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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07 | 조회수 : 678

제목 : 이라크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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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일반개항

정식명칭은 이라크공화국(Republic of Iraq)이다. 아라비아반도 북동부에 위치하여 북쪽으로 터키, 서쪽으로 시리아·요르단, 동쪽으로 이란, 남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에 접하며, 페르시아만(灣)의 가장 안쪽에 면한다. 2007년까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주둔하고 있다. 국명은 수메리아 시대의 도시 우루크(Uruk)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하고, 아람어로 '강기슭 지역'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도 한다. 인류 최고(最古)인 수메르 문명의 발상지로서 수메르 문명은 동쪽으로 인더스 유역, 서쪽으로 아나톨리아·시리아·이집트와 행하였던 원격지무역에 의하여 오리엔트 각지에 전파되었다. 행정구역은 18개 주(州,muhafazah)로 이루어져 있다.

 

 

 

위치 아라비아 반도 북동부

경위도 동경 44° 00

면적 437072

해안선 58

시간대 UTC+3

수도 바그다드(Baghdad)

종족구성 아랍인(75%), 쿠르드인(15-20%), 터키인(5-10%), 아시리아인

공용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교 (97%) , 그리스도교 및 기타 (3%)

건국일 1932년 10월 3일

국가원수/국무총리 탈라바니(Jalal Talabani) 대통령(05.4)

국제전화 +964

정체 민주공화제

통화 이라크 디나르(dinar)

인터넷도메인 .iq

홈페이지 http://www.cabinet.iq/

 

 

역사

이라크의 역사는 메소포타미아문명사이다.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이 이루어낸 메소포타미아 하천문명은 BC 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 최고의 문명이다. 수메르·바빌로니아·아시리아 등의 고대국가가 이 지역에서 흥기하여 멸망하였으며, 아케메네스왕조·페르시아·알렉산드로스 대왕·사산왕조 페르시아 등과 같은 주변 세력에 의하여 외부의 침입과 정복도 많이 받았다. 이에 따라 선사시대를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7세기 중엽에는 아라비아반도에 출현한 이슬람교도가 침입하여 그 세력 하에 들어갔지만 8세기에 시작된 아바스왕조 시대에는 쿠파, 바그다드 등이 수도(首都)가 되어 이슬람 문화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11세기 중기 이후에는 셀주크트루크, 몽골, 티무르의 지배를 받았으며, 1534년부터 제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약 400년간은 터키에서 발흥한 오스만투르크 제국(帝國)의 속주(屬州)가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영국 침공으로 1920년에 영국의 위임통치령이 되었는데 이에 반항하는 독립운동이 나타나 1932년 메카 출신 하심가(家)의 파이살이 독립 왕국을 이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친(親)독일정책을 취하였으며, 대전 후 1958년 7월 장군 카셈이 이끄는 청년장교들이 왕정을 타도하고 공화정을 수립하였다. 이를 이라크혁명이라고 부른다. 이로부터 2003년까지 강한 군사 독재정권이 유지되었는데 그 정권의 마지막이 사담 후세인이었다. 독재정권은 이슬람 사회주의 노선을 따르는 바트당 1당에 의하여 1968년 이후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바트당 집권 아래 국가최고기관은 혁명평의회(RCC)로서 8인으로 구성되며, 국가원수인 대통령은 혁명평의회에서 선출, 당서기장, 혁명평의회 의장, 군 총사령관을 겸임하였다. 1979년 7월 16일 대통령 A.H.바크르가 사임하고, 후임에 사담 후세인이 선출되었다. 1980년 6월 총선이 실시되고, 7월 단원제 국민의회가 구성되었다.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구도 같은해 9월 총선을 실시하고 50명의 의원을 선출하였다.

