도하는 연정 수립 제의를 수락한다. 야루젤스키 대통령이 차기 총리로 자유노조의 Tadeusz Mazowiecki(타데우시 마조비에츠키)를 지명하면서 동구 사회주의권 최초로 비 공산당이 주도하는 연립정권이 출범하게 되었다. 이후 1989년 12월 의회에서 사회주의 관계조항을 삭제하고 민주 및 자유경제 조항을 삽입하는 헌법개정안이 통과되었고, 1990년 1월 폴란드 공산당은 자진 해체 하게 된다.
자유노조의 마조비에츠키 정부가 출범을 하였으나 개혁 주도파들은 야루젤스키 대통령의 퇴임을 요구하였고, 이에 임기 5년의 직선대통령제가 채택되면서 1990년 12월 레흐 바웬사가 대통령에 당선된다.
1995년 11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좌파연합의 Aleksander Kwaśniewski(알렉산데르 크바시니에프스키) 후보는 바웬사를 누르고 대통령에 취임하였다. 한편, 1993년 9월 치뤄진 조기 총선에서는 과거 공산당인 민주좌파연합과 농민당이 제1, 2당이 되어 1997년 3월까지 연정을 유지했으며, 1997년 9월에는 다시 자유노조 선거운동 진영인 우파 자유노조연대 선거행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여 10월 Jerzy Buzek(예지 부제크) 내각을 구성했다.
2장 정치사회동향>국가일반
최종정보확인일: 2014. 12. 폴란드-3
2000년 10월 크바시니에프스키가 대통령에 재선되었으며, 2001년 9월에는 민주좌파연합이 총선에서 승리하였다. 2001년 10월에 들어선 Leszek Miller(레세크 밀레르) 내각은 민주좌파연합과 노동연맹, 농민당과 연정을 구성하였으며 2004년 5월 밀레르 총리가 사임하고 6월 Marek Belka(마르카 벨라) 총리가 취임을 하게 된다.
2005년 9월에 치뤄진 대선에서는 Lech Aleksander Kaczyński(레흐 카친스키)가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으며 같은 해 11월에 치뤄진 총선에서는 법과정의당이 승리하여 Kazimiesz Marcinkiewicz(카지미에시 마르친키에비치)내각이 성립되었다. 2007년 10월 조기 총선에서 시민연단이 승리를 거두며 Donald Tusk(도날드 투스크) 내각이 구성되었는데 투스크 내각은 시민연단과 농민당의 연정을 구성했다.
나. 현정권 출범 및 성향
여야간의 갈등으로 2007년에는 조기 총선이 치러지기도 하였으나, 2010년 스몰렌스키 참사로 인해 같은 해 치러진 조기 대선에서 당시 의회의 집권당인 시민연단(Platforma Obywatelska, PO) 소속의 코모로브스키 후보가 당선되고, 2011년 총선에서 시민연단이 재집권에 성공하면서 폴란드 정치는 한층 성숙한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로써 도널드 투스크 시민연단의 당수는 총리직을 연임하게 되었으며, 폴란드인민당(Polish People’s Party, PSL)과의 기존 연정도 지속되게 되었다.
전문가들은 여타 야당들의 대안 제시 실패와 경제위기 상황에서 유권자들의 안정적 선택이 시민연단(PO)의 재집권을 가져다 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반면, 전 카친스키 대통령의 쌍둥이 형이 이끄는 법과정의당(PiS)은 2007년 총선에서 실권 이후 재집권을 노렸으나, 보수적 우파 민족주의 이미지를 탈피하지 못하고 동부 지방 시골 저학력 층 위주의 전통적 지지기반 외 지지층 확대에 실패하였다.
지역간 격차 외에 이번 선거 결과에서 주목되는 또 한가지 현상은 신구 세대간의 인식 격차인데, 낙태 허용, 동성애 지지, 소프트 마약류 합법화, 교회에 대한 국고 지원 중지 등을 주장하는 급진 개혁 성향의 신생당인 팔리코트 운동(Palikot Movement)은 주로 젊은 층에서 강력한 지지를 확보하며 기존 개혁 세력인 민주좌파연합(SLD)보다 많은 의석을 차지하여 지난 총선에서 가장 큰 이변으로 떠올랐다. 팔리코트 운동(Palikot Movemetn)은 당신의 운동(Your Movement: RP)이 승계하여 활발하게 활동 중이다.
