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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8.24 | 조회수 : 184

제목 : <문화> 가와바타 문학의 허무와 서정성…초기 단편선 '지고 말 것을' 글쓴이 : 일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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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다 검은 바다', '수정환상' 등 4편 국내 첫 소개

가와바타 야스나리
가와바타 야스나리

[위키피디아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성도현 기자 = 소설 '설국'(雪國)으로 일본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의 문학세계에 허무와 서정성이 자리 잡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초기 대표 단편선 '지고 말 것을'(문학동네)이 출간됐다.

가와바타의 문학은 '상실'을 기반으로 한다. 여러 작품에서 주로 허무와 죽음, 고독 등으로 표현되지만 넓게는 영원할 수 없는 존재로도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문학은 필멸(必滅)하는 것에 대한 연민과 애정을 품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는 어릴 때 부모를 잃고 조부모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 누나에 이어 그가 15살 때는 할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났다. 어린 나이에 혈육을 모두 잃고 살아야 했던 기억은 이후 그의 삶을 지배하게 됐고, 작품 세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첫사랑 이토 하쓰요와 결혼을 약속했다가 파혼을 당했고, 중일전쟁과 제2차 세계대전 속에서 지인들의 죽음을 마주했다.

가와바타는 평생 약 200편의 단편을 썼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20대 중반 이후 단편을 발표하지 않은 해가 없을 정도로 50여 년에 걸친 그의 작가 생활에서 단편은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 허무와 고독으로 이뤄진 세계와 서정적이고 고요한 문체는 단편들을 통해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단편선에는 '서정가', '금수', '지고 말 것을' 등 7편이 실렸다. 공통으로 죽음의 이미지가 깔려 있다. '푸른 바다 검은 바다', '봄날의 경치', '수정환상', '그것을 본 사람들' 등 4편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품이다.

지고 말 것을
지고 말 것을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푸른 바다 검은 바다'는 애인 리카코와의 동반자살에 실패한 남자가 다시 한번 자살하기까지의 이야기가 담긴 두 개의 유서로 구성돼 있다. 리카코의 체온과 목소리 덕분에 다시 살아 돌아온 일, 그녀를 생각하며 또 한 번 죽음으로 향하는 이야기가 이어진다.

'수정환상'은 발생학자 남편을 둔 부인의 하루를 그린 소설로, 다소 난해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의식의 흐름을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아내의 독백이 특징이다. 부인 자신과 관련된 세계와 성경, 불교 찬가, 신에게 제사 지낼 때 부르는 노래 등의 인용이 불규칙적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동성애적 환상과 근친상간적 환상 등도 독백에 등장한다.

'서정가'는 주인공인 다쓰에가 죽은 애인 '당신'에게 말을 거는 형식을 취한다. 불교의 윤회사상, 심령학, 신화, 기독교 등 다양한 사상이 등장한다. 다쓰에는 불법의 윤회전생설, 서양의 전생설 등을 떠올리며 구원을 찾고자 한다. 가와바타가 "내 근래 작품으로 가장 사랑한다"고 할 정도로 아낀 단편이며, 처연한 사랑의 이야기로 국내에도 여러 번 소개됐다.

표제작인 '지고 말 것을'은 1928년 8월 도쿄 신주쿠에서 발생한 '여성 이발사 2인 교살 사건'을 소재로 했다. 가와바타는 이 살인 사건에 관한 재판 기록을 토대로 소설을 구상했고, 범인을 추적하는 대신 범죄의 경위와 가해자·피해자의 심리를 쫓는다. 여성의 형상, 피고의 심리 해석, 생명이 지닌 힘 등을 섬세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박혜성 옮김. 264쪽. 1만3천500원.

rapha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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