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 20083117

작성일 : 13.01.07 | 조회수 : 656

제목 : 우즈베키스탄 글쓴이 : 중동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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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일반개항

정식명칭은 우즈베키스탄공화국(Republic of Uzbekistan)이다. 동쪽으로 키르기스스탄과 타지키스탄, 남쪽으로 아프가니스탄, 남서쪽으로 투르크메니스탄, 북쪽으로는 카자흐스탄과 국경을 접한다. 북서 일부는 아랄해(海)에 면한다. 125개 민족이 공존하는 다민족국가이며, 국명은 '우즈베크인(人)의 나라'라는 뜻의 페르시아어(語)에서 유래했다. 행정구역은 1개 자치공화국(respublika), 12개주(viloya), 1개시(shahar)로 되어 있다.

 

위치 중앙 아시아 중부

경위도 동경 64° 00", 북위 41° 00"

면적 447400

시간대 UTC+5

수도 타슈켄트(Tashkent)

종족구성 우즈베크인 (80%), 러시아인 (5.5%), 타지키스탄인 (5%), 카자흐인 (3%), 카라칼팍인 (2.5%), 타타르인 (1.5%)

공용어 우즈베크어

종교 이슬람교 (88%), 동방정교 (9%)

건국일 1991년 9월 1일

국가원수/국무총리 카리모프(Islom KARIMOV) 대통령(1990.3.24 취임 2000.1.9 재선, 2007. 12. 23 삼선, 임기 7년)

국제전화 +998

정체 공화제

통화 숨(soum)

인터넷도메인 .uz

홈페이지 http://www.gov.uz

 

 

역사

우즈베키스탄은 4,000년 전에 이미 청동기 문화가 출현하였으며, 당시 인공 관개에 의한 농경이 보급되었다고 한다. 3,000년 전에 박트리아, 소그디아나왕국의 일부였고, BC 6세기에는 고대 페르시아의 영토였다. BC 4세기에 알렉산드로스대왕에게 정복되고 그레코-박트리아 왕국의 지배를 받았다. 8세기에 아랍의 침공을 받은 이후 이슬람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사마르칸트, 타슈켄트, 코칸트, 부하라 등지가 종교의 중심지나 동서무역의 중계지로 번성하였다. 8세기 중엽 고구려 출신의 장군 고선지(高仙芝)가 이끄는 당·위구르연합군과 아랍·투르크동맹군간에 무력충돌이 있었다. 11세기에는 셀주크투르크제국의 일부였고, 13세기에 몽골의 침략을 받아 차카타이한국(汗國)에 이어 16세기 초까지 티무르제국의 일부가 되었다. 14세기 이후 우즈베칸과 같은 강력한 통치자에 의해 부족들이 통합되면서 민족집단으로 등장하였다. 16세기 이후 부하라, 히바 및 코칸트한국이 건국되고 여러 부족의 정착화가 진행되었다.

 

19세기에 들어와서 제정러시아가 영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막고, 시장확보를 위해 우즈베키스탄에 진출하였다. 러시아는 1868년에 부하라 한국, 1873년에 히바 한국, 1876년에 코칸트 한국을 병합하였다. 1917년 12월 공산화되고 1918년 4월 투르크스탄자치공화국이 되었다. 1920년 부하라와 히바지역이 독립인민공화국이 되었으나, 1924년 투르크멘공화국에 병합되었다. 1924년 10월 우즈베크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이 수립되고, 1925년 5월 구소련의 일원이 되었다.

