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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3.02 | 조회수 : 504

제목 : 《2.23》[한반도포커스] 北의 진정한 변신을 위한 조건 - 국민일보 글쓴이 : paxsi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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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량 사정을 포함해 북한경제가 다소 호전됐다는 소식이 들린다. 19개 경제개발구 지정과 영농 단위 축소 및 상(商)행위 확대, 기업 자율권 확대 등 북한 나름대로의 변신을 시도해 왔다. 또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통해 채무의 90%를 탕감 받았으며, 철도 연결 및 현대화 등의 경협 사업을 추진 중이다. 비록 북한에 대한 중국의 정서가 예전과 같지 않다고는 하나 경제관계는 거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 상황 호전의 배경이다. 


한편 서울에서는 설 연휴를 앞둔 16일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준비위원회 토론회에 참석, 북한에 대해 몽골, 베트남, 미얀마를 따라 개혁의 길로 들어설 것을 권유했다. 또 회의에서는 통일 이후 북한 사회간접자본(SOC) 및 복지 확충 방안을 논의했다. 북한은 노동신문을 통해 ‘망발’이라며 원색적 비난을 퍼부었고, 20일에는 김정은이 ‘서해 섬’에 대한 대규모 ‘타격 점령’ 훈련을 참관했다. 북한의 변화와 남북 간 군사적 긴장이 뒤섞인 작금의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김정은, ‘7·1 조치’의 한계 뛰어넘어야 


김정은 시대 북한의 변화는 아직 2002년 김정일이 취했던 ‘7·1조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단지 빈번한 인사 교체에 불안한 북한 권력층과 군부가 이권 독점과 횡포를 삼가고, 주민 상행위를 묵인하고 있는 상황이 야기한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중국과 베트남, 쿠바에 이르기까지 실질적 경제개혁을 추진해 온 사회주의 국가는 세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첫째는 시장 기구를 접목한 개혁 노선을 공개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내부 정치 환경이다. 둘째는 대외관계 개선이며, 셋째는 민간 소유 기업의 허용이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북한은 이 중에서 한 가지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최룡해 등 이른바 실세들은 김정은 ‘유일 지배체제’ 뒤에 숨어 권력 놀음에 탐닉한 나머지 지속 가능한 개혁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핵 문제는 북한의 대외관계를 자승자박(自繩自縛)했고, 민간 기업에 의한 신속한 상품공급 증가는 여전히 허용하지 않고 있다. 주민의 상행위는 생존을 위한 자투리 공간에서만 이뤄질 뿐이다.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전환도 필요 

한국정부의 ‘통일 준비’ 또한 역설적이게도 북한의 진정한 변신을 가로막고 있다. 그동안 북한은 남북한 국력의 차이와 한·미 공조에 의한 흡수통일 가능성을 내부 통제와 핵 무장의 빌미로 삼았다. 이런 상황에서 ‘통일’이 멀지 않았다고 보고 북한 지역 사회간접자본과 복지 확충 재원 문제를 공개 토론하는 것이 과연 북한의 변화 유도에 도움이 될까? 동서독 통일 이전 서독에서 ‘통일’ 거론을 금기시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통일을 촉진했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또한 북·중 관계 악화를 상정해 한반도 통일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생각은 오판이다. 미국과 경쟁하는 신흥 대국 중국의 한반도 전략은 그리 쉽게 선수(船首)를 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위한, 또 무엇을 논할 ‘통일 준비’인지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남북관계의 고착에 대한 책임회피나 보수 진영의 ‘표’ 지키기를 위한 국내 정치 용도의 접근법이라면 통일을 둘러싼 ‘남남 갈등’ 치유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 

김정은의 북한이 진정한 정상 국가로 발돋움하려면 북한 스스로 7·1조치의 한계를 뛰어넘어 개혁의 세 가지 성공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와 동시에 한국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이 이뤄져야 할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껴안고 더욱 움츠러들게 할 ‘통일 준비’가 아니라 실질적 남북한 접촉면의 확대와 새로운 경제협력 모델 개발, 그리고 한반도 평화체제의 조기 정착을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오승렬 (한국외대 중국외교통상학부 교수)

[한반도포커스-오승렬] 北의 진정한 변신을 위한 조건 기사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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