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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02 | 조회수 : 623

제목 : 《1.26》[한반도포커스] 대만해협에서의 단상 - 국민일보 글쓴이 : paxsi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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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중국의 샤먼(廈門)에서 직접 진먼다오(金門島)로 넘어가 대만을 다녀올 기회가 있었다. 샤먼에서 2㎞ 거리의 진먼다오는 1979년 중·미수교 직전까지 서로 포격을 주고받던 분단의 상징이었다. 중국의 포격으로 생긴 포탄 잔해로 만든 조리용 칼과 국민당 주둔군을 위해 빚었던 고량주는 이제 진먼다오의 주요 수입원이다. 덩샤오핑의 ‘일국양제’ 구상에 따른 적극적 대만정책과 대만 민주화 이후 국민당 정부의 친중 성향이 맞물려 샤먼-진먼다오는 직접 통항(通航), 통우(通郵), 통상(通商)이 가능한 삼통(三通) 사례로 우리의 부러움을 샀다. 양안 관계에서는 현실적 이해관계가 갈등의 정치를 극복해 통일에 한걸음 다가섰다는 것이 우리의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에서 본 현실은 그와 달랐다. 마잉주의 국민당 정부는 지나친 친중 노선에 대한 대만인의 반감을 고려해 진먼다오를 전쟁 콘셉트의 관광지로 포장하고, 대만 독립을 지향하는 민진당 중심의 반대 세력은 진먼다오의 전쟁 기억으로 반(反)베이징 정서를 되살리고 있다. 또 중국의 푸젠성 지방정부는 행여 대만 자본이 상하이나 베이징으로 방향을 틀까 노심초사하면서 대만이 푸젠성의 일부임을 강조하고 지역 정서와 이해관계 속에 관리하고자 한다. 


통일로부터 멀어지는 듯한 兩岸관계  

비록 샤먼항의 간편한 수속을 마치고 배에 실은 몸은 반시간 남짓 짧은 시간에 대만 땅을 밟았으나, 왠지 화려한 수사(修辭) 속에서 양안 관계의 미래는 진정한 통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중국대륙과 대만의 정치세력 모두 ‘통일이냐 독립이냐’의 이분법 갈등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제3의 길, 즉 대만을 중화인민공화국(PRC)의 일부로만 바라보는 ‘일국양제’를 지양하고, 중-대만-미국 관계의 재설정을 전제로 하여 대만의 주권과 중·대만이 역사·문화적 공동체임을 인정하는 ‘중화(中華)연방’도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식의 열린 생각을 발견할 수는 없었다. 

분단구조를 정치적 셈법에서 도구화하는 것은 양안과 한반도의 공통점이다. 중·대만과 남북한 모두 상대편에 대한 제안 내용이나 수용 여부는 정치적 파급효과를 따져 결정한다. 어찌 보면 한국의 대북정책도 북한 당국의 반응을 계산하면서 국내 경쟁 정치세력을 상대로 한 게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안 관계에 비해 남북한 관계가 나은 점은 통일과 남북관계의 정상화로 모아질 수 있는 미래가 보다 명확하다는 점이다.

한국, 청사진 만든 뒤 차분히 통일 대비해야  

우리는 남북한의 다음 세대가 이끌어갈 한반도는 분명히 지금보다 더 나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통일비용과 ‘통일 대박론’의 논쟁 속에서도 대만의 독립에 비견되는 ‘영구 분단론’이 설 자리는 없다. 발상의 전환을 통한 ‘남남 갈등구조’ 극복과 새로운 남북한 관계 설정이 가능하다. 세계에서 7개국만이 넘어설 수 있었던 인구 5000만명, 소득 2만 달러를 달성한 한국은 이제 문화적으로도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압축성장에 따른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자유’는 우리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이다. 

주권을 제약해 온 한반도 정전체제와 북한과의 체제경쟁, 분단으로 인한 의식의 장애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를 바탕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이제 북한 핵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라도 한반도 평화체제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을 것이다. 또 여론의 향배를 감안한 국내정치적 셈법에서 북한을 다루는 방식 또한 지양해야 한다. 과거 집권당이 바뀔 때마다 별다른 목표도 없이 집착했던 남북 정상회담이나 선거를 염두에 둔 ‘깜짝쇼’, 그리고 보수와 진보의 넘을 수 없는 강이었던 색깔 논쟁은 더 이상 허용할 이유가 없다.

강태공(姜太公)의 심정으로 한반도의 미래를 위해 장기적이며 세부적인 청사진을 만들어 평화와 역사의 강물에 드리우고, 북한의 변신을 인내하며 묵묵히 지켜보고 여유롭게 지지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통일 모델로서의 중·대만 양안 관계는 부러워하지 않아도 된다. 

오승렬(한국외대 교수·중국외교통상학부)

[한반도 포커스-오승렬]  대만해협에서의 단상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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