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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1.26 | 조회수 : 158

제목 : [기고] ⑤ 향후 미·러 협상이 타협에 이를까요? 아니면 파국으로 치닫을까요? 글쓴이 : 러시아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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⑤ 미·러 파국이냐 극적 타협이냐…분기점

러, ‘우크라·조지아 나토 불편입’ 절대 관철 목표
中 배려차원서 동계五輪 시작·종료 후 행동할 듯
러, ‘치르콘 카드’로 제2미사일 위기 조장 가능성
美 ‘나토 불확대’ 확약·러 ‘우크라 보전’ 거래 가능
미, 중·러의 반미연대 와해하는 ‘逆닉슨 전략’ 필요

지난 16일 러시아 우랄 오렌부르크 근방에서 실시된 군사훈련에서 러시아군 로켓포 발사대에서 로켓포가 불을 뿜으며 발사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러시아는 최소한 미국에 옛 소련 일원인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편입 불허를 관철하려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2월 중국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군사적 반격의 데드라인(Dead-line)이 될 수 있습니다. 미·러는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처럼 극적 타협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미국은 중국으로의 세력 전이(轉移)를 막고 글로벌 패권의 유지 및 강화를 위해서는 러시아를 껴안아야 할 때입니다.”

 

러시아 및 한·러 관계 전문가인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학과 주임교수는 24일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미·러의 대립이 파국이냐 극적 타협이냐를 가르는 결정적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러시아는 1941년 900일 동안 계속된 독일의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포위전을 인육(人肉)을 먹으면서까지 버텨낸 경험이 있다며 미국의 경제제재 압박이 큰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했다.

 

 

◆러, 미국과의 담판에서 을→갑 위치 변환

 

-최근 미·러 협상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0~13일 서방과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및 유럽안보 위기 해소를 위해 세 차례의 릴레이 협상을 펼쳤다. 이어 21일에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부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두 번째 공식 회담을 가졌다. 제네바 회담을 앞두고 미·러는 협상의 유리한 고지 선점을 위해 장외에서 날 선 공방을 이어갔다. 실제로 양측 사이에 상대방을 자극하는 격렬한 공갈 협박이 난무했다. 그래서 협상의 결렬이냐, 극적인 돌파구 마련이냐가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2차 제네바 회담은 어떻게 진행됐나.

 

“1차 연쇄회담이 탐색전이었다면, 2차 제네바 회담은 치열한 수 싸움의 본게임 성격을 띠었다. 추가 협상 약속을 하고 끝낸 2차 회담은 극적인 돌파구 마련도 없었지만 파국·결렬도 없었다. 예단하기 이르지만 전체적인 회담 분위기에서 우크라이나 위기가 군사적 충돌로 이어지지 않도록 상호 입장 차이를 좁혀가는 듯한 모습이 관찰된다. 2차 협상이 외교수장이라는 고위급 수준에서 진행되었고, 회담이 예상 밖으로 1시간 30분 만에 종료되었으며, 협상의 모멘텀이 유지된 것은 양측이 물밑 교섭을 통해 무언가 수렴점을 찾아가고 있음을 추측케한다. 나토의 동진 확장 시기에는 러시아가 밀리는 ‘을’의 신세였지만, 우크라이나 안보위기 조성 후 미·러 담판에서는 러시아가 공세적인 ‘갑’의 위치로 뒤바뀌었다는 점이 눈에 띈다.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해 6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위해 만나 인사하고 있다. 제네바=AP연합뉴스

◆러, 옛 소련 6개국 나토 불편입 요구

 

-러시아는 무엇을 요구하고 있나.

 

“러시아는 지난해 12월 15일 미국에, 다음날 16일에는 나토에 일방적으로 작성한 협정문 형식의 안전보장안 초안을 보냈다. 그리고 17일에는 미국과 나토에 전달한 안전보장안 초안 전문을 전격 공개했다. 협정문은 미국과는 8개 조항, 나토와는 9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다. 핵심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크렘린이 백악관에 내민 안보견적서의 주요 목록은 다음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나토가 우크라이나를 포함해 옛 소련 일원 6개국(벨라루스·몰도바·아르메니아·조지아·아제르바이잔)에 회원국 자격을 부여하지 말 것. 둘째, 러시아 인근 중동부 유럽 나토 회원국에 타격용 공격 무기 배치를 중단하고 철수시킬 것. 셋째, 러시아 고유 세력권인 CIS 국가에 무기지원 금지 및 군사기지를 설치하지 말 것. 넷째, 러시아 근역에서 나토의 합동군사훈련을 중지할 것. 마지막으로 이런 내용을 구두가 아니라 법적 구속력 있는 문서, 즉 조약으로 보장할 것으로 집약된다.”

