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는 미래 사회에 안 어울린다고? "폭넓은 인문 지식, 큰 무기 되죠"
김세영 조선에듀 기자 입력 : 2017.01.23 03:03
문과 출신 벤처사업가 2인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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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 장점 살리면 도전 분야 다양
다양한 세상 볼 수 있는 시각 중요
'문과라서 죄송한 시대'다. 취업난이 심해진 데다 신입사원으로 이공계열만 뽑는 기업이 늘면서 인문계열의 위기감은 갈수록 높아진다. 대학도 다르지 않다. 대학이 '신산업 동력'이라며 새로 개설하거나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는 학과는 죄다 이공계열뿐이다. 이런 상황은 중·고교생에게도 그대로 전해져 남녀 불문 이과에 진학하려는 학생이 늘었다. 취업이 어렵다면 '창업'이라는 다른 길도 있지 않을까. 문과 학생들은 이 말에도 머리를 흔든다. "스타트업이야말로 신기술 지식이 필수 아닌가요? 기술 모르면 스타트업 창업도 남 얘기죠." 정말 그럴까. 문과 출신으로 스타트업에 뛰어든 대표도 많다. 이들을 만나 전공과 계열, 진로에 관한 얘기를 나눴다.
◇"기술 몰라도 스타트업 차릴 수 있어요"
예전엔 많은 회사원이 주변 식당에서 종이 식권을 내고 밥을 사먹곤 했다. 회사 총무팀은 매달 식당을 찾아가 식대를 정산하느라 바빴고, 직원들은 한꺼번에 받은 식권을 종종 잃어버리기도 했다. 식당 주인도 총무팀이 올 때까지 식권을 보관해야 이를 증거로 돈을 받을 수 있어 번거롭기 짝이 없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식권을 애플리케이션(앱)으로 결제하는 방식을 떠올린 이가 있다. 모바일 식권 관리 앱 '식권 대장'을 만든 스타트업 벤디스의 조정호(31) 대표다. 한국외국어대 법학과에 재학 중이던 정 대표는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종이 식권을 묶음으로 사다 쓰면서 불편함을 느꼈고, 이를 앱으로 결제하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후 스마트폰 하나로 식대 결제가 가능한 서비스를 구상하고 앱을 만들었다. 2014년 1월 창업한 이 회사는 2017년 1월 현재 100여 개 고객사(회사)와 1000여 개 가맹점(식당)에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1년간 프로모션으로 무료 제공한 뒤 유료 전환하는 방식인데, 지금까지 재계약률이 100%(식당 폐업 등 제외)다.
그는 "문과 학생들이 '나는 기술을 모르니 스타트업 창업은 못할 거야'라며 지레 겁먹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했다. "일부 스타트업의 신기술이 언론의 주목을 받다 보니 '스타트업=IT'라고 오해하는 학생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문과의 장점을 잘 살리면 오히려 큰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문과생이 폭넓은 인문학적 지식 등을 활용하거나 취미를 발전시켜 유통·미디어·출판·의류·화장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경우가 적지 않거든요. 어문학 전공자들은 전공을 활용해 외국어 교육 스타트업을 차리기도 하고요." 조 대표는 "벤디스가 세상에 없던 솔루션을 내놓은 건 맞지만, 대표인 나는 창업 당시도 지금도 앱에 활용되는 세부 기술을 하나하나 알지는 못한다"고 했다. "신기술을 다루는 분야라고 해서 대표가 공대 출신 기술 전문가여야 하는 건 아닙니다. 기술 잘 아는 동료를 믿고 함께 일하는 거죠. 다만 대표로서 전체 사업을 총괄하고 동료 의견을 취합하는 과정에서 개발팀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을 정도의 관련 용어는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타트업에 관심이 있다면 학창 시절 한 번이라도 장사에 도전해보라"고 조언했다. "붕어빵이라도 직접 팔아보세요. 같은 빵이라도 어디서 무엇을 넣어 만들고 어떻게 파느냐에 따라 판매량이 달라진다는 게 피부로 와닿을 겁니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라면 더 좋겠죠. 나중에 꼭 창업하지 않더라도, 그 경험이 세상 보는 눈을 넓혀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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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호(왼쪽) 벤디스 대표와 이문주 그리드잇 대표는 “문과라고 기죽을 필요 없다. 전공과 직결되지 않는 일에도 얼마든지 도전할 수 있다는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살피는 태도가 중요하다”고 했다. /이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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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은 설득의 연속… 심리학·통계학 도움 돼
식빵·스트링 치즈·빵가루·달걀만으로 노릇노릇한 치즈 스틱을 뚝딱 구워내는 동영상이 한때 페이스북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36초짜리 '식빵 치즈 스틱 만들기' 영상은 '오늘 뭐 먹지?'라는 페이스북 페이지에 2015년 5월 올라온 이후 현재 조회 수 5000여만회를 기록 중이다. 수치상으로만 계산하면 전 국민이 한 번씩 본 셈이다. '오늘 뭐 먹지?'는 모바일 푸드 방송국을 표방하는 스타트업 그리드잇(greed eat)이 관리한다. 그리드잇의 페이스북 담당자는 음식 영상과 요리 사진을 제작하거나 네티즌으로부터 제공받아 업로드한다. 이 외에도 그리드잇은 지난해 2월 레시피 비디오 채널 쿠캣 등을 오픈하며 각종 광고 수익으로 운영 중이다. 지상파 PD까지 영입하면서 영상 콘텐츠를 강화했다.
고려대 심리학과(통계학과 이중전공) 출신 이문주(30) 그리드잇 대표는 "기술을 잘 알면 좋겠지만, 전체 시장을 보는 눈이 더 중요하다. 문·이과를 넘나드는 다양한 영역을 공부하는 것이 경영에 도움 된다"고 말했다. "회사 경영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설득이라고 생각해요. 목표를 설정하고 함께 나아가려면 직원의 마음을 움직여야 하고, 그 과정은 설득을 통해 진행됩니다. 인문학적 감수성과 공감력을 갖췄다면 설득이 수월해지겠죠. 제 경우엔 심리학과에서 배운 조직심리학, 통계학과에서 공부한 데이터 분석 등이 도움 되는 것 같아요."
그는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즐겁게 살고 싶었다. 평생 누군가의 결재를 기다리면서 살기도 어려울 것 같아 창업을 택했다"고 했다. 이 대표는 학창 시절 맛있기로 소문난 식당을 찾아다니는 미식가였다고 했다. "학생 때 '재밌어 보이는 일'을 발견하면 꼭 해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한때 뮤지컬 배우를 꿈꾸면 서 연기 연습하고 후원 업체를 찾으러 여기저기 뛰어다녔어요. 결국 배우는 되지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가능하면 자기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여러 책을 읽거나 직접 경험하면서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야 나중에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지, 그걸 위해 갖춰야 할 게 무엇인지 파악할 수 있거든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1/22/20170122011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