 

1929년 타지키스탄이 분리되었으며, 1936년 러시아로부터 카라칼파키야자치공화국이 편입되었다. 1980년대에 들어서 구소련의 개방과 개혁정책으로 경제난관과 환경문제가 노출되고, 민족주의운동과 이슬람부흥운동이 전개되었다. 1990년 3월 25일 대통령제를 도입하여 최고회의에서 카리모프 이슬람 아브두가니에비치를 대통령으로 선출하였으며 1990년 6월 20일에는 국가 주권을 선포하고, 구소련의 해체와 함께 1991년 9월 완전한 자주독립국이 되었다. 1991년 8월 구소련의 보수파에 의한 쿠데타가 실패로 끝나자 1991년 12월 대통령 직접선거를 실시하여 카이모프가 95% 투표율과 86%의 지지로 당선되었고 1992년 12월 대통령 중심의 민주공화제를 채택하였다.

 

 

 

문화

우즈베키스탄의 부카레, 키바, 사마르칸트에는 전세계으로 희귀한 대담하고 아름다운 이슬람교 건물이 있다. 사원, 첨탑 등의 건축은 티무르인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간다. 우즈베키스탄의 민속예술은 반유목민생활로 인하여 옷감, 무기, 보석, 직조, 자수, 모피 등과 같은 운반 가능한 것이 많이 발달하였다. 이슬람교는 삶을 묘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어 우즈베키스탄의 전통 예술품들은 서법, 문조각, 병풍 등과 같은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림은 구소비에트 연방시절에 되살아났다. 중세시대에 활약한 수학자 무사 화레즈미, 철학자 아부 레이한 알 비루니, 천문학자 울루그 베그, 시인 알리 시르 나바이가 널리 알려져 있다. 최근 항공교통이 편리해져 칼란 모스크, 아르크 성 ,쉬토라이 모히하사 궁전 등이 관광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정치

1992년 12월 8일 채택된 헌법에 따르면 우즈베키스탄의 정체는 대통령중심의 민주공화제이다. 1995년 12월 국민투표에서 99%의 지지로 대통령의 임기를 2000년까지 연장하였고 카리모프 이슬람 아브두가니에비치(Karimov Islam Abduganievich)가 2000년 1월 임기 7년의 대통령에 재선되었다. 각료회의는 총리, 8명의 부총리, 26개 부처장관, 24개 국가위원회의장, 8개 국가기관대표 및 카라칼파키야자치공화국 최고회의의장 등으로 구성된다.

 

입법부는 양원제로 상원은 100명의 의원(84명은 지역 선출, 16명은 대통령이 지명)으로, 하원은 120명의 의원으로 구성되며, 임기는 5년이다. 2005년 1월 총선에서 하원의 정당별 의석 분포는 인민민주당(LDPU) 41석, 헌신애국민주당(NDP) 32석, 재건민주당(Fidokorlar) 17석, 정의사회민주당(MTP) 11석, Adolat 9석, 무소속 10석 등이다. 종교정당의 정치집회는 금지되었으며, 1992년 통일인민전선은 불법화되었다. 구공산당의 당조직이나 관료기구가 거의 그대로 존속하고 있으며 구공산당인 인민민주당은 여전히 가장 큰 정치 세력이다. 인접국인 타지키스탄의 분쟁, 아프가니스탄 분쟁이 국내정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법부는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 헌법재판소(임기 5년의 재판관 5명) 등으로 구성되며, 사법권은 이들 법원이 독립적으로 행사한다.

 

평등·호혜·내정불간섭·개방 등을 외교기본원칙으로 하고 100여 개국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러시아를 비롯한 구소련 제국과 협력관계를 유지하며, 중앙아시아 이슬람국가와 관계를 강화하고, 서남아시아 국가와의 협력관계가 진전되고 있다. 한편 미국, 유럽연합 등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점진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로 이행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이들 국가들로 부터의 경제, 투자 촉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1992년 3월 UN에 가입했고, 같은 해 8월 방위법이 제정되어 국방군이 조직되었으며, 군복무는 의무제로 복무기간은 18개월이다. 군사력은 육군 약 4만 5000명, 공군 4,000명이며 러시아군은 주둔하고 있지 않다. GDP 대비 군사비 지출은 2% (2005년 추산)이다.

