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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07 | 조회수 : 351

제목 : 수단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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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일반개항

정식명칭은 수단공화국(Republic of the Sudan)이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졌으며 영토의 절반이 나일강 중류 및 상류의 분지이며, 북동쪽 끝에 홍해에 면한 짧은 해안선이 있다. 북쪽은 이집트, 동쪽은 홍해와 에리트레아, 에티오피아와, 남쪽은 케냐, 우간다, 콩고민주공화국과, 서쪽은 리비아, 차드, 중앙 아프리카 등 9개국과 국경선이 접한다. 18세기에 들어 영국과 이집트의 공동 지배를 받았으며 1956년 독립하였다.

 

수단은 나일강을 중심으로 문명이 발달하였으며 나일강 상류 청나일 강과 백나일 강이 합류하는 지점에 수도 카르툼이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매우 건조한 사막지대가 형성되어 있어 거의 사람이 살지 않으며 나일 강 동쪽으로 문명지대가 형성된다. 북부의 아랍계 주민과 남부의 비아랍계 주민들 사이에 사회구조와 문화의 차이가 커 주민 간 대립이 심각한 문제로, 근 50여년간 내전을 겪어왔다. 특히 2007년에 일어난 다르푸르 사태로 수십만 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학살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2011년 2월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했고, 수단의 남부지역 주민 중 98.83%가 독립을 찬성했다. 2011년 7월 9일 남수단이 독립국가로 탄생하며, 2개국으로 분리되었다. 행정구역은 26개주(wilayah)로 이루어져 있다.

 

위치 아프리카 북동부

경위도 동경 30° 00", 북위 15° 00"

면적 2505810

해안선 853

시간대 UTC+3

수도 카르툼

종족구성 흑인 (52%), 아랍인 (39%), 베자족 (6%)

공용어 아랍어

종교 수니파 이슬람교 (70%), 토착종교 (25%), 그리스도교 (5%)

건국일 1956년 01월 01일

국가원수/국무총리 바쉬르(Ahmad Al Bashir) 대통령(89.6 집권, 93.10 대통령취임, 2000.12 3선)

국제전화 +249

정체 공화제

통화 수단 디나르(Dinar, SD)

인터넷도메인 .sd

홈페이지 www.sudan.net

 

 

역사

수단의 역사는 이집트 및 에티오피아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BC 3,000년경 이집트의 파라오는 수단의 북부지역인 누비아를 침략하였고, 중왕국(中王國:BC 22세기∼BC 18세기) 시대와 신왕국(新王國:BC 16세기∼BC 11세기) 시대에도 수단을 정복하여 누비아 지방에 이집트 문화를 침투시켰다. 그후 BC 8세기 전반에는 누비아를 중심으로 강력한 노예국가가 형성되어 1∼3세기 사이에 전성기를 맞이하였으나 3세기에 에티오피아 유목민들의 침략으로 멸망하였다. 6세기에는 그리스도교가 유입되었으나 7세기 중반에 아랍인들의 이민이 시작된 후 13∼15세기에는 그리스도교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이들 아랍인들은 원주민들과 뒤섞여 수단인을 형성하였는데 이들은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아랍어를 사용하였다.

 

1819∼1822년에는 당시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종속되어 있던 이집트에 다시 정복되었으며, 1870년대에는 이집트를 장악한 영국의 영향을 받기 시작하여 1877년부터 영국인 총독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881년, 자칭 ‘마흐디(正統者)’라는 이슬람교 지도자 무하마드 아마드 아브둘라가 영국과 이집트의 지배에 저항하여 1898년까지 독립투쟁을 벌였다. 1899년 수단은 영국-이집트공동통치협정으로 1955년까지 양국의 공동통치령이 되고, 앵글로이집트수단이라고 하였다.

 

1924년에 이집트군이 철수하고 수단군의 반영(反英) 반란이 일어났는데, 영국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간접 통치체제를 도입하였으며 남부에 대해서는 분할 통치정책을 실시하였다. 1936년에는 이집트군이 다시 진주(進駐)하여 이탈리아의 에티오피아 침략에 대비하였다. 1943년부터 영국은 통치방법을 근대화하고, 1948년에 입법의회를 설치하였다. 이집트혁명 후인 1953년에 이집트는 수단인의 자결권을 인정하고 이집트·영국 협정으로 양국군은 철수하였다.

 

1954년 1월 총선거를 거쳐 자치정부가 수립되고, 1955년 12월에 의회가 독립을 선언, 이듬해 1월 1일에 수단공화국으로서 독립하였으며, 뒤이어 AL(Arab League:아랍연맹)과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의 가맹국이 되었다. 그러나 정당간의 심한 대립으로 정치적 혼란은 가중되었고, 1958년 11월에 장군 이브라힘 아부드가 쿠데타를 일으켜 군사정권을 수립하였고, 1964년에는 하르툼 대학생들을 선두로 하는 군정반대운동이 폭발하여 아부드 군사정권이 무너졌다.

