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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01.14 | 조회수 : 300

제목 : <사회>집에 틀어박힌 중년 61만명···쉬쉬했던 여든 부모는 울었다 글쓴이 : 일본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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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하루에도 몇번씩 ‘죽고 싶다’는 문자를 보냅니다. 갑자기 문자가 오지 않으면 설마 하는 마음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죽고 싶다’는 문자가 오면 그제서야 ‘살아있구나’하고 안도하는 생활의 반복입니다”(A씨, 60대)
 “우리 오빠는 쉰셋입니다. 열여덟살 때 여자애들한테 ‘못생겼다’고 놀림을 당한 뒤로 히키코모리가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계속 ‘모든 게 내 책임’이라면서, 주변의 도움을 받을 생각을 하지 않아요. 부모님은 이제 여든이 넘었는데, 형제로서 내가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어요”(B씨, 40대)
 
지난 11일 오후 도쿄 아다치(足立) 구청의 한 회의실. 히키코모리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 15명이 모였다. 대개가 60대 이상의 중장년 층이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가족의 비밀을 털어놓기 위해 어렵게 입을 뗐다. 40대 아들을 둔 한 남성은 “아들이 TV며 선풍기를 몇대나 망가뜨렸는지 모른다. 친척들이 무서워서 집에 못 온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는 들어가는데 언제까지 아들을 돌볼 수 있을지 경제적,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낀다”고 말했다.

 

‘히키코모리’는 일본어로 틀어박혀있다는 뜻의 ‘히키코모루(引きこもる)’에서 나왔다. 한국에선 ‘은둔형 외톨이’라고 불린다. 학교나 직장에 가지 않고 집에만 있는 상태를 말한다. 일본 내각부는 ‘평소에는 집에 있으면서 취미 관련 일을 볼 때만 외출하거나, 집 앞 편의점에만 나가는 상태’도 6개월 이상 계속되면 히키코모리로 보고 있다.
 
이날 모임에 참석한 ‘전국 히키코모리 가족회’의 우에다 리카(上田里香·49) 사무국장 역시 20대때 히키코모리 경험이 있었다. 딸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어머니도 우울증과 함께 히키코모리 상태가 됐다. 우에다는 “히키코모리는 집에 처박혀 있는 상태이지 병이 아니다. 누구나 히키코모리가 될 수 밖에 없는 계기가 있다. 불안함을 피해 집으로 들어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고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잘 따른 사람일수록 히키코모리가 되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부모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죽이고 살다가, 갑자기 왕따를 당하거나 실직을 하는 등의 일을 겪게 되면 인간관계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집 밖으로 나서길 거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해 3월 전국 15세 이상 64세 이하의 히키코모리를 115만명으로 추정했다. 이 가운데 40대 이상이 61만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10대, 20대만의 문제인 줄 알았던 히키코모리가 전세대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는 게 처음으로 확인됐다.  
 
40대 이상의 중년 히키코모리는 이른바 ‘취업 빙하기 세대’와도 연관이 있다. 2000년 전후에 사회로 나왔지만 버블경제 붕괴로 취직을 못하거나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채 불안정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취업 빙하기 세대’라 한다. 36세(1984년생)에서 44세(1975년생)가 해당된다.
 
정신과 의사인 사이토 다마키(斎藤環)는 “예전에는 학교 생활을 적응을 못해 히키코모리가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3~4년전부터 취직 문제에서 좌절한 뒤 히키코모리가 되는 경우가 급속하게 늘었고 최근엔 역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구마자와 히데아키(熊澤英昭·77) 전 농림수산성 사무차관이 40대 히키코모리 아들을 살해한 사건으로 일본에선 중년 히키코모리 문제가 크게 불거졌다. 중년의 히키코모리 자녀와 고령의 부모가 겪는 ‘8050 문제’의 전형적인 형태가 이 사건을 통해 드러났다.
 
구마자와의 아들은 주기적으로 어머니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얼굴에 멍이 들기 일쑤였고, 늑골에 금이 간 적도 있었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도 동료들과의 트러블로 오래가지 못했다. 여동생은 오빠의 폭력문제로 혼담마저 모두 끊기고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비극은 자취를 하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온 지 일주일 뒤 일어났다. 아들은 집 근처 초등학교 운동회 소리가 시끄럽다며 화를 냈다. 눈이 마주치자 “죽여버리겠다”고 했다. 구마자와는 나흘 전 아들이 자신의 머리채를 붙잡고 현관 바닥에 내동댕이쳤을 때 눈빛이 떠올랐다. “정말로 죽일 것 같았다”는 생각이 들자, 가슴과 목을 찔러 아들을 살해했다.  

 

구마자와는 20년 넘게 아들의 히키코모리 문제로 고생을 했지만, 단 한번도 이웃이나 경찰 등 외부에 도움을 요청한 적이 없었다. 지난해 12월 법원에서 징역 6년형을 선고받은 구마자와는 “상담을 받으면 부자관계가 악화될 것 같았다. 폭행을 당해 정신적 충격이 컸다”고 털어놨다. 일본 언론들은 “직업공무원으로서 최고직인 사무차관이 아들 문제를 외부에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히키코모리 부모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히키코모리를 집에서 꺼내준다”는 민간업체도 등장했다. 이 업체는 “반드시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겠다”며 부모들로부터 90일에 570만엔(약 6000만원)을 받았지만, 실제론 시설로 강제로 끌고 와 영어회화, 컴퓨터 수업을 하는 수준이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강제로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는 등 피해가 속출했다. 도쿄지방법원은 최근 “본인의 동의없이 강제로 시설로 끌고 와, 생활 지도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낸 30대 여성에게 500만엔(약 5200만원) 배상을 판결했다.
 
일본 정부도 중년 히키코모리가 집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취직 지원책 등을 내놓고 있다. 취업빙하기 세대의 정규직 고용을 2022년까지 30만명 늘리는 것을 목표로 2020년부터 3년간 650억엔(약 6900억엔)을 투입하기로 했다. 후생노동성은 교육훈련 제공, 건설ㆍ운수업 자격증 취득 지원, 취업 기업 보조금 지원 등의 정책을 발표했다. 우에다는 “각각의 삶의 방식에 따라 의지할 곳이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처: 중앙일보 2020.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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