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아메리카에서의 환경정의 : 쟁점, 약속, 실행 /저자 정경원 외 3명

 

최근 형평의 측면에서 환경문제를 보는 경향이 부쩍 많아지고 있다. 형평의 문제는 곧 정의의 문제이다. 이에 따라 ‘환경정의’(environmental justice)라는 용어도 자주 쓰이고 있다. 환경정의는 사회정의론을 환경문제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여기에서는 형평성의 원리가 중요하며, 공평한 부담의 원칙이 강조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 동안 환경이 주어진 것으로 모두에게 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해왔다. 그러나 최근 환경오염이 심해지자 그 실상은 전혀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했다. 환경피해는 급속하게 기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통해 그대로 사회적 약자에게 투영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부정의(環境不正義)는 현재 다양한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환경부정의는 환경이 재화로서의 성격을 갖는 순간부터 잉태되어 있는 것이다. 환경재화로서의 환경은 이미 다양한 형식으로 시장 기제에 흡수되어 있으며, 자본주의 제도 하에서 이러한 시장 기제를 완전히 배제시키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즉 동일한 환경문제가 발생한다고 하더라도 경제적 부담능력에 따라 대응방법에 크게 차이가 있는 것이다.
실제로,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의 환경갈등 및 환경운동 공간에서 지역 간, 사회계층 간 불공평은 혼재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상대적 피해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하지만 형평성은 지역 간, 사회계층 간 측면과 더불어, 세대 간 측면에서도 논의되어야 한다. 이와 더불어 생태학적 차원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생태학적 문제인식의 포기는 결국 후세대에게 전가된다는 측면에서 이는 결국 세대 간 형평의 문제로도 논의될 수 있다. 이것은 경제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준과 생태학적으로 지속 가능한 수준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1992년 리우 지구정상회담에서 채택된 소위 “지속 가능한 발전의 원칙”은 환경문제의 형평적 측면을 잘 부각시켜주는 원칙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원칙은 우리의 미래 세대도 우리 세대와 마찬가지로 이 지구상에서 잘 살 권리가 있으므로 이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천연자원과 환경을 이용해야 한다는 요지의 원칙이다. 이 원칙은 이제 하나의 범지구적 이념으로 발전하였고, 지속 가능한 발전의 이념은 자유무역의 이념과 더불어 21세기를 지배하는 이념이 될 것이다.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 지역에서 환경정의는 이 두 가지 이념 사이의 교차 내지 착종을 통한 어떤 화해의 상(狀)을 암시한다. 최근 자유무역 체제에 따른 갈등 양상 및 그 결과물들을 둘러싸고 이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 역시 중요한 환경정의 담론의 요소를 분명 포함하고 있다. 사실 이 지역에서의 환경정의 운동은 사회정의 및 공정사회 실현을 위한 대중운동과 긴밀한 연관관계 속에서 발전해왔다. 역사적으로 식민시기와 독립, 근대화를 거치면서 풀뿌리 사회 저항 운동의 전통이 유지되어왔을 뿐 아니라, 1980년대와 1990년대를 거쳐 민주주의로 전환되는 과정에서도 이 지역의 대중운동은 사회정의 전 분야에 걸쳐 살아 움직이는 핵심 기제로서 제도적 공간을 향한 장(場)으로 활용되어 왔다.
이와 같은 전제 하에, 본 역서는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 지역의 도시와 농촌에서 발생한 수많은 대중 환경운동 사례들을 개념적·실증적 측면에서 분석하고 있다. 이 지역 환경과 관련해 과학적으로 신뢰할 만한 유용 가능한 학술적 데이터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현 실정에서, 본 역서는 이 지역에서의 환경정의의 가능성 및 한계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