시민연단의 총선 승리는 1989년 체제변혁 이후 최초로 집권당에 연임에 성공한 사례로, 주요 외신들은 이를 한층 성숙해진 폴란드 정치 환경을 보여주는 것이며 앞으로 안정적인 국정운영으로 인해 유럽의 경제 위기 상황에서 폴란드에 대한 신임을 한층 더 강화하는 결과라고 평가하였다.
도날드 투스크 전총리는 친 EU, 친 시장 성향을 가졌으며, 중도 보수 성향으로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단계적인 개혁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다. 특히, 대외적으로는 EU 확대, EU 경제발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등 여타 동유럽 국가들과의 협력 관계 구축(Eastern Partnership) 등에 정책의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정부 재정적자 감소, 세수 확대 및 다양한 개혁 정책을 추진 했다. 그는 EU 상임의장 직을 수행하기 위해 2013년 10월 1일 부로 총리직을 사임하고, 에바 코파츠가 이를 승계했다.
Eastern Partnership

ㅇ 동유럽 지역 국가들중 비 유럽연합 국가과 유럽연합 가입국들 간의 무비자, 무관세 협정, 전략적인 파트너쉽 수립 등을 목적으로2009년 5월 7일에 발족
ㅇ 폴란드 외무부 장관이 대표 역할을 수행
ㅇ 회원국: EU 회원국 및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몰도바,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특히 투스크 정부는 지난 2011년 4월 발표한 ‘National Reform Programme’에서 중장기 국가 발전 방향을 구체화하였다. 중심내용은 유럽연합의 성장 전략인 Europe 2020 Strategy와 맥락을 같이하고 있으며, 유럽성장전략의 3대 목표인 ‘Smart growth: 지식과 혁신에 기반을 둔 경제 발전’, ‘Sustainable growth: 좀 더 자원 효율적이고 친환경적으로 경쟁력 도모’, ‘Incusive growth: 높은 고용 창출 및 경제, 사회, 지역적 통합 추진’에 맞춰 3대 중점 목표 및 세부 목표들이 제시되었다.
2장 정치사회동향>국가일반
최종정보확인일: 2014. 12. 폴란드-6
폴란드 2020 국가 개혁 프로그램 주요 내용
자료: National Reform Programme of the Republic of Poland
2장 정치사회동향>국가일반
최종정보확인일: 2014. 12. 폴란드-7
다. 폴란드의 정치 체계
폴란드의 정치 체제는 기본적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의 3권 분립에 기초하며, 폴란드의 행정부는 대통령과 내각으로 구성된다.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하며 임기 5년, 2회 연임이 가능하고, 국가 원수로써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할 뿐만 아니라 헌법에 의해 국정 운영의 지속성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총리는 각료회의의 수장으로서 정부의 대내외 정책을 수행하는데, 대통령이 하원 다수당과 협의하여 지명한다. 총리 지명자가 내각을 구성한 후 추천하면 대통령이 임명하고 하원이 이를 인준한다. 총리는 하원에만 책임을 지며, 대통령은 총리 해임권이 없다.
의회는 임기 4년의 양원제로 하원(Sejm) 460과 상원 100석으로 구성되는데, 폴란드 하원은 국정 운영기관인 정부 구성에 직접 참여하지만 상원은 국정 운영 참여권 없이 하원의 견제기능을 주로 담당한다. 하원은 중선거구 비례대표제를 통해 전국 41개 선거구에서 인구비례에 따라 선거구 별로 4-10명의 의원을 선출하며, 전국적으로 5% 이상 득표한 정당에 한하여 선거구별 정당 득표수에 따라 의석 수를 배분한다. 상원은 중선거구 다수대표제를 채택, 전국 40개 선거구에서 인구비례에 따라 다수득표자 순으로 2-4명의 의원을 선출한다.
