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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07 | 조회수 : 920

제목 : 바레인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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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일반개항

정식명칭은 바레인왕국(Kingdom of Bahrain)이다. 중동 지역에서는 유일한 도서국가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동쪽 페르시아만에 있는 군도(群島)로 구성된다. 북동쪽의 국제공항이 있는 길이 약 6.5km의 무하라크(Muharraq) 섬과 수도 마나마(Manama)와는 인공 제방으로 연결되어 있고 석유 적출항이 있는 시트라섬도 역시 인공제방으로 바레인섬과 연결되어 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후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에 적극 지지해 미국에 군사 시설을 제공하기도 했다. 중동 지역 최대의 미국 해군기지가 있다. 행정구역은 5개의 행정단위(governorate)가 있다.

 

 

위치 페르시아만 서안

경위도 동경 50° 33", 북위 26° 00"

면적 665

해안선 161

시간대 UTC+3

수도 마나마(Manama)

종족구성 바레인계(62.4%)

공용어 아랍어, 영어

종교 시아파 및 수니파 이슬람교 (81.2%), 그리스도교 (9%)

건국일 1971년 08월 15일

국가원수/국무총리 하마드(Hamad Bin Issa Al Khalifa) 국왕(99.3.6 즉위)

국제전화 +973

정체 세습군주제

통화 바레인 디나르(Dinar)

인터넷도메인 .bh

홈페이지 http://www.e.gov.bh/

 

 

 

 

역사

바레인은 페르시아만을 끼고 아라비아반도, 소아시아, 인도양를 연결하는 중계지에 위치하고 있어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력한 중계무역지로 번성하였다. 7세기 경 이후 무슬림 아랍의 통치를 받았으나 일찍이 아프리카 남단을 거쳐 인도양에 이르는 항로를 개척한 포르투갈의 눈에 띠어 1521년 그의 수중에 넘어갔고 1602년 이후 이란의 지배를 받아오다가 1783년 아라비아반도에서 이주한 할리파(Ahmad Ibn Al-Khalifa) 가문이 이란을 축출, 왕국의 기반을 아련하였다.

 

1820년부터 영국은 바레인에 대한 광범한 지배권을 획득하였고 1880년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32년 석유의 생산이 시작되면서 근대화가 진행되었으며, 1971년 8월 영국군의 수에즈 이동 철군과 함께 족장겸 왕이었던 세이흐 이사 이븐 살만 알 할리파의 주도로 독립하였다. 19세기부터 이란이 바레인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였으나 1970년 바레인 주민들의 이란 귀속을 원하지 않는다는 UN 보고서 내용에 이란이 승복하여 오늘에 이른다.

 

1973년에는 의회구성을 승인하는 신헌법이 발효되어 총선을 실시하였으나 종파 간의 갈등 때문에 국왕이 1975년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 효력을 정지시켰다. 이에 3차에 걸친 왕정 전복기도가 있었지만 실패하고 민심을 수습하기 위한 자문위원회가 1993년 1월 구성되었다. 30명의 의원(수니계 15명, 시아계 15명)은 임명직이며 입법권을 갖지 못해 1996년 임기가 종료되었다. 1994년 의회 부활과 시아파 종교지도자 석방 및 시아파 인사의 고위직 등용 확대를 요구하는 반정부 소요사태가 발생하였다. 1996년에 의원은 수니파, 시아파 동수로 40명으로 증원되었다. 38년 동안 바레인을 통치한 세이흐이사 이븐 살만 알-할리파 국왕은 1999년 3월 사망하여 바레인 방위군 총사령관인 왕세자가 왕위를 계승하였다

 

 

 

문화

바레인은 중동 걸프 국가들 중에서 비교적 콘서트, 스포츠, 문화 행사 등의 개최가 활발한 문화 중심지이다. 문화행사에는 서양의 대중 예술, 발레나 오페라단의 순회, 아랍 음악 스타 등의 공연이 포함되고, 국제적으로 유명한 배우들의 공연과 스포츠 경기의 개최 등도 이루어진다. 바레인은 이를 위해 4,000개 객석의 공연장과 회의장, 주 경기장 등을 건설하였다. 부유층은 전통스포츠인 매·가젤·산토끼 사냥, 말·낙타 경주 등도 즐긴다. 바레인의 전통예술에는 헤나(Henna)라는 것이 있는데 천연염색인 헤나는 서양에서는 머리를 염색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아랍 민속문화에서는 여러 가지 의식 때 여성의 손과 발을 치장하는 방법으로 널리 사용된다. '헤나의 밤'은 중요한 결혼 전야 의식으로 신부의 부모들이 헤나 디자이너를 불러 신부의 손과 발에 복잡한 문양을 그리게 한다.

 

음악은 바레인인의 삶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차지하는데 많은 어린이들이 BC 2000년대 메소포타미아의 유적에서도 발견되는 아랍 현악기의 연주를 배운다. 오랜 역사를 통하여 일상생활 속에서 발전해온 민속음악은 녹음되거나 클럽, 콘서트 등에서 연주됨으로써 유지·보존된다. 여러 세기에 걸쳐 발전해온 바레인의 민속공예로는 도(dhow) 보트 제작(티크나 맹그로브나무 판자 재료의 이용), 수예제품, 도기, 철제품, 바구니, 직물 등이 있다. 이러한 공예는 바레인 정부의 꾸준한 지원과 끊임없는 관광 기념품 수요로 인해 아직도 잘 보존되고 있다.

