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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11.09 | 조회수 : 709

제목 : 《9. 7》[ 한반도포커스 ] 中 전승절 행사를 보며 - 국민일보 글쓴이 : paxsi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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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승절 행사가 끝났다. 시진핑이 천안문에 올라 행한 연설은 ‘중국은 평화를 지향하고, 결코 패권을 추구하지 않으며, 30만명의 병력을 감축하겠다’는 요지다. 짧은 연설의 대부분은 ‘항일전쟁’에 대한 평가에 할애했고, 이는 일본이 ‘평화’의 파괴자였음을 강조함으로써 역사청산에 인색한 아베 정부를 직접 겨냥한 것이다. 또 1961년 9월 미 대통령 케네디가 유엔총회 연설에서 핵전쟁 위협의 경고로 사용했던 ‘다모클레스의 칼’을 거론하면서 언제든지 다시 전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지적했다. 9월 말에 있을 시진핑의 미국 방문을 고려해서 미국을 자극할 언사나 위협적인 신형 무기 공개에는 신중을 기했다.

이번 전승절 행사는 대외관계뿐 아니라 중국 내부 정치에도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동안 중국 지도부의 내홍(內訌)에 대한 관측을 불식시키려는 듯 장쩌민과 후진타오, 리펑, 원자바오 등 건강이상설과 숙청 가능성이 제기됐던 원로들까지 열병식장에 총동원했다. 또 현직 총리 리커창이 행사 사회를 진행함으로써 시진핑과의 격(格)을 달리하여 시 주석 한 사람에게 권력이 집중되고 있음을 암시했다. ‘무서울 정도’로 일사불란했던 열병식과 긴장된 표정을 풀지 못했던 시진핑의 사열 모습에는 역설적이게도 포장된 ‘정치적 단결’의 불안감이 스쳤다.

우리 쪽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균형외교’의 성과이자, 통일을 위한 협력의 장이 열렸고, 한·중·일 협력시대를 열었다며 자화자찬 일색이다. 대통령 여론 지지율 상승 그래프가 현란하다. 그러나 중국 매체는 중국이 전승절에 박 대통령을 초청해 융숭한 대접을 베푼 것이 정치 위기에 몰렸던 한국 정부에 크게 도움이 된 것으로 지지율 통계를 역이용했다. 중국이 변한 것이 아니라, ‘중국의 배려’가 박 대통령에게 오히려 큰 도움을 줬다는 식이다. 중국의 오만함이다.

한·중 정상회담 성과로 거론된 것들은 냉정히 봐야 한다. ‘북한 비핵화’가 아닌 ‘한반도 비핵화’, 그리고 6자회담 재개와 한반도 ‘평화통일’은 중국이 줄곧 주장하면서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압박을 완화시키는 명분으로 사용해 왔던 내용이다. ‘한반도 긴장을 초래하는 어떤 행위에도 반대’한다는 시진핑의 발언은 남북한과 미국을 다 같이 염두에 둔 일상적 어투다. 최근 북한의 지뢰 도발로 인한 긴장 국면에서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남북한의 자제를 요구하며 같은 표현을 사용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중국이 한국 주도의 한반도 통일을 지지하고, 앞으로 통일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는 식의 해석이다. 중국이 과거 친북한 성향을 보일 때도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지지한다고 밝혀 왔고, ‘내정 불간섭’은 중국 외교의 기본원칙이다. 형식의 ‘융숭함’으로 중국은 한국의 착시현상을 불러왔지만, 흥분할 만큼 새로운 것은 없었다.

물론 한국의 발전과 국제정치적 역할 증대에 따른 박 대통령에 대한 환대 자체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점은 자명하다. 또 한·중 경제관계의 중요성을 부인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박 대통령 방중 성과에 대한 자가발전식의 과대포장은 국익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스스로 만들어낸 중국에 대한 ‘빚진 느낌’과 미국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북한에 대한 과도한 ‘승리 도취’는 다 같이 대가를 지불해야 할 수 있다. 우리 몫이던 전승절 참여 대가를 중국의 ‘채권’으로 만드는 격이다. 당장 10월로 예정된 대통령 방미 과정에서 각종 현안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뿌리치기도 어렵게 됐다. 어정쩡한 합의로 봉합된 남북한 관계는 언제든지 다시 지뢰 도발 직후로 돌아갈 수 있다. 어렵겠지만 외교안보 영역에서 국내정치의 유혹은 뿌리치자.

오승렬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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