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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07 | 조회수 : 806

제목 : 모로코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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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일반개항

정식명칭은 모로코왕국(Kingdom of Morocco)이다. 수도는 라바트이며, 공용어로는 아랍어를 사용한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유럽의 이베리아 반도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지중해, 북서쪽으로는 대서양에 면한다. 동쪽과 남동쪽으로 알제리와 접경하며, 남서단은 서(西)사하라와 국경을 접한다. 지중해 연안에는 에스파냐의 속령인 세우타와 멜리야가 있다. 행정구역은 15개의 지역으로 나뉘어지는데, 모로코는 이 15개 지역 외에 서사하라 내부에 완전히 포함되는 Oued Eddahab-Lagouira 지역도 영토에 포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위치 아프리카 북서단

경위도 서경 5° 00", 북위 32° 00"

면적 446550

해안선 1835

시간대 UTC 0

수도 라바트

종족구성 아랍 - 베르베르인 (99.1%)

공용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교 (98.7%)

건국일 1956년 03월 02일

국가원수/국무총리 모함메드(Sidi Mohammed VI) 국왕(99.7.23 즉위)

국제전화 +212

정체 입헌군주제

통화 디람(Dirham, DH)

인터넷도메인 .ma

홈페이지 www.pm.gov.ma

 

 

 

 

 

역사

모로코 원주민인 베르베르인(人)의 고대사는 분명하지 않다. 페니키아인과 카르타고인이 해안에 거점을 만들고 로마인도 한때 모리타니 부근의 해안지대를 지배하였다. 아라비아에서 진출해 온 이슬람교(敎)의 군대가 모로코를 정복한 685년 이후 베르베르족(族)도 이슬람화(化)되어 711년 에스파냐를 공격하였다. 740년경부터 소왕국으로 분열되었으나 788년 이드리스 왕조가 통일하였다. 11세기에 알모라미드왕조가 마라케시를 수도로 에스파냐에서 세네갈강에 이르는 광대한 제국을 건설하였으나 12세기에 알모하드왕조로 교체되었다. 그러나 13세기에 들어 에스파냐에서 그리스도교도에게 패배한 이 왕조는 쇠퇴하고 메리니드왕조가 뒤를 이었다가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중엽에 걸쳐 와타시드왕조가 지배하였다. 이 시대에는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침략을 받았고 오스만투르크의 압력에도 저항하였다.

 

1830년 알제리가 프랑스령이 된 후 모로코는 서유럽 국가의 분할경쟁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1880년대에는 침략의 대상이 되어 1904년 프랑스·에스파냐의 협상을 거쳐 1912년 프랑스와 에스파냐의 보호령으로 분할되었다. 모로코의 민족주의는 1921∼1926년 아브드 엘크림의 반란을 계기로 조직화되었고, 다시 제2차 세계대전 후 반(反)프랑스 해방투쟁을 거쳐 1956년 3월에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였다. 같은 해 4월에는 에스파냐도 모로코의 독립을 인정하고 북부 보호령의 시정권(施政權)을 포기하였다. 또 그해 10월에는 국제지대(國際地帶) 탕헤르, 1958년 4월에는 에스파냐의 남부 모로코령도 회복하여 입헌군주국 모로코의 영토는 통일되었다.

 

1961년 사회주의적인 국왕 벤 유세프가 병사한 후 그의 아들 하산 2세가 즉위하였다. 그 무렵부터 모로코는 우익민족주의로 전향하여 모리타니·알제리와 분쟁을 계속하였으나 그후 우호적인 관계를 맺었다. 또 1969년 에스파냐령 이프니가 정식으로 반환되었으며, 1976년 4월 에스파냐령 사하라(西사하라)의 북쪽 반을 병합하였다. 이후 서부 사하라 지역의 병합을 위한 국가적 노력이 진행되고 있으나 UN과 인접 관련국의 반대로 현재 답보상태에 있다. 하산 2세가 사망하자 왕세자인 모하메드 6세가 1999년 7월 즉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

문학은 아랍문학과 불문학이 발달하였으며, 아랍문학의 작품은 주로 레바논에서 출간되나 부수는 3,000부를 넘지 못한다. 전통적인 민속을 계승하기 위해 정부는 마라케시에서 매년 봄에 민속제를 개최한다. 음악학교는 라바트, 카사블랑카에 있으며, 전통음악의 보존과 서유럽 음악의 전파라는 양면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이슬람교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거의 춤을 볼 수 없다. 16세기부터 가장 선호되는 교역품인 가죽제품 마론퀴네리(Maronquinerie)가 유명하고 카펫, 도자기, 보석, 청동제품, 목제품 역시 품질이 뛰어나다.