 

 

경제

우즈베키스탄의 1인당 GDP는 2000달러이며 경제성장율은 7.3%(2006년 추산) 이다. 산업별 구성 비율을 보면 농업 27.6%, 광공업 29.4%, 서비스업 43% 이다. 경제는 농업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섬유 및 식품가공업이 농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공산혁명 이전까지는 광물자원의 채광을 제외하고는 산업화가 미진하였지만 경제개발기간(1928∼1937년)에 구소련의 여러 슬라브공화국으로부터 기술자가 들어오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쟁지역으로부터 산업시설이 이전해 옴에 따라 산업화가 진전되었다. 1988년 이후 구소련 공화국간 경제협력체제 붕괴로 교역량이 급속히 감소하였고 이로 인해 경제성장이 부진하였다. 그러나 가격의 자유화, 민영화 법안 채택 등 계속된 경제조치로 1996년에는 국민총생산(GNP) 성장률이 플러스로 변했다.

 

우크베키스탄의 경제는 낙후되어 있지만 금과 천연가스의 부존량은 세계적이다. 카울디지작, 무린타우 등지는 금광의 주요 매장지역이며 가즐리·우츠키르·사리타쉬·자르카크·울르라블라크 등지는 천연가스의 부존지이다. 석탄은 타슈켄트와 수르한다랴주(州)에, 구리광은 타슈켄트와 키질쿰사막에, 철광은 케네스·자르디크·타빈블라크 등지에 많다. 망간은 다우타쉬·키질바이라크·타흐타카라친 등지에 집중 매장되어 있으며, 유황·암염·은·납·아연·텅스텐 등이 중 동부지역에 다량 매장되어 있다. 자원이 풍부하므로 인도네시아 등 외국 경제발전 경험에 바탕을 둔 독자적 경제개발 모델 수립이 중요하며 특히 외국 자본의 유치가 관건이다.

 

 

 

우리나라와의 관계

한국은 1991년 12월 우즈베키스탄을 국가로 승인 후, 1992년 1월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1993년 12월 상주대사관을 설치하였다. 1993년 6월과 1994년 6월 대통령(한국은 김영삼 대통령)의 교차방문을 통하여 양국간 경제교류와 기술협력이 증진되고 있다. 1999년 대통령 카리모프가, 2005년에는 노무현대통령이 공식 방문하였다. 양국은 1992년 투자보장협정, 과학기술협정, 무역협정, 사증발급 양해각서를 체결하였고 1994년 문화협정, 항공협정, 1998년 이중과세방지협정, 1999년 세관분야공조협정, 2003년 범죄인도조약, 형사사범공조조약, 2005년 사회보장협정 등을 체결하였다. 한국의 민간기업이 진출해 있고, 양국 합작 가전제품 및 자동차공장이 건설되었다. 양국간 무역은 독립 후 급속히 신장하여 한국은 러시아에 이어 우즈베키스탄의 두 번째 교역상대국이 되었다.

 

교역량이 2002년 2억8500만 달러에서 2003년 3억 2600만 달러, 2004년 4억3600만 달러, 2005년 5억2200만달러, 2006년 6억 8900만달러로 격증하였다. 2006년 한국으로부터의 수입품목은 자동차 부품,엔진, 편직물, 합성 필라멘트 등으로 수입액은 6억 4900만 달러, 수출 품옥은 면, 면직물, 인쇄물 등으로 수출액은 4000만 달러에 불과하다. 1937년 스탈린 통치하에 극동 연해주에서 강제이주한 고려인은 현재 20만 명 이상이며, 타슈켄트와 그 주위지역에 5만 명 이상 거주한다. 사르다르야주와 카라칼팍자치공화국 내에도 다수 거주하며 중서부지방에서는 도시지역에 집중거주하는 경향이 있다. 고려인은 다른 민족에 비하여 교육수준이 높으며 국가 경제발전, 특히 농업발전에 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한국과는 2006년 이후 유무상 협력관계가 강화되고 있으며 2006년 기준 약 1300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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