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 20080474

작성일 : 13.01.07 | 조회수 : 2355

제목 : 아랍에미레이트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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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일반개항

공식 명칭은 아랍에미리트연방(United Arab Emirates)이다. 동쪽으로 오만, 남서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 북서쪽으로 카타르와 접하고 북쪽으로는 페르시아만(灣)에 면한다. 서쪽으로부터 차례로 아부다비(Abu Dhabi), 두바이(Dubai), 샤르자(Sharjah), 아지만(Ajman), 움알카이와인(Umm al-Qaiwain), 라스알카이마(Ras al-Khaimah), 푸자이라(Fujairah)의 7개 토후국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래 9개 토후국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1971년 카타르와 바레인이 분리 독립했다. 라스알카이마는 1972년 2월에 연합국의 일원이 되면서 아랍에미리트는 현재와 같은 연방 구성을 갖추게 되었다.

 

 

위치 아라비아 반도 동부

경위도 동경 54° 00

면적 83600

해안선 1318

시간대 UTC+4

수도 아부다비

종족구성 남아시아인(60.5%), 아랍인(23%), 에미리아인(16.5%)

공용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교 (96%), 그리스도교 및 힌두교 및 기타 (4%)

건국일 1971년 12월 02일

국가원수/국무총리 칼리파(Khalifa bin Zayed Al-Nahyan) 대통령(04.11.3 취임)

국제전화 +971

정체 연방공화제

통화 아랍에미리트 디르함(Dirham)

인터넷도메인 .ae

홈페이지 http://www.government.ae/gov

 

 

 

역사

아랍에미리트의 카와심족(族)은 해양민족으로 예로부터 어업과 해운업에 종사해 왔다. 16세기에 포르투갈이 이 나라의 해안에 첫 발을 내딛였으며, 17세기에는 네덜란드와 영국 해군이 인도양의 제해권을 두고 다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 바다를 중심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주민들은 해상에서의 전통적인 생업에 종사할 수 없어 해적으로 전락하였다. 19세기 초에는 와하비(사우디아라비아의 모체)의 보호 아래 유럽 세력에 대항하는 해적행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되었다. 영국은 1806년부터 무력으로 해적을 격파하기 시작하였으며, 1818년에는 해적의 본거지 라스알카이마항(港)과 당시 ‘해적해안’이라고 불리던 연안 항구들을 정복하였다. 1820년에는 각 토후국의 수장(首長)들과 평화조약을 맺어 해적행위와 노예무역을 금지하였다.

 

그러나 평화조약이 이행되지 않자 영국은 1835년에 6개월 기한으로 해상휴전협정을 체결하였으며, 그후 다시 기한을 갱신하여 이 지역을 ‘휴전해안’이라 불렀다. 결국 협정은 1853년에 이르러서야 항구적인 해상휴전조약으로 바뀌었다. 이 조약으로 각 토후국들은 영국의 실질적인 보호국이 되었지만, 영국은 토후국끼리의 육상교전에는 간섭하지 않았기 때문에 1820년에 5개국이었던 토후국들은 흥망과 집산을 되풀이하였다. 1892년에는 영국 이외 나라들과의 자유로운 교섭이 금지되었고, 이로 인해 아랍의 다른 지역과의 관계가 약화되면서 아랍에미리트는 영국령 인도와 경제적으로 더욱 밀접한 관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독립이 결정되던 해인 1948년에는 이 지역에서 처음으로 석유가 발견되었다. 이에 영국은 1952년 이 지역에 자국 장교가 지휘하는 군대를 창설하고 연방평의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석유 산출로 부유해지기를 꿈꾸는 토후국의 수장들은 정치적 통합에는 관심이 없었다. 1955년 아부다비와 사우디아라비아 사이에 일어난 부라이미 오아시스의 영유권 분쟁은 석유에 얽힌 영토분쟁이었다. 1958년에 아부다비의 석유개발이 시작되었으며, 1965년에는 영국이 바레인·카타르·아부다비에게 출자하도록 하여 개발기금을 창설하였다.

 

