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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2.28 | 조회수 : 2393

제목 : 한 청년장교의 아주 특별한 캠퍼스 경험 (육군 대위 07 이OO) 글쓴이 : 영어통번역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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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2011년 2월이면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통번역학과에서 2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서해안의 해안경계 중대장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다시 임지로 떠나게 된다. 올해로 서른, 30년의 인생 중에서 가장 즐거웠고, 행복했고, 개인적으로 많은 결실을 맺었던 시기였기에 이제는 모교가 된 한국외국어대학교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감사가 가슴에 벅차오른다.

 

2007년 4월, 나는 이라크 아르빌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고 주민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자이툰 부대의 일원으로 파병되었었다. 파병 당시에는 이제 막 군 생활을 시작한 초급장교로서 휴전상태인 안보상황만을 인식하다보니 언제나 부대를 어떻게 훈련시킬 것인가, 어떻게 하면 전투에서 승리하는 부대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에만 관심과 역량이 집중되어 있었다. 하지만 1년여 간의 파병생활을 하면서 군인으로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 외에도 영어능력과 국제적 감각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인식하게 되었다.

 

당시 이라크에서는 27개국이 함께 연합작전을 펼치고 있었으며, 비단 각 국의 군부대뿐만이 아니라 정보기관, UN 임무단, 우리나라의 KOICA 등 정말로 다양한 국적, 다양한 기관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고, 중동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였다. 대한민국 장교의 활동무대가 내가 흙이 되어서도 지켜야할 내 조국뿐만이 아니라 더 넓은 세상이라는 것에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국제사회의 공식언어를 편안하게 하지 못하면 이 넓은 세상은 그림의 떡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편안하게 할 수 있으려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에 2년 동안 위탁교육을 받을 결심을 하고 외국어에 있어서는 최고라는 한국외대에 편입을 하게 되었다. 2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나는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내 실력에 대한 작은 자부심,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외대 영어통번역학과에 대한 감사함으로 가슴이 벅차다.

 

첫 번째 감사함은 내가 한국외국어대학교로 파견 나온 목표, 즉 영어와 통번역 실력을 큰 어려움 없이 업무에 활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만들고 가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게 된 것이다. 지난 2010년 12월 이 학교에서의 마지막 기말고사 기간 동안 육군본부로 제 3차 한-터키 육군회의 통역을 다녀왔는데, TEPS 700점도 나오지 않아서 쩔쩔매던 내가 통역장교로 선발이 되고, 부족함이 많았을지라도 육군차원의 회의를 통역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통역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고, 통역자원봉사를 나가는 것이 일상인 우리 학과 학생들에게는 이런 것이 작은 일이겠지만 통역을 마치고 회의자료를 정리하면서 나는 이런 일을 가능하게 만든 외대에서의 2년이, 그 교육과정이 정말 마법처럼 느껴졌다. 이는 내가 잘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훌륭하신 교수님의 지도와 끊임없는 자극을 해준 학우들, 체계적인 커리큘럼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외대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2009년 1학기 수업을 시작했을 때, 고등학교와 대학교 때는 중국어를 전공했고, 야전에서 근무하는 4년간은 영어를 거의 손을 놨으니 초반에 고생할 것은 각오를 했었다. 그래도 지금 학과장님이신 남원준 교수님께서 수업 첫 시간에 제출한 내 영문 자기 소개서를 보면서 전반적인 수준이 총체적 난국이라는 평가를 해주셨을 때 느꼈던 답답함과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은 대단했었다. 덕분에 여유 있는 대학생활을 즐기면서 듣고 싶은 교양수업도 많이 듣고 운동이나 악기도 하나 배워야겠다는 등의 생각은 다 접고 모든 학점을 전공수업으로 채우고 교수님들의 지도를 따라갔다. 돌이켜 보면 연세대에서 야간에 석사학위과정을 따로 하는 것을 제외하면 매 학기 전공 20학점 채워들으면서 시청각실에서, 도서관에서 수업 따라가기에도 벅찬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다.

 

이라크 파병 시 가장 크게 느낀 것 중의 하나가 업무에 활용하려면 영어 하나만 잘해서는 부족하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해외에서 학부를 나오더라도 번역자료를 막상 가져오면 가독성이 떨어지거나 군 작전개념을 오역하는 경우가 많았고 본인은 이해를 하더라도 통역을 듣는 사람은 이해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운이 좋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그 어떤 교수님 수업을 들어도 영어뿐 아니라 통번역 기술에 있어서도 후회가 남는 수업은 없었고, 교수님들이 주시는 텍스트와 과제를 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실력이 늘어있는 스스로를 발견 할 수 있었다. 아마 내가 영어권에서 그저 영어로 다른 학문을 공부만 했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 많이 아쉬움을 느꼈을 것이다. 교수님들께서 수업시간에 간간히 말씀해주시는 방법론과 스스로의 공부경험들은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하면 좋은가에 대한 방향타가 되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도 언제라도 상담을 요청하면 기꺼이 식사나 차를 사주시면서 진지하게 상담해주시고 수업시간에는 무엇이든 주시려고 베풀어주셨던 학과장님을 비롯한 교수님들의 내리사랑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두 번째 감사함은 너무도 즐거웠던 캠퍼스 생활을 즐기게 해준 교수님과 학우들이다. 고등학교 졸업한 후 스무 살에 입대해서 육사에서 4년 간 수련생활을 하고 임관 후에는 전방 DMZ와 민간인 통제선 안에서, 이라크 아르빌에서 격오지 생활만을 했던 나에게 이문동 외대 캠퍼스는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처음 편입생 면접을 보던 날, 정장을 차려입고 경례를 하는 나에게 2년간은 경례 같은 군에 대한 부분은 잠시 가슴 한 구석에 남겨두고 목례를 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편안하고 여유롭게 삶을 즐겨보라고, 그러면 졸업할 때는 오히려 더 군에 대한, 세상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지고 시야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씀해준 교수님이 있었다. 덕분에 좀 더 힘을 빼고 편안한 마음으로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초등학교 이후로 처음으로 머리도 길러보고,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던 학교 개강파티라는 것을 가보고, 영어대학 총 엠티도 가보고, 육사시절에는 평일에 외출이 안 되기 때문에 가보지 못했던 대학교 축제도 가보고, 부대 있을 때는 언제 비상상황이 발생할지 몰라서 적당히 먹었던 술도 학우들과 함께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잔뜩 마셔보고, 아이들 가르치는 영어캠프에도 가보면서 참으로 즐거운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고 이 경험과 추억들은 나에게 따뜻함과 여유, 배려와 같은 것들을 더해주었다. 나이가 많아도 격의 없이 대해준 영어대학 학생들 덕분에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학교생활을 할 수 있었다.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전한다. 이러한 경험이 없었다면 나는 조금은 더 편협한 사고를 하면서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남들 다해보는 학교에서의 사소한 일들이 나에게는 정말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2년간의 좋았던 기억들, 쌓인 실력이 앞으로 내 삶에 큰 힘을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처럼 좋은 기회를 준 군과 아름다운 학창시절을 만들어준 영어통번역학과의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언제 어디에 있어도 영어대학, 영어통번역학과를 응원하며 그 이름에 부끄럽지 않도록 살아갈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내가 영어통번역학과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좋은 사람들에게 받았던 사랑을 통해 모교를 좋아하게 된 만큼, 나를 겪었던 이곳의 많은 분들이 나를 통해서 불철주야 순수한 마음으로 조국을 지키고 있는 우리 군을 사랑하고 응원해주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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