 

-상당히 강도 높은 요구가 포함됐다.

 

“힘이 잔뜩 실린 안전보장안 제시를 통해 서구에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은 나토의 동진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고, 1997년 5월 이후 가입한 나토 회원국에 러시아 동의 없는 병력과 무기를 배치할 시 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는 경고다. 러시아의 안보이익과 배타적 세력권 수호를 위해 나토 동진을 차단하려는 크렘린의 의지는 확고하고 단호해 보인다. 그런 의지는 세르게이 랴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나토는 소지품을 챙겨서 1997년 이전 경계선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다’라고 경고한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도 확인된다.”

 

-러시아 요구에 미국이 화답할까.

 

“이 지점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미·러가 팽팽한 대치선을 거두고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까. 타협에 도달한다면 그 수렴점은 어디쯤일까. 반대로 협상은 결국 파국으로 치달을 것인가. 최종 담판이 결렬될 경우 양측의 대결구도는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 것인가. 어느 정객의 표현처럼 정치는 살아있는 생물이고 외교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미·러 협상에서 타결과 결렬의 경계선을 이해하려면 지정학적 판돈을 올린 러시아가 수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이 어디쯤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미·러 갈등이 고조하는 가운데 러시아공군 수호이(Su)-34 전폭기가 지난 19일 러시아 크라스노다르비행장에서 임무수행을 위해 이륙하고 있다. 크라스노다르=AP연합뉴스 

◆베이징동계올림픽이 공격의 데드라인

 

-러 요구에는 최고∼최저 목표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의미인가.

 

“크렘린이 백악관에 제시한 안전보장 관련 베팅들이 모두 수용될 리 만무하다. 러시아 역시 이걸 모르고 생각나는 대로 보상금을 청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안보견적서는 협상 테이블에서 러시아가 주장할 최대 목표치로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공식 교섭 테이블에서는 각자 원하는 최대한의 목록을 전달하는 것이 협상의 기본원칙이다. 실제적으로는 커튼 뒤에서 각자가 줄 수 있는 보상치와 허용치를 놓고 서로 협의하기 때문에 지금 이 시각에도 미·러는 지난한 ‘밀당’을 계속하고 있을 것이다. 미·러의 물밑 협상이 합의점을 찾아 최종 타결된다면 각자가 원하는 최대치가 아니라 양측의 목표치 사이 어디쯤, 즉 안보이익 교환에서 파레토 최적의 균형점에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러시아가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최저 목표는 어느 선인가.

 

“러시아는 어느 선까지 양보가 가능할까? 러시아가 반드시 관철해야 할 최저치는 어느 지점인가? 전후 맥락에서 크렘린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양보의 최저선을 오컴의 면도날(Occam's Razor: 똑같은 결과를 낳는 두 개의 이론이 경합하고 있을 때, 더 단순한 것이 훨씬 훌륭하다는 원칙)로 간명하게 상정해보면 이렇다. 러시아의 급소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작은 급소)의 나토 편입 불허와 러시아와 인접한 나토 회원국에 공격용 무기 배치 철회 및 국경선 일정 지역에서의 상호 군사훈련 금지를 조약 또는 협정 형태로 보장받는 것으로 예측할 수 있다.”

 

-러시아가 정한 군사반격 데드라인은 언제쯤으로 보나.

 

“러시아는 미국의 시간 끌기 지연전술을 경계하고 군사적 반격 시점의 데드라인을 정해 놓은 듯하다. 러시아가 누차 천명한 군사·기술적 대응은 반미 준(準)동맹국 중국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참석이 예정된 베이징 동계올림픽(2월4일~20일)의 시작 또는 종료 이후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과 대립하고 있는 중국, 러시아, 이란의 해군 군함이 지난 19일 인도양 북부에서 연합훈련을 하고 있다. 이란군 제공

◆히틀러 압박에 체코 영토 할양 오버랩

 

-미국의 대응이 쉽지 않겠다.