1965년 아랍연맹에 아랍에미리트 문제 상임위원회가 설치되었으며, 당시에는 바레인과 카타르도 포함시킨 연합국이 구상되었다. 1966년에는 ‘연합국 헌법제정 위원회’가 발족하였다. 영국은 아덴을 대신할 군사기지를 샤르자에 설치하였으나 1968년 초에는 이 지역의 군대를 1971년 말까지 철수하겠다고 발표하고, 그때까지 연합국을 실현시킬 방침을 정하였다. 같은 해에 바레인과 카타르를 포함한 9개 토후국의 수장이 참석한 첫 번째 회의가 개최되었으나 상호불신과 대립으로 인하여 원활한 교섭 진전이 없었으며, 결국 1971년 여름 바레인과 카타르가 단독으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해 11월 말 영국군이 철수하자 때를 같이하여 이란이 호르무즈해협의 샤르자와 라스알카이마령의 작은 섬을 점령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란과의 협정에서 샤르자는 연합국에 참여할 뜻을 밝혔으나, 라스알카이마는 거부하였다. 따라서 라스알카이마를 제외한 6개 토후국(Abu Dhabi, Ajman, Fujairah, Sharjah, Dubai, Umm al-Qaiwain)만으로 구성된 아랍에미리트가 1971년 12월에 탄생했다. 라스알카이마(Ras Al Khaimah)는 얼마 뒤인 1972년 2월에 연합국의 일원이 되었다.

 

문화

아랍에미리트의 종교는 이슬람교(수니파 80%, 시아파 20%)이며, 여러 생활관습들은 이슬람계율을 따르고 있다. 이 지역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코란을 읽으며 자란다. 주요 종교의식으로는 하지가 있는데 매년 이슬람력으로 12월 8일-13일까지 5일간을 이슬람의 성지인 메카를 순례하는 의식이다. 이 때문에 나라 전체는 이 시기가 휴가 기간이 된다. 또 매년 9월 한달 간은 일출 후부터 일몰 전까지 음식은 물론 물, 음료, 담배 등을 일체 금식하며 특별예배를 보는 라마단 행사가 진행된다. 라마단이 끝난 후 3일간 지속되는 이슬람의 제2대 명절인 이둘휘트르 역시 중요한 의식으로 여겨지며, 아랍에미리트에서는 이 기간을 국가 공휴일로 지정하여 친지와 이웃을 방문할 수 있게 하였다.

아랍에미리트에서는 결혼 및 이혼의 풍습 역시 이슬람법에서 정한 계율을 따르고 있다. 결혼은 의무사항이며, 이혼도 법적으로 허용된다. 배우자 선택에서는 4촌간에 청혼할 수도 있어 근친결혼이 관습화되어 있고, 또 4촌간 결혼에 우선권이 부여되어 있다. 씨족이 다른 사람간에도 양가의 합의와 결혼 당사자간의 동의만 있으면 결혼이 가능하다. 코란에는 1부 4처까지 허용하고 있으나, 지금은 일부일체제로 변모하고 있고, 약혼 합의시 신랑이 신부에게 주는 마하르라는 결혼지참금 제도는 아직도 관습으로 남아 있다. 이것은 신랑의 보호자가 신부의 보호자를 통해 신부에게 지불하는 것으로, 현금 또는 현물로 전해진다.

의복은 전통 아랍복장을 입는데, 남성은 기본적인 복장으로 디슈다샤, 칸두라를 가정에서나 간단히 외출할 때 입고 여성은 몸 전체를 가리는 검은색의 아바야를 입는다. 아랍에미리트 사람들은 영화를 매우 즐기며, 낙타와 말 경주는 예전부터 인기 있는 스포츠였다. 최근에는 자동차경주와 사막의 모래 위에서 타는 스키가 인기를 얻어 세계적으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정치

1971년 12월 독립과 동시에 체결된 잠정헌법에 따르면, 아랍에미리트 연방 최고기관은 각 토후국 수장들로 이루어진 연방최고평의회(수장회의)이다. 모든 사안에 대한 결정은 5명 이상의 찬성으로 이루어지며, 가장 큰 토후국인 아부다비와 두바이의 군주는 거부권을 가진다. 각 토후국은 자치권을 가지고 있어 내부문제에 대해서는 해당 토후국 군주에게 모든 권한이 있다. 1996년 5월 연방최고평의회는 정식헌법을 채택하고 아부다비를 연방수도로 공식 확정하는 등 독립 25주년을 맞아 연방으로서 점차 안정화되어가는 추세이다.

연방 대통령과 부통령은 토후국 군주들 중에서 선출하고 대통령은 총리와 내각을 지명한다. 1971년 이후 대통령은 아부다비의 자이드 국왕(Shaikh Zayed) 이, 부통령은 두바이의 라시드 국왕이 계속 맡고 있었으나 2004년 11월 2일 자이드 국왕이 사망하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하였고 2006년 현재 대통령은 셰이크 칼리파 빈 자에드 알 나흐얀이다. 의회는 각 국왕이 임명한 의원들로 구성되며, 임기는 2년이다. 의원수는 토후국별로 정해져 있는데 아부다비 8명, 두바이 8명, 샤르자 6명, 라스알카이마 6명, 아지만 4명, 푸자이라 4명, 움알카이와인 4명으로 총 40명이다. 정당은 없으며, 사법권은 연방대법원에 있다. 단, 종교관련사건은 샤르아 법원에서 헌법이 아닌 이슬람 계율을 근거로 재판한다.