 

대통령 후세인은 이란의 팔레비왕조가 붕괴되자 혼란을 틈타 1980년 9월 17일 이란 국경을 침입하였다. 이른바 이란- 이라크 전쟁은 아랍 맹주 자리를 놓고 벌인 한판 승부로서 아랍전통과 페르시아 전통의 대립이었다. 호메이니를 중심으로 하는 이란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쳐 8년간 전쟁을 벌이다가 1988년 8월 20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정전결의안을 수락하고 휴전하였다. 전쟁의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1989년 4월 제3차 총선에서 집권 바트당은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은 계속된 전쟁과 혼란에도 불구하고 후세인의 권력이 강화되었음을 의미한다. 1990년 7월 18일 혁명평의회가 마련한 헌법수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었으며 의회는 후세인을 종신 대통령으로 한다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후세인은 1995년 10월 실시된 국민투표 결과 100% 가까운 신임을 얻었다.

 

이라크는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전격 침공하여 점령하고 자국의 19번째 주(州)로 편입하였다. 이에 1991년 1월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군이 대대적 공습과 지상전을 전개해 이라크는 막대한 피해를 입은 채 쿠웨이트에서 철수하였다. 이를 걸프전쟁(Gulf War)이라고 한다. 전쟁 후 북부의 쿠르드족 자치구와 남부의 시아파 반군은 분리독립 움직임을 보였다. 1992년 5월 쿠르드족 자치구는 이라크와 별도의 정부를 출범시키기 위한 총선을 실시하였는데 선거 결과 쿠르드민주당(DPK:Kurdistan Democratic Party)과 쿠르드애국동맹(PUK:Patriotic Union of Kurdistan)이 각각 50석씩 차지하였다. 후세인은 쿠르드족에 대한 압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남부 시아파 반군에 대한 전면적 소탕작전을 개시하였다.

 

이에 미국을 비롯한 서방진영은 1992년 8월 북위 32도 이남의 이라크 영공을 비행금지구역으로 선포하고 1993년 1월 대대적 공습을 감행하였다. 1996년 9월 이라크 영내 남부 비행금지구역의 북쪽 한계선을 북위 33도로 확대, 공격을 감행, 이라크와 충돌하였다. 9월 13일 이라크의 비행금지구역 내 미국 및 서방진영의 비행기에 대한 공격을 중단함으로써 위기가 사라졌으며 이라크는 식량과 의약품 구입을 위한 원유 판매가 부분적으로 허용되어 이라크의 숨통이 트이기도 하였다. 1996년 3월 24일 의회선거 결과 집권당인 바트당(Bathists)이 160석, 무소속이 60석을 차지하였다. 2000년 3월 이라크 중앙정부의 지배에서 벗어난 북부 3개 쿠르드주를 제외한 이라크 전역에서 의회선거가 치러졌다.

 

유엔안전보장이사회(UNSC)는 이라크에게 대량살상무기 및 미사일 사찰을 요구하고 이에 응하지 않자, 2003년 3월 미국과 영국은 대량살상무기 생산 금지 명분으로 이라크를 침입, 사담후세인을 축출하였다. 연합군이 주둔하는 가운데 UNSC의 위임통치는 2004년 6월 28일까지 계속되고 이후 이라크잠정정부에 이양되었다. 이라크를 위한 이행행정법(TAL) 아래에서 275명의 이행국회(Transitional National Assembly,TNA)가 2005년 1월 30일 구성되고 이행정부(Iraqi Transitional Government, ITG)가 조직되었다. 이행국회 (TNA)에 의하여 작성된 이라크헌법은 2005년 10월 국민투표에서 승인되었다. 2005년 12월 15일 총선이 실시되어 국회(Council of Representatives, CoR)가 구성되었으며 2006년 5월 20일 정부가 출범하였다.