 

모로코 정부는 국민단합을 위하여 체육진흥 정책을 수립하여 각종 스포츠를 장려하고 있으며, 국민들은 특히 축구를 좋아하고 육상부문에는 세계적인 유명선수들이 많다.

 

정치

1962년에 제정된 헌법은 1965년 6월 하산 2세가 폐기하였고 1967년 7월까지 국왕 친정의 비상사태가 계속되었다. 그후 1970년 7월에는 국민투표로 신헌법이 시행되었으나 1972년에 국왕 암살미수사건이 일어나는 등 정세는 여전히 불안정하였다. 때문에 국왕은 국민의 관심을 국왕에 대한 불만에서 에스파냐령 사하라의 반환요구로 전환시켜 정정(政情)의 안정을 꾀하였다. 1975년에는 국제사법재판소가 에스파냐령 사하라의 귀속을 주민의 자치에 맡기도록 판결을 내렸으나 이를 반대하는 국왕은 35만 명을 조직하여 ‘녹색(綠色)의 행진’을 감행하였다. 그 결과 같은 해 11월 에스파냐와의 협정에 의하여 1976년 4월 에스파냐령 사하라를 모리타니와 분할하고 그 2/3를 병합하였다. 그러나 서사하라의 독립을 주장하는 게릴라는 대서양에 진출하려는 알제리의 지원으로 폴리사리오 해방전선을 결성하여 모로코를 상대로 전투를 계속하였다. 1999년 7월 30일 모하메드 6세(Mohammed Ⅵ)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행정은 중앙집권적이며 지방행정은 9개도, 22개현, 43개지방, 1,544개면으로 되어 있고, 1962년부터 탕헤르가 하계수도(夏季首都)로 지정되었다. 라바트와 카사블랑카의 시장은 왕실에서 직접 임명한다. 모로코의 정체는 입헌군주제로 왕권은 절대적인 권력이다. 장자 상속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국왕은 수상 임명권과 각료 임명권을 행사한다. 행정부는 의회 다수파 중 국왕에 의해 지명되는 수상과 수상의 제청에 의해 국왕이 임명하는 각료로 구성된다. 현 수상은 2007년 9월 총선에서 승리한 독립당(PI; Independence Party)의 지도자 압바스 엘 파시(Abbas el Fassi)이다. 사법부의 법관은 국왕이 주재하는 사법평의회의 추천에 의해 임명되며, 지방법원, 행정법원, 상고법원, 대법원 등이 주요 사법기관이다. 의회제도는 1996년 제4차 헌법 개정을 통해 확립된 양원제이다. 하원의 임기는 6년으로 직선에 의해 선출되며 정원은 325석이다. 상원은 임기 9년으로 총 의석(270석)의 3/5은 지역별로 선출하고 나머지는 선거인단에 의한 간접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모로코에는 15개가 넘는 정당이 있는데, 주요 정당으로 독립당(PI), 대중운동당(MP), 국민독립재건당(RNI), 사회국민연합당(USFP),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정의발전당(PJD) 등이 있다. 2007년 총선에서 독립당이 상원 17석과 하원 52석을 얻어 다수당이 되었지만 전체 의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낮다.

 