 

경제

아랍에미리트는 전형적인 아랍 산유국형의 경제구조로, 원유의 생산 및 수출에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원유 산출량은 1972년에는 5811만t이었으나 1997년에 9872만t으로 크게 증가하였다. 이 중 아부다비(Abu Dhabi)가 8136만t, 두바이(Dubai)가 1600만t, 샤르자(Sharja)가 136만t을 생산하였고, 라스알카이마(Ras al-Khaymah)에서도 해저유전이 발견되었다. 천연가스의 산출량은 1973년의 17억 3200만㎥를 고비로 점차 감소하는 추세에 있다.

 

아랍에미리트의 원유 매장량은 981억 배럴로 전세계 매장량의 11%(세계 3위)를 차지하며 천연가스는 전세계 매장량의 5%로 세계 4위 매장국에 꼽힌다. 원유 생산량은 2000년 6월 현재 OPEC(Organization of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석유수출국기구) 쿼터 기준 일일생산량 220만 배럴로서 OPEC 산유량의 약 8.7%에 달한다. 원유 등 관련부문의 생산·수출이 국내총생산의 약 30%, 총수출의 약 45%(1999)를 차지한다. 따라서 아랍에미리트의 경제는 원유의 생산 및 국제유가 수준에 크게 좌우되고 있는 실정이다.

각 토후국은 석유 산출이 지속되는 시기 안에 공업화를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공업 발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특히 기간산업의 확충 및 제조업의 육성, 무역 및 관광 등의 서비스 산업의 육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부다비는 철강공장·시멘트 공장을 비롯하여 각종 공장을 건설, 가동 중이며, 두바이는 세계 최대의 선박수리용 도크, 알루미늄 제련공장, 천연가스 액화공장, 시멘트 공장 등을 가동 중이다. 이밖에 석유가 산출되지 않는 다른 토후국은 농업·수산업의 개발과 관광휴양지로서의 발전을 꾀하고 있다.

두바이의 석유 매장량은 40억 배럴로 아부다비(922억 배럴) 등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또한 아랍지역에서는 '석유 없이 성장도 없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두바이의 재정 중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5%에 불과하다. 그나마 2011년에는 0%를 목표로 하고 있다. 석유에 기대지 않고도 두바이는 연평균 GDP 성장률이 10퍼센트에 이르는 고속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석유고갈에 대비해 일찌감치부터 준비한 중동의 비즈니스 허브 전략이다. 두바이는 이미 1970년대부터 석유의존 경제에서 벗어날 대안적인 발전전략을 모색했다.

1979년에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인공 항구인 제벨알리(Jebel Ali)항을 건설했으며, 1985년 항구 주변에 중동 최초의 자유무역 지대를 만들고, 국영 항공사인 아랍에미리트항공를 설립하는 등 국제무역을 위한 기반을 닦아 왔다. 제벨 알리 자유무역지대에 각종 특혜를 부여하여 제조업 부문에 외국인 투자유치를 강화한 결과 1999년 6월에 이르러서는 70개국 1,500여 개 업체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주요 수출국은 일본, 인도, 한국, 오만, 이란이고, 수입국은 일본, 미국, 영국, 이탈리아, 독일, 한국 등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아랍에미리트는 1980년 6월 한국과 정식으로 수교한 이래 경제교류가 활발한 편이다. 1987년에는 서울 주재 아랍에미리트 대사관이 개설되었고, 1988년 서울에서 열린 제24회 올림픽경기대회에는 18명의 선수단이 참여하는 등 문화 체육 교류도 활발하다. 1994년 6월에는 연방평의회 의장 아브둘라 무헤이르비, 2000년 6월에는 석유광물자원부 장관 알 나스리, 2001년 9월에는 교육청소년부 장관 알 샤라한이 우리나라를 방한하였다. 한국에서는 1981년 동력자원부 장관, 1982년 건설부 장관, 1999년에는 산업자원부 장관, 2001년에는 산업자원부 장관과 국무총리 등이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하였다. 2004년에는 과학기술부 차관이 방문하여 국내 원자력 기술 SMART 기술 협력 MOU를 체결하였으며, 2006년 5월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방문하였다. 이는 중동지역과의 향후 활발한 경제 협력을 예고하고 있다.

양국간에 체결된 협정으로는 항공협정(1991년), 투자보장협정(2001년)이 있다. 주요 수출품은 원유, 화학제품, 철강, 금속제품 등이고, 수입품은 섬유류, 전자 및 전기기기, 1차상품, 기계류 등이다. 아랍에미리트는 한국 제2위의 원유 수입국이자 중동지역 최대의 수출시장이다. 한국에 대한 아랍에미리트의 총수출 중 원유는 약 80%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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