 

그후 수립된 민간정부는 매우 불안정하였고, 1969년 자팔 누메이리의 쿠데타로 다시 군사정권이 들어섰다가 1985년 대통령 누메이리의 외유 중 국방장관 다하브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과도군사위원회 의장에 취임하였으며, 1989년에는 준장 오마르 하산 알 바시르(Umar Hasan Ahmad al-Bashir)가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였다. 1990년 반정부 조직인 수단 인민해방군(SPLA)과의 내전이 격화되었으며, 1991년 바시르 정권은 7년에 걸친 내전 종결을 위해 연방제 이행을 선포하였다. 1993년 10월 혁명위원회는 기구의 자진 해산과 의장 바시르의 대통령 취임을 결의하였다.

 

바시르 대통령은 1996년 3월 야당의 선거 거부와 함께 실시된 대통령선거에서 75.7%의 지지로 당선되었고, 1999년 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국회를 해산했다. 2000년 12월 주요 야당의 거부 아래 실시된 대통령 및 국민의회 의원 선거에서 대통령 바시르가 86% 이상의 득표로 다시 선출되었다. 수단 내전 종식을 위한 노력이 있었으나 2003년 다르푸르(Darfur) 사태가 발생하면서 평화를 향한 노력은 큰 시련에 봉착하게 되었다. 다르푸르 사태는 북부의 친정부 아랍계 세력과 남부 아프리카 주민 사이의 갈등 속에서 4년 동안 최소 20만 명이 숨지고, 2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발생시켰다. 2005년 1월 9일 포괄적 평화협정이 체결됨으로써 남북내전은 형식적으로는 종식을 맞게 되었다.

 

문화

수단은 고대 이집트시대 이전부터 찬란한 문명과 역사를 꽃 피웠고 중세의 암흑기와 근대에는 영국의 식민지 통치를 거쳐 지금은 아랍과 아프리카 토착문화가 공존하고 있다. 수단 문화의 특징은 다양성으로서, 각기 주요 종족들은 자기들만의 문화표현 방식을 갖고 있고 언어가 다양해 출간과 구전된 문학이 아주 많다. 수단의 주요 언어로는 아랍어이고, 때문에 문학 작품은 대부분이 아랍어로 쓰여 있다. 20세기 들어 구전문학과 출간된 문학의 조화가 수단 사회의 전통과 서구화를 구획짓는 역할을 하였다. 수단의 잘 알려진 소설가 타야브 사리흐의 책은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었다.

 

시 또한 문학의 표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현대 시(詩)는 아프리카와 아랍의 문화 유산을 잘 표현하고 있다. 회화, 조각, 도자기 같은 미술은 독특한 형태로 지역적으로 발전하였다. 20세기에 들어 도시 예술가들의 영향으로 더욱 독특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순수적용미술대학은 수단의 미술에 많은 공헌을 하여, 사진작가 등은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는 축구이다. 이슬람교의 숭배대상인 무함마드 탄생일은 대부분의 이슬람교도에게 중요한 행사로서 며칠 동안 축제가 이어지며, 남부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인들에게는 크리스마스가 큰 축제이다.

 

 

 

정치

수단의 국체는 공화정이며 정부형태는 대통령제이다. 행정부의 수반인 대통령은 1989년 쿠데타로 집권하여 2002년 대선 승리로 재집권에 성공한 오마르 하산 아마드 알 바시르(Umar Hasan Ahmad al-Bashir)이다. 대통령은 수상도 겸하고 있으며, 대통령 아래에 두 명의 부통령을 두고 있다. 수단은 대의기구로 양원제를 채택하고 있는데, 하원에 해당하는 국민회의에 450석, 상원에 해당하는 연방의회에 50석이 배당되어 있고, 임기는 모두 6년이다. 주요 정당으로 여당인 국민회의당(NAP; National Assembly Party)과 민족민주연합(움마당 등 10개 야당연합)이 있는데 2000년 12월 총선 결과 국민회의당이 355석을 얻어 일당독재의 발판을 마련했다. 사법기관에는 최고재판소, 고등법원, 지방법원, 특별군사 재판소, 종교재판소가 있다.

 

정규군은 징병제를 통해 충당되는데, 18세~30세 남자에게 2년 간의 병역의무가 주어진다(2006년 기준). 2005년 기준으로 정규군은 총 119,500명인데, 이 중 육군이 115,000명, 해군이 1,500명, 공군이 3,000명을 차지하고 있다. 이외에 1989년 창설된 민병대가 있는데 국내 40개소에 훈련캠프를 설치하고 군사훈련 실시하고 있으며 현재 7만 명 정도가 참가하고 있다. 남부반군(SPLA)의 총 병력 수는 5만 명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군사동맹으로 수단-리비아 군사협약(1985년), 수단-이란 군사 및 재정지원협정(1992년)이 있다.