 

 

 

 

문화

오랜 역사를 가졌기 때문에 유적, 사적 등이 풍부하며 그중에서 바빌론의 유적은 바그다드에서 남쪽으로 약 85km 떨어진 유프라테스강 연안에 있으며, 20세기 초의 발굴에 의하여 신바빌로니아시대 전성기(BC 7세기)의 신전, 성탑, 왕궁, 성벽 등의 유구(遺構)가 밝혀졌다. 메소포타미아의 남부에 있는 수메르인(人)의 고대 도시 우르의 유적과 북부의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였던 니네베의 유적들도 산재하여 고고학의 보고이다.

 

사산왕조 페르시아의 수도였던 크테시폰은 바그다드 남동쪽 약 30km에 위치하고 있으며 AD 6세기에 호슬로 1세에 의하여 건조된 왕궁의 돔(dome) 일부가 아직도 남아 있다. 카르발라에는 AD 7세기에 이곳에서 순교한 이슬람교 시아파(派)의 시조 알리의 아들 후세인 일가의 묘소가 있어 그 남쪽 나자프에 있는 알리의 묘소와 같이 시아파의 성지로 되어 있다. 바그다드 북쪽 120km에 위치한 사마라에는 아바스왕조의 AD 9세기 후기에 건조된 나선상(狀)의 미날레트(이슬람사원의 첨탑)가 남아 있다.

 

이라크인 문학과 예술생활은 많이 바뀌어 발레와 극장, 현대 미술 등이 유행하고 있다. 문학 중 시(詩)가 많이 발전하여 아랍어(語)를 쓰는 나라에 많이 알려졌다. 이라크 문화정보부는 가죽제품, 구리제품, 카페트 제조와 같은 전통 공예와 예술을 보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바그다드에는 많은 미술관과 국립도서관, 8~9세기에 건립된 브바시드 건축물이 있다

 

 

정치

이라크의 정치체제는 2005년 10월 15일 비준된 헌법에 따르면 의회민주주의 공화국이다. 2005년 4월 6일 대통령 위원회에서 선출된 대통령은 탈라바니(Jalal TALABANI)이다. 2005년 12월 15일 총선에서 275명의 하원의원이 선출되었으며 상원의원은 미정이다. 정당별 의석 분포를 보면 통합이라크연맹 (Unified Iraqi Alliance) 128석, 쿠르드연맹 (Kurdistan Alliance) 53석, 타와푸크연합(Tawafuq Coalition) 44석, 이라크민족당 (Iraqi National List) 25석, 이라크전선 (Iraqi Front for National Dialogue) 11석, 기타 14석 등이며 2006년 5월 20일 누리알말키(Nuri al-MALIKI)가 수상으로 선출되어 오늘에 이른다. 대통령위원회에서 수상, 부수상 이외에 37명의 각료를 지명하였다. 이라크 헌법은 연방법원, 고등법원, 연방대법원, 연방 법원 (Federal Court of Cassation), 검찰청 (Public Prosecution Department) 등을 규정해 놓고 있다. 이라크의 군사비 지출은 오만,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으며 GDP 대비 8.6% (2006년)이다. 특별부대를 포함하여 육·해·공군을 보유하고 있지만 미국 등 다국적군의 도움을 받고 있다.

 

 

 

 

경제

이라크의 1인당 GDP는 1900달러, 공식환율에 따른 GDP는 406억 달러(2006년 추산)이다. 산업별 구성 비율을 보면 농업 7.3%, 공업 66.6%, 서비스업 26.1% (2004년 추산)이다. 취업 인구의 80%를 점유하는 농업은 건조기후에 속하여 경지가 인구를 부양할 만큼 충분하지 못하고 지난 몇 년간의 흉작으로 식량위기에 직면해 있다. 연간 400mm 이상의 강수량을 가진 북부지역에서는 강수에만 의존하는 천수경작(天水耕作)만이 가능하지만, 주요한 농업 지역인 메소포타미아평원에서는 하천의 자연수나 양수에 의존한 관개농업이 행해지고 있다. 겨울철 농작물로는 밀, 보리, 아마, 두류(豆類), 여름철 농작물로는 쌀, 목화, 잎담배, 야채 등이 재배되며 메소포타미아의 하류지역에서는 대추야자가 재배되는데 그 열매는 주요 수출품이다.