 

“러시아의 최후통첩에 미국은 진퇴양난에 처해 있는 듯하다. 러시아 요구의 용인, 특히 우크라이나·조지아의 나토 가입 불허 확약은 유럽의 정치지형에서 크렘린의 지정학적 지분을 일정수준 인정하고 나아가 러시아와 권력을 나누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는 나토 회원국들이 유럽안보의 보호자·수호자로서 미국에 거는 기대에 커다란 흠집을 낼 것이다. 여기에 작년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격 철군이 오버랩되어 서구공간에서 워싱턴의 국제적 위신은 땅에 떨어지고 지정학적 입지는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우에 따라서는 양안(兩岸·중국 대만) 관계에서도 베이징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미국 주류 정치권에 광범위하게, 그리고 깊게 뿌리내린 반러시아 정서도 크렘린의 안보견적서 수용을 어렵게 한다. 날개 없이 추락하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행정부에 올 연말에 있을 중간선거도 고려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의 러시아 요구 수용은 어렵다는 의미인가.

 

“사실 더 큰 우려가 있다. 크렘린에 대한 양보 또는 타협점 후퇴를 통한 미·러의 합의는 러시아의 제국적 부활에 발판을 제공하는 일종의 지정학적 당의정(糖衣錠· 쓴 약을 먹기 좋게 겉면에 사탕을 발라놓은 것)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1938년 뮌헨협정은 이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게르만 제국의 팽창을 추구하던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시기 독일은 당시 체코슬로바이카 영토였던 주데텐란트 할양을 요구했다. 주민 대다수가 독일계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독일의 위압적 공세에 전운이 감돌자 영국과 프랑스는 유화책으로 1938년 주데텐란트를 떼어주는 것으로 전쟁을 막아 보려 했다. 뮌헨협정이 체결된 배경이다. 그러나 프랑스와 영국의 양보는 결국 독이 되어 되돌아 왔다. 이후 자신감을 얻은 히틀러는 더 많은 것을 요구했고, 이것이 결국 1939년 9월 폴란드를 전면 침공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발발의 도화선이 되었다.”

 

-러시아 요구 수용 시 더 많은 것을 요구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워싱턴 전략가들의 고민은 히틀러의 체코 주데텐란트 병합 사례와 마찬가지로 푸틴의 야심이 우크라이나에 멈추지 않을 공산이 크다는 데 있다. 1차 대전 패전으로 힘을 잃었던 독일이 근력을 회복하면서 유럽질서의 재편을 시도했던 것처럼, 1991년 소련 해체로 망가진 러시아가 다시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유라시아 지도를 새로 그리려 할 조짐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불길한 시나리오가 워싱턴이 러시아에 대한 양보를 주저하게 한다.”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 에두아르 달라디에 프랑스 총리, 아돌프 히틀러 독일 총통, 베니토 무솔리니 이탈리아 총리, 갈레아초 치아노 이탈리아 외무장관(왼쪽부터)이 1938년 9월30일  당시 체코슬로바키아의 주데텐란트를 독일에 할양하는 내용의 뮌헨협정에 서명하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위키피디아

◆효과 떨어지는 서방의 대러 제재와 중국이라는 뒷배

 

-미국은 러시아의 요구를 거부할 능력이 되나.

 

“워싱턴이 크렘린의 재(再)팽창 야욕을 저지할 실질적인 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도 고민이다. 미국은 국제 은행 간 달러화 결제시스템인 스위프트(SWIFT)망에서 러시아를 제외하는 것을 포함해 정보기술(IT), 인공지능, 양자컴퓨팅과 같은 첨단 기술제재 및 인적 제재 등 소위 ‘지옥의 제재’(Hellish Sanctions) 카드를 흔들어 대지만 그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크렘린은 이미 서구의 징벌적 경제보복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해 놓고 만반의 대비를 해왔다.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이렇게 겁 없이 세게 나올 수 없다. 러시아는 국제 인터넷망 차단 시 자체 시스템 루네트를 도입하고, 스위푸트망에서의 축출을 대비해 자체 개발한 결제시스템 SPFS(금융결제정보전달시스템)를 시험 중이다. 중국이 운용 중인 CIPS(중국국제금융거래결제시스템)와의 통합도 모색 중이다.”

 

-미국의 대러 제재가 약발이 없을 수 있다는 의미인가.

 

“미국이 추가로 초강력 제재를 가할 시 러시아는 고통스럽겠지만 견뎌 낼 것이다. 1941년 독일의 레닌그라드 포위전에서 보급선이 막힌 루스키(러시아인)들은 900일 동안 항복하지 않고 인육까지 먹고 버티면서 결국 전세(戰勢)를 역전시켰다. 러시아 국민의 단결력과 인내심은 세계 최강이다.