 

 

정치

2002년 제정된 헌법에 따르면 바레인의 국가 정체는 입헌군주제로 국가 수반은 1999년 이후 세이흐 하마드 이븐 이사 알-할리파 왕이며, 수상은 1971년 이후 할리파 빈 살만 알-할리파이다. 수상과 각부 장관은 왕이 임명하며 양원제 국회의 상원의원 40명 또한 왕이 임명한다. 임기 4년의 하원 40명은 선출직이다. 2006년 총선에서 정당별 하원의석 분포를 보면 시아파 17석, 수니파 5석, 수니무슬림형제당 7, 독립당 11석 등이었으며 그 후 약간의 변동이 생겼다.

 

알-할리파 국왕은 종파 갈등으로 분열된 정치를 안정시키고 국제 원유가하락으로 위기에 처한 경제를 회복시켜야 하는 과제를 잘 플어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주축으로 한 GCC(Gulf Cooperation Council:페르시아만안협력회의)의 일원으로 이들과의 협력이 외교정책의 주된 기조이다. 민주화 열기의 도미노현상을 우려한 사우디아라비아는 바레인 정부의 재야세력 탄압과 치안확보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후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대 이라크 경제제재를 적극 지지, 미국에 군사 시설사용을 허가하기도 했다. 2000년 의원 선거가 실시되고 2001년 국제사법재판소의 타결로 카타르와의 분쟁이 완전 타결되었다.

 

1997년 국방군이 창설되었으며 군인은 지원제, 총병력은 2만 2000명, 경찰 1만 3000명이다. 군사비 지출은 GDP의 4.5% (2006년) 으로 세계 22위이다. 중동지역 최대의 미국 해군기지가 있다.

 

 

경제

1인당 GDP는 25,600달러 (2006년 추산)이며 경제성장율이 7.1%으로 다른 아랍 국가에 비하여 높은 수준이다. 산업별 GDP 구성비율은 농업 0.5%, 공업 38.7%, 서비스업 60.8% (2005년 추산) 이다. 석유와 천연가스는 바레인의 가장 주요한 천연자원이며 경제를 지배하는 요소이다. 바레인은 페르시아만(灣)에서 최초로 석유를 발견한 국가이다. 석유의 한정된 매장량(1억 2100만 배럴, 세계 65위, 2006년 추산) 때문에 정부는 지난 몇 십 년 간 석유산업에만 의지하지 않고 경제 여러 부문을 다양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바레인은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알루미늄 제련소를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25만 2000톤의 알루미늄을 생산한다. 바레인의 관광산업 또한 주요한 수입원이다.

 

바레인 경제는 정부가 석유, 알루미늄 등의 기초 산업을 통제하는 혼합경제 형태이다. 1981년과 1996년 사이에 바레인 정부의 지출 규모는 64%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국가세입은 단 4%만 증가하여 부족한 세입의 많은 부분을 석유산업에 의지하게 되었다. 바레인은 사우디아라비아,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로부터 정부 예산 지원을 받고 있다. 비록 적자운영을 하고는 있으나 바레인의 경제는 규모가 작고 건실하다. 경제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세계의 어떤 변화에도 사실상 민감하게 타격을 받는다.

 

바레인 정부는 소규모 생산량에 의한 만성적인 재정 적자, 15%의 높은 실업율 (2005년 추산) 등을 타개하고 석유 자원 고갈에 대비한 공익사업, 금융서비스업, 통신 등의 분야에 있어'사유화를 추진 중에 있다. 이들 분야는 중동지역의 중심지로 육성시킬 계획이다. 또한 석유산업으로 부터의 수익을 교통, 통신 등의 경제기반 산업에 투자하고, 경제기반 산업개발과 보건·전기·수도·교육·도로 등 삶의 질 개선 사업에 주력하여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물가상승율은 3.5% 정도이다. 2006년 수출은 126.2억 달러, 수입은 90.4억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석유, 석유·알루미늄제품, 화학약품 등이며, 수입품은 석유(정제용), 기계·수송기기, 알루미늄 등이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한국, 일본, 미국, 영국,독일 등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바레인은 남북한 동시 수교국으로 1976년 4월 한국과 수교하고 2001년 북한과 수교하였다. 한국은 1976년 바레인의 수도 마나마에 상주 대사관을 개설하였다가 1999년 폐쇄, 사우아라비아대사가 겸임하게 하였다. 1978년과 1983년 두 차례에 걸쳐 한국의 민속예술단이 방문·공연하였으며, 통상 증진을 위해 종합상사·은행·건설업체 등이 진출해 있다. 양국은 1980년 체육교류증진협력, 1984년 무역증진 및 경제·기술협력 협정, 1987년 문화협정, 1991년 항공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1984년 국회의장 채문식, 1985년 외무부장관 이원경, 1995년 외무부차관 이시영이 바레인을, 1985년 이후 바레인의 체육장관, 상공회의소 부회장 등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1970년대 건설 수주 이후 왕족 특권층과의 무연고 등으로 건설 계약이 전무하다. 2000년 기준(10월 이전) 대한(對韓) 수입은 4600만 달러, 수출은 2억 2600만 달러다. 주요 수출품은 알루미늄 제품, 화학품, 광물 연료 등이며, 주요 수입품은 섬유, 자동차, 전자제품, 전기기기 등이다. 2001년 10월 기준 107명의 한국 교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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