 

이라크의 주요한 광물자원은 석유와 천연가스이다. 석유매장량이 1125억 배럴(2006년 추산)로서 사우디아라비아, 캐나다, 이란 다음으로 세계 제4위이며 유전은 주로 북서부 지역에 분포해 있다. 석유의 채굴은 1927년 북부의 키르쿠크 유전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외에 모술 부근의 아인자라 유전, 바스라 근방의 즈바이르 유전이 개발되었다. 석유는 파이프라인으로 지중해 연안의 트리폴리(레바논), 비니아스(시리아)로 송유되는 외에 바스라에서도 수출된다.

 

석유개발에서는 영국,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등의 자본으로 이루어진 이라크석유회사(IPC)와 그 관련회사가 국토의 거의 전역의 이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1961년에 이권지역의 99% 이상을 정부가 몰수하고, 1964년에는 이라크국영석유회사(INOC)를 설립하는 등 자주적인 개발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다시 1972년에는 이라크석유회사의 국유화를 선언하였다. 2006년 1일 생산량은 220만 배럴이다. 공업은 낙후된 편이나 재래방식의 식품가공, 직물, 담배, 벽돌 등의 공업에 이어 시멘트, 석유정제, 석유화학, 철강, 기계 등의 근대공업도 개발되었다. 석유 이권에 의한 수입을 재원으로 한 국토 개발 사업으로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수계(水系)의 치수, 수자원 개발사업이 다소 진전되었으며 농지개혁, 농업기계화 등 농업 근대화계획도 진행되고 있다.

 

이라크의 최대수출품은 석유로 수출총액의 약 99%를 차지하나, 기타 대추야자의 과실, 시멘트 등도 수출되고 있다. 2006년 수출액은 284.1억 달러이고 수입은 196.6억 달러이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러시아, 스위스, 중국, 프랑스, 영국, 이집트, 베트남 등이다. 이라크의 실업율은 30% (2005년 추산)에 이르고 물가 상승율이 53.2%에 이르러 정치 안정에 의한 경제 안정이 긴요하다. 외환보유고가 196.6억 달러이지만 대외채무액이 544.6억 달러에 이른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이라크는 북한과 1968년 정식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한국과는 1981년 영사 관계, 1989년 대사급 관계를 맺음으로써 남북 동시수교국이 되었다. 북한은 이란-이라크전쟁 당시 이란을 지원함으로써 1980년 단교조치되었다. 한국과는 1977년 3월 건설업체의 중동 진출 이래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걸프전쟁 발발로 많은 업체가 철수하였다. 1991년 1월 주이라크 한국공관, 1994년 주한 이라크공관 잠정 폐쇄, 2003년 이라크대사관 재개설되었다. 1997년 외무장관 법률고문 알 사드, 1999년 산업차관 라세드가 방한하였다. 1994년 대한축구협회 회장 정몽준, 1999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사장 김은상, 2000년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사장 황두연, 2003년 한국군부대 파병에 따라 국회, 군 관계자 등이, 2004년 노무현대통령이 자이툰 부대를 방문하였다.

 

한국과는 1982년 뉴스협정, 1983년 무역 및 경제기술과학 협력협정, 1985년 항공협정, 1987년 문화협정, 외교 공관부지 교환협정, 1997년 뉴스교환 협정이 체결되었으며, 1977년 건설업체의 첫 진출 이후 한국의 중요한 해외건설시장이 되었다. 2006년 현재 대한(對韓) 수입 2296만 7000달러, 대한 수출 5억 850만 7000달러이다. 주요 수출품은 원유이며 수입품은 기계류, 철강제품, 고무제품, 알루미늄제품 등이다. 2003년 현재 교민 및 체류자는 1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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