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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3.01.07 | 조회수 : 652

제목 : 카타르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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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일반개항

정식명칭은 카타르국(State of Qatar)이다. 영토가 남쪽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국경을 접하고 나머지는 페르시아만(灣)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슬람 왕족에 의해 통치되는 중동 국가로서, 면적이 적고 인구도 80만 명인 작은 나라이지만 900조㎥의 천연가스와 152억 배럴의 원유 매장량을 자랑하는 자원 부국이자, 세계 최상위권에 속하는 경제부국이다. 국명은 2세기에 프톨레마이오스가 만든 지도에 '카타라'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을 정도로 유서가 깊다. 행정구역은 10개주(baladiyah)로 되어 있다.

 

 

위치 중동아시아 카타르반도

경위도 동경 51° 15

면적 11437

해안선 563

시간대 UTC+3

수도 도하(Doha)

종족구성 아랍인 (40%), 인도인 (18%), 파키스탄인 (18%), 이란인 (10%)

공용어 아랍어

종교 이슬람교 (95%)

건국일 1971년 09월 03일

국가원수/국무총리 하마드(Hamad bin khalifa Al-Thani) 국왕(95.6.27 즉위)

국제전화 +974

정체 입헌군주제

통화 카타르 리얄(Qatar riyal)

인터넷도메인 .qa

홈페이지 http://www.diwan.gov.qa/english/main_page_english

 

 

 

역사

AD 2세기 경 아랍세계가 표시된 지도에 '카트라'라는 지명이 표시된 것으로 보아 정주의 역사는 길다. 그후 주변의 왕조로부터 지배를 받았으며 오스만 투르크의 발흥과 함께 그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8세기에 카타르는 오늘날의 바레인 토후(土侯) 할리파가(家)의 영토였으나 투르크의 간섭을 받지 않기 위하여, 일찍이 인도양 무역의 중요성을 인식한 영국과 1868년에 우호조약을 체결하였으며, 이것이 계기가 되어 1916년 제1차세계대전에서 터키가 패배한 후 특별조약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71년 9월 독립할 때까지 영국이 카타르의 외교·군사권을 대행하였다.

 

1970년 4월 토후 아마드가 잠정헌법을 공포, 내각을 구성하여 완전독립의 체제를 정비하고 나서 1971년 9월 완전독립을 선포하였다. 토후 셰이크 아마드 빈 알리 알타니가 즉위하여 영국과의 특별조약을 폐기하고 대신 우호조약을 체결하였다. 그해 아랍연맹(Arab League:)과 UN에 가입하였다. 1972년 2월 아마드의 이란 여행 중 무혈 궁중 쿠데타가 일어나 추방되고 셰이크 할리파 빈 하마드 알타니 (Sheikh Khalifa bin Hamad Al-Thani)가 즉위하였고, 그의 아들 셰이크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Sheikh Hamad bin Khalifa Al-Thani)가 1995년 6월 27일 궁정쿠데타로가 국왕이 되었다. 2003년 8월 5일 3남인 왕세자를 폐취시키고 4남을 왕세자로 책봉하였다. 2005년 6월 1일 영구헌법안이 발효되어 오늘에 이른다. 석유수출국기구 (OPEC)의 회원국이다.

 

 

 

문화

카타르는 국민 거의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며, 와하비파에 속하는 수니파로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비슷한 엄격한 이슬람 생활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든 일상생활이 이슬람교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남녀간의 내외가 엄격하며, 사우디아라비아만큼 보수적은 아니지만 여성의 직장생활이나 대외활동 등에 있어서 사회참여가 없다.

