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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09 | 조회수 : 721

제목 : 《7. 13》[ 한반도포커스] 잊을 수 없는 장면들 - 국민일보 글쓴이 : paxsi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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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년에 몇 번 볼 수 없다는 맑은 날씨의 백두산 천지 전경을 보고 감격하지 않을 한국인은 없다. 안타깝게도 천지에 오르려면 중국 땅 ‘창바이산(長白山)’을 거쳐야 한다. 흥정하느라 소란스러운 중국 상인들 옆에서, 다가갈 수 없는 북한 쪽 천지를 그냥 바라봐야 하는 비통한 심정은 경험해야만 느낄 수 있다. 대북정책 부재에 대한 정부의 책임 회피용 통일 논의보다 훨씬 효과적인 통일교육이다.

#2: 2013년 5월 중국 지안(集安)박물관이 새로 개관했다. 실질적으로는 고구려 박물관이다. 중국은 2009년부터 전국의 대부분 공공 박물관을 무료 개방했지만 유독 지안 박물관은 입장료를 70위안(약 1만3000원)이나 받아 접근을 어렵게 한다. 박물관 내부의 고구려 유적 설명은 가관이다. 고구려를 중국 한(漢)대의 일개 지방정부로 묘사하고 있다. 박물관 내부는 물론 인근의 유적 관람 한국인은 중국 공안이 밀착 감시한다. 누각 속의 광개토대왕비 사진을 찍던 필자에게 공안 여럿이 다가와 험상궂은 표정으로 막았다. 동북공정의 현장이다.

#3: 지안에서 단둥(丹東)에 이르는 굽이굽이 압록강 유역 산길. 길 따라 곳곳에 자리 잡아 그 순박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조선인 촌락. 마을 넓은 터 가마솥에서는 무럭무럭 김이 피어오르고, 얼굴 불콰한 동포들의 질박한 삶이 차창에 그림처럼 걸린다. 그 옛날 고구려가 왜 이곳 환도성 아래에 도읍을 정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이 지역은 단순히 압록강가의 산골이 아니다. 호쾌한 기마민족의 기상을 품고 유라시아 대륙을 넘어 이곳까지 도달한 한민족의 영혼이 안식할 수 있는 천혜의 산하(山河)로서 조상의 그 안목이 새롭다.

#4: 압록강 하구. 단둥에서 탄 작은 배는 북한 신의주 강안까지 다가간다. 머리 위로는 6·25때 미군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단교(斷橋)가 흉한 철골을 드러내고 있다. 신의주 쪽 강둑을 바람결에 오가는 사람들. 압록강에서 일하는 북한 선원들도 손을 흔든다. 그들에게는 그냥 일상이지만, 강둑에 오르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가슴이 메는 분단의 현실이다.

#5: 뤼순(旅順) 감옥. 안중근 의사와 단재 신채호가 머물던 감옥 방이 그대로 있다. 안중근 의사가 사형당한 곳. 안내했던 중국인 말로는 그 정도 중요한 인물은 교수형 후 시신을 분쇄해서 항아리에 넣어 흔적 없이 버렸을 수 있단다. 사형당하기 전 그가 동포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에게 각각 남긴, 죽음을 초월한 소박하고도 의연한 인간의 모습이 절절이 묻어나는 유서에 눈물을 감출 수 없었다.

#6: 전범국 일본의 동아시아 침략을 뒷받침했던 산업시설이 비서구권 최초의 ‘근대화’ 흔적이라는 명분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안중근 의사가 처단했던 전범 이토 히로부미의 스승이자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의 사설 학당도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 이 마당에 구차하고 생뚱맞게 일본 대표의 발언에 포함된 ‘강제노역’을 둘러싼 영어 번역 시비가 벌어졌다. 정작 유네스코의 공식 ‘결정문’에는 한국인 강제노역 사실이 빠졌는데도 한국 외교부 장관은 ‘우리의 전방위적 노력이 이뤄낸 값진 성과’로 평가했다. 1939∼1945년 동안 일제징용에 끌려가 목숨을 잃는 한국인은 적게는 20만명, 많게는 50만명으로 추산된다.

역사는 우리의 정체성을 세우기 위한 출발점이다. 앞에 소개했던, 잃어버린 우리 역사와 분단의 현장에 연수 갔던 한국 공무원 9명이 교통사고로 숨졌다. 안전한 일정 관리가 아쉽지만, 우리 공무원들에게는 꼭 필요한 과정이므로 해외 연수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부당하다. 오히려 한·미·일 관계를 위해 과거를 잊고 굴욕을 성과로 미화하는 한국 정부의 ‘저자세 외교’로 또다시 역사도 잃고, 정체성도 무너질까 우려해야 한다.

오승렬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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