외교는 비동맹 적극중립주의를 표방하며 이슬람교 국가간의 우호증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1973년 미국 국무장관 키신저의 방문 이후 대미관계가 호전되었으며, 이후 친미 성향을 갖는다. 사하라 지역을 합병하면서 폴리사리오 게릴라 활동을 지원하는 알제리와의 관계가 악화되어 1976년 단교하였으며, 1988년 5월 외교 관계를 재개하였다. 그러나 1994년 8월 발생한 호텔 습격 테러범들이 알제리에 의해 사주되었다는 혐의로 양국간 육로 국경을 폐쇄하였다. 폴리사리오를 인정한 에티오피아와도 단교한 데 이어 1979년에는 이집트와도 단교하였고 리비아와도 관계가 좋지 않다. 모로코의 최대 목표는 EU(European Union:유럽연합) 가입으로, 1987년 가입신청을 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며 2001년 3월 발효된 EU와의 협력협정을 계기로 관계 강화에 노력하고 있다. 또한 중국 및 인도와 기존 비동맹 외교에 바탕을 둔 친선 우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일본과도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군대는 19만 6300명으로 식민지 때 프랑스 및 에스파냐 휘하에 있던 부대와 대(對)프랑스 독립전쟁 게릴라들을 주축으로 한 부대로 구성되어 있다. 국민개병이며 복무기간은 18개월이다. 10만 명의 예비군도 조직되었고, 왕실 근위대는 1,500명의 정예군으로 구성되었다. 국내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은 프랑스의 기술지원을 받는다. 2003년 기준으로 GDP 대비 국방비 비중은 약 5%이다.

 

경제

모로코는 면적·인구·자원·지리적 위치로 보아 경제발전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으나 독립 후의 급격한 인구증가, 무계획적인 경제의 정체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자원으로는 다른 북아프리카 국가와는 달리 석유는 없으나, 석탄·인광석·철·납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특히 세계 제3위의 매장량을 보유한 인광석의 수출량은 세계 제일이다. 특히 주요 관광지인 카사블랑카는 외화수입의 4/5를 차지한다. 경제계획의 투자는 대부분 외자(外資)에 의존하며, 사경제(私經濟) 부문은 주로 프랑스인들이 장악하고 있다. 1969년 은행, 보험, 서비스업의 국유화를 촉진시키는 법을 제정하는 한편, 외국인의 투자를 촉진시키기 위해 외국인의 자산 및 이익은 법에 의해 보호를 받는다. 독일, 프랑스, 에스파냐 등 유럽 각국과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정기적인 회의가 매년 열리고 있다.

 

교통은 카사블랑카로부터 각 지역 중심지로 방사상으로 연결되어 있다. 철도는 국유화되어 있으며 2006년 기준으로 총연장 1,907㎞(1,003㎞는 전철)이다. 도로망은 아프리카 국가 중 남아프리카공화국 다음으로 양호하며 총연장 5만 7493㎞이고 이중 포장 도로는 32,716㎞(고속도로 507㎞ 포함)이다(2004년 기준). 공항시설이 양호한 편이며, 항공로는 모로코항공이 운항하며 카사블랑카, 탕헤르, 라바트, 아가디르 등지에 공항이 있다.

 

2007년(추정치) 기준으로 수출은 127억 3000만 달러, 수입은 221억 5000만달러로 큰 폭의 무역수지 적자를 보여주고 있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프랑스(21.1%), 스페인(20.2%), 영국(4.8%), 이탈리아(4.6%), 인도(4.0%)이며, 주요 수출품은 농수산품, 인광석, 봉제, 섬유 및 가죽제품이다. 주요 수입대상국은 프랑스(17.6%), 스페인(13.5%), 사우디 아라비아(6.9%), 중국(6.9%), 이탈리아(6.4%), 독일(6%) 순이며, 주요 수입품은 기계설비류, 전기 및 가전제품, 화학제품, 원유, 원사, 밀 등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모로코는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 1962년 7월 한국과 단독수교협정을 체결하였으며, 그해 10월 상주공관이 설치되었다. 북한과는 1989년 수교하였다. 모로코와 한국 양국간에 무역 협정(1976년), 경제·기술협력 협정(1976년), 문화 협정(1977년), 사증면제 협정(1993년), 이중과세 방지 협정(1999년), 투자보장 협정(1999년), 정보통신협력협정(2001년)이 체결되었다. 1999년에 외교통상부 장관 홍순영이 모로코를 방문하였고, 고등 및 기술교육담당 국무장관 아브델라 사아프가 방한하였다. 2005년에는 한-모로코 경제 세미나가 열려 양 국의 경제 협력 방안을 위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2006년 기준으로 대(對) 한국 수출은 8,730만 달러이고, 수입은 2억 2,270만 달러이다. 모로코의 대한 주요 수출품은 반도체, 비금속 광물, 해조류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승용차, 무선전화기, 합성수지 등이다. 한국인 교민은 체류자를 포함해 250명 정도이며, KOICA 봉사단 20여명이 2001년 12월부터 정식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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