 

2014년 모스크바의 크림반도 병합 이후 지난 8년 동안 미국으로 대표되는 서구가 지속적으로 강화한 대러 제재가 역설적으로 러시아 경제를 건강하게 만들어 준 측면이 있다. 서구의 고강도 제재에 내성(耐性)이 생겼을 뿐 아니라, 상황의 강제에 의해 오히려 에너지 의존적 경제구조에서 벗어나 산업구조 재편을 촉진하는 계기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경제는 2016년에 바닥을 찍었고 플러스 성장세로 올라타 2021년에는 4.2%의 고성장을 기록했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도 대러 포위망을 약화할 듯하다.

 

“서구가 전방위적으로 경제적 숨통을 조여 오더라도 러시아에는 중국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다. 미국 중심의 단극(單極)적 패권질서 견제라는 동일한 전략관을 공유한 경제 대국 중국은 서구의 제재를 상쇄시키는 출구를 제공한다. 유럽으로의 원유·천연가스 수출이 막힐 시 에너지 먹는 하마 중국이 수출 대체선이 될 수 있다. 베이징은 모스크바가 워싱턴의 압박에 굴복할 경우 다음은 자신 차례라는 것을 명료히 인식하고 있다. 따라서 베이징은 크렘린이 구원의 손길을 내밀기를 기다리면서 러시아가 무너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줄 것이다. 서구의 압박에 따른 러시아 경제의 중국 종속 심화 현상을 백악관의 책사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자못 궁금하다.”

 

러시아군과 벨라루스군이 지난해 9월 러시아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연합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러시아 국방부 제공

◆러시아 제재 땐 EU도 타격…서방 분열

 

-미국의 대러 제재와 관련한 유럽의 입장은 어떠한가.

 

“바이든 정부가 경고한 ‘재앙의 제재’가 효과를 거두려면 무엇보다 유럽연합(EU)의 전폭적인 참여가 필수적인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대서양 국가 미국과 달리 EU 입장에서 러시아는 숙명적으로 정치적, 경제적, 안보적, 문화적 상호작용을 계속해야 하는, 부담스럽지만 중요한 지리적 이웃이다. 실제로 EU는 연간 40% 이상의 천연가스 수입뿐 아니라 러시아와의 교역 비중도 매우 크다. 제재를 가하기 이전인 2013년 EU의 대러 교역 규모는 수출이 1195억 유로, 수입은 2070억 유로에 달했다. EU의 대미 무역액 4089억 유로의 80%에 이른다. EU 핵심국가 독일의 경우 2019년 러시아로부터 128억 달러에 이르는 원유·천연가스를 수입했고, 러시아에 진출한 독일 기업도 5000여개에 달한다.”

 

-EU와 러시아 경제가 생각보다 연동된 듯하다.

 

“그렇다. 이런 수치는 EU·러시아 경제가 상당히 커플링, 즉 동조화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서방연합이 대러 제재를 가해도 러시아 경제와 디커플링 되어 있는 미국에는 큰 손해가 없지만 EU는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8년간의 대러 제재에서 EU는 미국이 최대 수혜자라는 것을 학습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에서 전쟁 발발 시 몰려들 대규모 난민은 미국이 아니라 유럽이 고스란히 껴안아야 할 정치사회적 악몽이다.”

 

-대러 제재에 대한 미국과 EU의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겠다.

 

“워싱턴이 미국·EU의 결속과 대서양 동맹의 중요성을 부각하면서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서방의 강력한 공동대응을 강조하지만, 에너지, 교역, 안보문제 등에서 러시아와 이해관계가 밀접히 교직되어 있는 EU의 핵심 구성원들은 미국과 다른 목소리를 내고 눈치를 보면서 대러 제재에 신중한 태도를 취한다. 이처럼 시간의 경과와 함께 협력보다는 자국 이기주의 모습을 보여주는 서방의 분열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군사적 강공책을 부추긴 측면도 없지 않다고 본다.”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독립국가연합)학과 주임교수가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강연하고 있다. 홍완석 교수 제공

◆미국도 군사대응엔 신중…발 빼나

 

-러시아 요구 거부 시 미국이 지불해야 할 비용은 없나.