 

카타르인들은 순박하며 인정이 많고 친화력이 있으나, 자존심이 강하고 배타적이며 개인적인 이해관계에 있어서는 양보를 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조급하게 굴지말라"라는 코란의 계율에 따라 느긋하여 서두르지 않고, 서두르는 것을 믿음을 없는 사람의 경박한 행위로 간주한다. 특히 카타르인들은 혈연 가족관계 및 체면·명예를 매우 중시하며 이에 따라 자신의 재산 및 부계혈통을 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카타르는 남녀 모두 전래의 아랍복장을 상용하고 있어 외국인 또는 여타 아랍권 국민과 구별 가능하다. 아랍복장은 공식복장이며, 남자의 경우 두건 콰트라(Qutra)와 긴 흰옷 미쉬타놈(Dishtanom, 겨울철에는 유색도 착용)을 입으며, 왕족과 정부 고위층은 소매없는 두루마기 알마바(Al-Abaah)를 달리 걸쳐 입는다. 여성의 경우 연령에 따라 상이하지만 성년 여자는 마스크 알바토울라(Al-Battoulah)와 검은천 보셰이(Bousheih)로 얼굴을 가리고 몸 전체를 감싸는 알다라(Al-Daraa)를 착용한다.

 

이슬람교의 교리, 문화, 관습의 전파를 위하여 종교부를 두고 있으며, 종교부는 이슬람 사원의 건립 및 관리·회사금의 관리, 이슬람교 문화 보급, 서적 발간 등을 맡고 있다. 카타르에서 지켜지는 중요한 종교행사로는 라마단(Ramadan : 이슬람력 라마단 1개월 간의 고행과 금식의 기간으로 양력으로는 매년 변동), 에이드 알아드하(Eid Al-Adha : 이슬람력 12월), 무하람(Muharram : 이슬람력 1월) 등이 있다. 그러나 서구문물의 도래로 모든 점에서 급속히 변화되고 있다. 서구문물의 도입과 해외여행, 백화점, 슈퍼마켓 등의 발달로 병원, 교육기관 일부 등 출입처가 따로 되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 남녀간의 구분이 완화되어 가고 있는 현상 등이 대표적이다.

 

 

정치

2003년 4월 29일 국민투표에 의하여(96% 찬성) 승인된 헌법(2005년 발효)에 따르면 카타르의 정체는 입헌군주국으로 국왕은 외국에 대하여 국가를 대표하고, 모든 법령을 비준·공포하며 각의를 주재한다. 또한 군통수권자 및 국반장관과 군사령관이 되며 법률에 따라 정부 각료와 자문위원을 임명한다.

 

1995년 무혈 쿠데타로 아버지를 축출하고 국왕이 된 아미르 하마드 빈 칼리파 알타니는 4남인 타밈 빈 하마드 빈 할리파 알 타니를 왕세자로 책봉하고, 2007년 하마드 빈 야심 빈 야비르 알타니를를 총리로 임명하였으며, 총 20명(2001년 교통통신부가 폐지되어 내각 구성원이 19명으로 축소)으로 구성된 정부각료회의를 운영하고 있다. 대법원이 추천하여 국왕이 임명하는 임기 3년의 일반 법원 외에 샤리아 특수법원이 있어으며 코란에 의거, 카타르인을 재판한다. 견제 차원에서 급진적인 개혁보다는 이슬람교 교리에 따른 점진적 사회개혁을 추구하고 있어 정국은 안정상태를 유지해오고 있다.

토후가의 집권 기반 강화를 꾀하는 동시에 국민의 국정 참여의식을 높이기 위하여 단원제 국회에 해당하는 자문회의를 두고 위원 35석(임기 4년) 중 일부는 일반 국민 중에서 임명하고 있다. 2005년 강화된 헌법에 따라 자문회의 의석은 45석으로 늘고 2/3를 2007년 선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국왕은 자문위원회에서 제정한 법률안 거부권과 해산권을 갖는다. 자문회의는 서구의 의회제도 개념은 아니며 정당 할동은 금지되어 있다. 또한 지방의회에 해당되는 중앙자치의회를 두어 건설, 토지구획, 도로, 산업, 상업 및 공공사업 관련 조직을 포함한 법률 집행에 있어서 감독 권한을 행사하도록 하였다. 중앙자치의회는 전국을 29개 선거구로 분할, 1999년과 2003년 두차례 실시되었으며 여성의원도 당선되었다.