라. 대외관계
폴란드는 1999년 3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을 함으로써 국가 안전에 대한 제도적 보장을 받았으며, 2004년 5월 유럽연합(EU)에 가입되어 서구 경제권으로 재 편입되었다. NATO와 EU 가입은 폴란드에게 있어 군사적인 안전과 경제적 발전의 틀을 구축할 수 있었던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현재는 회원국으로서의 역할을 확대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미국과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기 위해 이라크 전쟁에 폴란드 군을 파병하였으며, 유럽연합 내에서는 중유럽 국가를 주도하는 리더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또한 2011년에는 EU순회의장국으로서 역할을 수행하였고, 유럽연합과 미국과의 중재 역할을 수행하며, 비확산, 반 테러 등 범세계적 이슈 해결을 주창하는 등 국제 정치적 위상 제고에 힘쓰고 있다.
폴란드는 중동구 최대의 인구 및 경제규모를 가진 국가로 서쪽으로는 EU와 동쪽으로는 러시아 등 CIS를 연결하는 위치에 있다. 과거 폴란드의 장교, 지식인, 정치인 등 핵심계층을 학살한 ‘카틴 숲’ 사건 등 러시아와는 역사적으로 불편한 관계 속에 있는데, 현재 폴란드는 러시아로부터의 에너지 독립을 위해 꾸준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특히 가스 수입량의 40%를 러시아로부터 들여오고 있는 현 상황을 극복하고자 원자력 및 셰일가스 개발에 앞장서고 있는데, 셰일가스의 경우 유럽 내 최대량이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폴란드의 EU국가에 대한 무역의존도가 높은 편이며 최대 교역국은 독일이다. 유로존 위기 시자구책으로 수출선 다변화 전략을 통해 우크라이나 등 동부지역으로 교역의 영역을 확장하였으나, 2014년도 3월 크림반도를 둘러싼 우크라이나-러시아 사태 발발 시 수출에 타격을 받기도 했다.
2장 정치사회동향>국가일반
최종정보확인일: 2014. 12. 폴란드-8
마. 최근 정치사회 동향
투스크 총리는 재집권 1주년인 2012년 10월에 하원에서 경제위기 극복 및 지속 발전을 위한 경기부양책과 친 가족 정책을 발표하였다. 경기부양책으로는 ① 2012-2015년간 고속도로 및 자동차 전용도로 건설에 약 130억 달러를 투자하고 선로 현대화, 신형 객차 구입 등에 약 100억 달러를 투자 하는 등 도로 및 철도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② 2020년까지 LNG 터미널, 원유저장시설을 건설하는 등 에너지 인프라를 구축하며, ③ 각종 연구소 신설 등 학술분야 지원, ④ 투자기금 약 130억 달러를 확보하여 중소기업에게 대출을 지원하는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한편, 친 가족 정책으로는 출산휴가 연장, 지자체 탁아소 개설 지원, 부모들의 유치원 부담금 1억 달러 지원 등을 약속하였다.
투스크 총리는 정책발표 후 현정부에 대한 하원의 재신임 표결을 요청하였는데 그 결과 찬성 233표, 반대 219표로 재신임을 획득하였다.
한편, 2011년 총선 이후 개혁을 진행하는 과정 속에서 은퇴연령 상한 등 몇몇 개혁안이 국민들의 반대에 부딪히며 집권당인 시민연단은 급격한 지지율 감소를 겪었다. 그러나 지속되는 EU내 경제 위기 속에서도 폴란드의 경제가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되며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어 시민연단에 대한 지지도는 다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2014년 3월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당인 시민연단(PO)이 24%로 선두자리를 유지하고, 그 뒤를 이어 2013년도 10월부터 2014년도 2월 기간 지지율 선두를 유지했던 법과정의당(PiS)는 22%, 민주좌파연합(SLD)-노동연합(UP) 7%, 농민당(PSL) 6%, 당신의 운동(TR)-Europa Plus(크바시니에프스키 전 대통령 주도) 4%, 폴란드연대(SP) 2%를 차지했다. 투표 참가의사를 밝힌 응답자는 38%로 최근 5년 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높아졌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보인다.
8월 30일, EU정상회담을 통해 이와 같은 결정을 내렸으며, 도날드 투스크 총리는 헤르만 반롬푀이(Herman Van Rompuy) 현 EU 상임의장의 뒤를 이어 올해 12월 1일부터 2017년 5월 31일까지 2년 6개월 간 상임의장 직을 수행 예정이다. 동유럽권 인사가 상임의장직에 오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번 투스크 총리의 차기 EU 상임의장 임명은 EU가입 10년차 폴란드의 역내 영향력이 증대하였음을 보여준다.

출처 KOT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