 

“크렘린 요구를 전면 거부할 시 미국이 치러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다. 러시아가 작정하고 덤벼드는 결기로 보아 강력한 군사적 반작용을 야기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그럴 경우 미국은 우크라이나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휘말리지 않을 수 없고, 유럽은 화염에 휩싸이게 된다. 상대의 덩치가 너무 크고 강한 근육질의 골격이어서 자칫 제3차 세계대전으로의 비화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으로의 세력전이 방지를 위해 베이징의 야망을 주저앉히는데 우선적으로 힘을 쏟아야 할 판에 러시아와의 군사적 대립으로 그 동력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군 파견은 검토 대상이 아니라고 누차 선을 그은 것이나,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 문제에 대해 회원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 발을 뺀 이유일 것이다.”

 

-또 어떤 후폭풍이 예상되나.

 

“무엇보다 워싱턴이 가장 많이 신경을 쓰는 부분은 크렘린이 미국의 목 밑에 비수를 들이대는 군사적 옵션을 만지작거리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가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는 전략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위협은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우크라이나 공세는 단지 분위기 띄우기용 또는 국제적 관심 환기용일 뿐이다.”

 

-어떤 의미인가.

 

“러시아는 유럽이 아니라 미국의 안보에 직접 위협을 가해야 양보를 얻어내기가 쉽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러시아가 겨냥해야 할 대상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EU 주도국이 아니다. 유럽이 전장화하는 것은 워싱턴에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태평양과 대서양 사이에 위치해 그 누구도 쉽게 군사공격을 감행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 미합중국을 겨냥하는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워싱턴의 신경줄을 예민하게 만들기에 충분한, 유효한 반격이다. 러시아가 미국에 턱밑의 창검(槍劍)인 중남미 카드를 내민 이유다.”

 

러시아 10만 대군이 우크라이나와의 접경 지역에 집결하는 가운데 러시아군 장갑차 행렬이 지난 18일 크림반도의 고속도로에서 이동하고 있다. 크림반도=AP연합뉴스

◆치르콘 미사일, 새로운 게임체인저

 

-중남미 카드란 무엇인가.

 

“랴브코프 외무차관은 지난 13일 국제방송 RTVi와의 인터뷰에서 서방과의 안전보장 협상 실패 시 중남미의 친러국가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러시아군 병력 주둔 가능성을 언급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미국에 치명적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세계 최강의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치르콘 배치도 암시했다. 치르콘은 최대 마하 9(시속 약 1만1000km) 속도로 1000km 이상 비행해 지상과 해상 목표물을 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성능을 갖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치르콘 미사일이 미국에 위협이 되나.

 

“치르콘은 현존하는 미사일 방어 체계로는 요격이 어려운 속도로 날아오는 극초음속인 데다 비행경로를 수시로 바꾸는 회피기동도 가능하다. 핵탄두가 탑재되면 미·러 간 힘의 균형을 바꾸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고 군사전문가들은 평가한다. 쿠바 인근 해상에서 치르콘 발사 시 워싱턴은 12분, 플로리다주 마이애미는 3분이면 도달한다. 나토가 우크라이나에 미사일을 배치하면 모스크바에 도달하는 데 4~5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강조한 크렘린의 상응조치로 보면 된다. 미국이 나토 회원국을 규합해 흑해에서 대러 해상봉쇄 무력시위를 하듯이 러시아 역시 미국의 앞마당 카리브 해 연안 지역에서 중국 및 우호국들과 해상연합군사훈련을 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 우크라이나 보호하려다 러시아의 되치기에 미국이 이제 순식간에 ‘내 코가 석 자’될 판이다.”

 

러시아해군 호위함 고르시코프제독함에서 지난달 10일 극초음속 순항미사일 치르콘이 발사돼 불을 뿜으며 하늘로 솟아오르고 있다. 러시아해군 발표에 따르면 이 미사일은 마하 8 이상의 속도로 날아가 350㎞ 이상 거리에 위치한 목표물에 명중했다. 고르시코프제독함에서는 앞서 지난해 10월과 11월에도 치르콘 발사시험이 수행됐다. 러시아해군 홈페이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재판(再版)

 

-치르콘 카드가 효과 있을까.