 

1970년대 초기에 한때 악화되었던 대(對)이집트 관계는 1973년 10월의 제4차 중동전쟁을 계기로 급속히 회복되어 1976년 7월에는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였다. 또 긴장상태가 계속되던 리비아 및 에티오피아와는 1977년 가을 이후 관계 정상화를 꾀하다가 1978년 초 마침내 양국과 화해를 이루었으며, 1978년 7월에는 수도 하르툼에서 OAU(Organization of African Unity:아프리카통일기구) 수뇌회의가 개최되었다.

 

1985년 4년간 단절되었던 리비아와의 외교를 재개하였으며, 1987년 소련과 3년 기한의 무역협정을 체결하였다. 바시르 정권의 인권 탄압으로 미국을 비롯한 서방권과의 외교관계는 냉각 상태이다. 1999년 초 UN(United Nations:국제연합)은 남부주민 500만 명 중 260만 명이 아사(餓死)에 직면한 것으로 추산했다.

 

미국과는 1998년 8월 탄자니아 주재 미국대사관 폭파사건 용의자 중 수단인이 포함된 사실과 관련하여 미국이 수단 주재 미국대사관을 폐쇄하였고 8월 20일에 화학무기 생산시설로 판단되는 공장을 미사일 공격하였다. 2000년에 미국 대통령 특사가 수단을 방문하고 미국대사관 비상주 대리대사가 부임하는 등 양국간 화해 노력 움직임이 있으나, 양국관계 정상화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2007년 9월 다르푸르 사태를 종식시키기 위해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수단을 방문했으며, 조속한 평화유지군 파병, 수단 정부와 반군 간 평화회담, 원조 정책을 뼈대로 하는 3단계 안을 제시하였다.

 

 

경제

2007년(추정치) 기준으로, 수단은 GDP 가운데 농업이 31.5%, 제조업이 35.7%, 서비스 기타 32.8%이며, 농업과 목축이 경제의 주축을 이룬다(80% 정도의 노동력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고 농업노동의 대부분은 면화재배에 투입된다). 누메이리 정권이 안정되고 1973년의 석유위기 이후 오일달러가 유입됨에 따라 수단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1998년 IMF의 지원을 받아 경제개혁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최근 빠른 경제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남부 지역의 내전과 주변국으로부터의 난민, 거액의 외채 등이 경제 성장의 걸림돌이다. 정부는 세제개선과 환율조정 등의 개혁조치, 아랍통화기금, 회교개발은행 등과 외채협상에 역점을 두고 있다. 외국인 투자가 어려워지고 내전의 여파로 국방비 지출이 악재로 작용하였다. 1999년 3월 고유통화보유와 통화가치회복을 위해 영국식민지시절부터 사용해오던 수단 파운드를 없애고 디나르를 도입하였으나, 2007년 1월 다시 새로운 수단 파운드를 도입하였다.

 

2007년(추정치) GDP 실질성장률은 12.8%로 매우 높았고, 실업율은 18.7%로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7년(추정치) 수출은 91억 5,600만 달러, 수입은 82억 6,200만 달러이고 주요 수출품은 원유, 석유제품, 원면, 땅콩이며, 주요 수입품은 식료품, 공산품, 수송장비 등이다. 주요 수출대상국은 일본(48%), 중국(31%), 한국(3.8%) 등이며(2006년), 주요 수입대상국은 중국(17.7%), 사우디 아라비아(9%), 아랍에미리트(5.6%), 이집트(5.2%), 독일(5.1%), 인도(4.5%) 등이다(2006년).

 

나일강 수계(水系)의 내륙항로가 예로부터 중요한 교통로였으며, 총 연장 4,068km를 자랑한다(2006년). 도로 총 길이는 약 1만 1,900km(4,320km는 포장도로, 1999년 기준), 철도는 5,978km(2006년)이다. 포장 활주로를 갖춘 공항이 16개 있으며, 홍해 연안의 포트 수단에는 근대적인 항만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수단은 남북한 동시 수교의 외교정책을 쓰고 있으며, 한국과는 1977년 4월 13일부터, 북한과는 1969년 6월 21일부터 수교하였다. 이에 따라 수단에는 남북한의 상주공관이 설치되어 있으며 한국과는 무역 및 경제기술협력협정(1978년), 문화협정(1979년), 항공협정 가서명(1991년), 의료협력 협정(1993년), 체육.청소년 교류 협정(2004년), 이중과세방지 협정(2004년) 등이 체결되었다. 1983년에는 대통령 누메이리, 1996년에는 외무장관 모하메드 타하, 2004년에는 외무장관 이스마일이 방한하였다.

 

2004년 기준으로, 대(對)한국 수입은 9,987만 달러, 수출은 1억 7,953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아라비아 고무와 섬유제품이며, 수입품은 직물류와 폴리부타티엔 등이다. 한국인 교민은 없으며 체류자만 83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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