 

외교 관계는 걸프 역내 각국(쿠웨이트, UAE, 오만, 바레인)과 보편적인 협조체제를 유지하면서 주변 이슬람 아랍국가와의 연대 강화에 힘쓰고 친서방 온건 노선을 견지하며 실리적 균형 외교를 취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국왕에 대한 역쿠데타 배후지원 등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가 악화되면서 사우디아라비아에 대한 이란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는 한편, 이스라엘과의 무역대표부 유지등 아랍문제에 있어서도 독자적 목소리를 내면서 다각적 독자적 외교 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경제

카타르의 1인당 국민소득은 29,800달러로 중동 산유국 중에서 아랍에미리트 다음으로 높다. 경제는 광공업이 주류를 이루며 산업별 GDP 구성 비율은 광공업 77.2% , 서비스업 22.6%, 농업0.1%(2006년)이다. 2006년 경제성장율은 7.1%, 실업율은 3.2%, 공공부채는 GDP의 23.6%로 건실한 편이며, 물가상승율은 7.2% (2006년)로 높은 편이다. 카타르 주민의 대다수는 목축·어업 또는 석유 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 나라 재정수입의 90% 이상은 석유수출에 의존하고 있다.

 

석유는 1939년 카타르석유(QPC)가 두한에서 발견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가 산유국으로 성장하였다. 넘치는 석유 수출 대금으로 경제 다양화 계획을 수립하고 착실히 추진한 결과 공업도 차차 활발해졌으며, 1965년 설립된 국영어업회사는 가공새우를 일본·미국에 수출하기도 하였다. 야채류는 자급이 가능하나 식량은 상당량을 수입한다. 농업생산물은 과일, 채소, 가축, 유제품, 쇠고기, 생선 등이다

 

2006년 기준 석유 생산은 GDP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천연가스는 가채 매장량 900조 입방 피트의 자원보유국으로 러시아 및 이란에 이은 세계 3위이다. 천연가스의 생산과 수출이 점차 늘고 있는 가운데 세계 1위의 LNG 단일 매장량에 힘입어 연간 7,700만톤의 생산 계획을 수립하였다. 천연가스의 석유 수출항 무사이드의 공업단지에는 시멘트공장을 비롯하여 에틸렌공장, 제분공장, 암모니아·요소비료 제조공장, 정유공장, 천연가스공장 등이 있다.

 

카타르 경제개발은 장기개발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매년 개발예산을 편성하여 프로젝트 중심으로 추진하는 특징이 있으며, 개발 분야 중에서 풍부한 석유 및 천연가스가 연료 또는 원료가 되는 석유화학 관련 공업을 중점 개발하고 있다. 석유의 생산·수출은 카타르 일반석유(QGPC : 1976년과 1977년에 걸쳐 카타르석유와 셸 석유를 국유화한 것)가 전담하고 있다.

 

제조업의 구조는 석유화학, 제철, 비료, 시멘트 등의 자본집약적 대기업과 건축자재, 가구, 식품가공 등의 영세소기업이 불균형적으로 공존하는 것이 특징이다. 최근에는 산업을 다변화시키기 위하여 카타르 투자자유지대, 카타르금융센터 등을 설치하여 외국 자본의 투자 유치에 앞서고 있다. 최근 고유가로 경제가 고속 성장하자 카타르는 세계최대의 가스수출국으로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걸프지역의 물류 및 산업 중심지로 부상한다는 국가 발전 전략을 추진 중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1971년 9월 카타르의 독립과 동시에 한국은 이를 승인, 1974년 4월 외교관계를 수립하였다. 1976년부터 한국의 건설업체가 진출하였고, 양국은 1984년 4월 경제기술무역협력에 관한 협정, 1999년 4월에 투자보장협정, 외무부간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2006년 기준 대한 수입 7.6억 달러, 대한 수출 69.85억 달러에 이른다. 대한 주요 수출품은 원유, 액화석유가스, 석유 화학제품이고 대한수입품은 자동차, 전자제품, 섬유제품, 철강제품, 타이어 및 튜브 등이다. 액화천연가스를 2005년 대비 35.4% 증가한 34억달러 정도 우리나라에수출하였고 원유 수출 또한 전년 대비 14.6% 증가한 32억 달러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질소비료, 부탄가스 등 석유 화학 제품의 수출 증가율이 전년대비 100% 이상 증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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