 

“중남미에 러시아의 군사 인프라 배치 시사는 미국의 양보를 이끌어내기 위한 비책(秘策)으로 읽힌다. 이 책략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역사를 소환할 필요가 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의 발단은 미국이 동맹국 터키와 중동에 소련을 겨냥해 설치한 핵미사일에 대한 크렘린의 비례적 대응에서 비롯된다. 1962년 8월 미국 케네디 정부는 U-2 정찰기를 통해 소련이 위성국 쿠바에 새로운 군 기지를 건설하고 탄도미사일을 배치한 사실을 확인했다. 미국은 소련 함정이 쿠바로 이송하려는 공격용 무기 반입을 막기 위해 물리적으로 쿠바 해상봉쇄를 단행했고, 그러면서 카리브 해에 미·소 간 일촉즉발의 전운이 고조되었다. 결국 물밑 협상에서 소련이 쿠바에 설치한 미사일 기지를 철수하는 대신 미국 역시 중동국가에 설치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기지를 제거한다는 비밀조약을 체결하고 평화적으로 해결되었다. 당시 미국은 쿠바 불침공도 약속했다.”

 

-이번에도 치르콘 카드가 미·러 타협을 도출할 수 있다는 의미인가.

 

“만약 예상대로 푸틴 정부가 쿠바와 베네수엘라에 러시아군 병력을 주둔시키고 미사일 발사 기지를 설치한다면 미국에 심각한 안보위협이 아닐 수 없다. 이게 현실화될 경우 제2의 쿠바 미사일 위기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카리브 해에서의 미·러 대치 재연은 양측 모두에게 상당한 군사 안보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극단적 대치가 오히려 양국을 타협으로 이끄는 중요한 계기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을 해본다.”

 

-어떤 식의 타협이 가능한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시의 극적인 타결처럼 백악관과 크렘린은 공개되지 않은 비밀조약 형식으로 미국의 우크라이나 나토 가입 불허 확약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영토주권 보장을 맞바꾸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상의 날개를 펴 가정법으로 말하자면, 미·러의 협상 타결이 상호 신뢰 구축으로 이어져 우크라이나 거래에서 양측이 손을 맞잡을 경우, 좀 더 구체적으로 미국이 우크라이나 크림반도를 러시아 영토로 인정하고 대러 제재를 해제할 경우, 이것이 21세기 국제질서의 새로운 지각변동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토니 블링컨(왼쪽) 미국 국무부 장관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이 21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사태 관련 회담에서 취재진에 포즈를 취한 뒤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제네바=AP연합뉴스 

◆미·러 손잡고 중국 견제하는 ‘역(逆) 닉슨 전략’

 

-현시점 미국에 필요한 전략은.

 

“20세기 후반 소련 팽창주의 야욕이 한창이던 1972년, 미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일종의 세력균형 차원에서 소련 사회주의 형제국 중국에 대한 접근을 시도했다. 미·중 비밀 교섭에서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북경의 요구를 수용하는 당근책을 통해 중국을 소련의 품 안에서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형성된 미·중 반소 전략적 연대가 소련의 몰락을 앞당기는 데 기여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1세기 전반, 이제 시대는 바뀌어 미국이 북경의 세력팽창을 억제하기 위해 중·러의 견고한 반미 연대에서 러시아를 중국으로부터 분리해야 하는 동인이 강해지고 있는데, 이것을 ‘역(逆·reverse) 닉슨 전략’으로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내색은 하지 않지만 중국이 미·러의 물밑 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숨죽여 지켜보는 이유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오히려 전기(轉機)가 될 수 있다는 의미인가.

 

“어둠이 깊으면 새벽이 가까워졌음을 의미한다. 위기는 기회라는 고전적 명제를 상기할 때 우크라이나 위기가 미·러관계 개선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러시아의 모험주의를 견제하는데 미국이 과도하게 힘을 투사할 경우 미·중 세력역전은 훨씬 더 빨리 다가올 공산이 크다. 오히려 미국이 글로벌 패권 유지 및 연장을 위해 러시아를 껴안아야 할 때라고 본다. 국익을 먹고 사는 냉혹한 국제정치는 미국의 대러 포용정책을 압박하고, 갈수록 그 강도를 더해가고 있다. 협상의 최종단계에서 미국이 러시아와 군사적 대결을 선택할지, 아니면 무력충돌을 막는 봉합 수준에서 현상 유지를 계속할지, 아니면 막판 타협점을 찾아 대러 관계 개선의 ‘기회의 창’을 열지 자못 귀추가 주목된다.”

 

●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러시아·CIS학과 주임교수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어과▲동 대학원 동구지역연구과 석사 ▲모스크바 국립국제관계대학교(MGIMO) 정치학박사 ▲한국슬라브·유라시아학회 회장 ▲한국정치학회 부회장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장 및 러시아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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