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번호 : 160058829

작성일 : 22.02.16 | 조회수 : 129

제목 : [기고] 얄타 2.0과 한반도 글쓴이 : 러시아CIS
첨부파일 첨부파일: 첨부파일이 없습니다.

美·러 ‘우크라이나 해법’ 놓고 긴장
러, 新냉전 통한 세력 확대 노려
냉전과 상호의존 사이 셈법 복잡
극동 안보에도 영향… 사태 주시해야
바로 오늘이라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있을 것 같다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지만 실제로 러시아의 침공이 일어날 가능성은 크게 높지 않다. 또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회원국 확대의 문’(Open Door Policy)을 포기할 가능성도 없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크라이나는 금년 6월에 개최될 마드리드 나토 정상회담에서뿐 아니라 앞으로도 상당 기간 나토에 가입하지 못할 것이다. 현재 러시아가 원하는 것은 ‘얄타 2.0’이라고 부를 수 있는 냉전 후 유럽의 안보 지도, 더 넓게는 세계의 안보 지도를 새롭게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 세계 안보 지형의 골자는 1945년 2월 크림반도의 얄타에서 미국, 소련, 영국의 정상 간 협의에서 나왔다. 당시 이들은 전후 독일의 처리 문제와 함께 소련의 극동 전선 참전과 그 이후 극동의 운명에 관한 비밀의정서에도 합의한다. ‘얄타 체제’(얄타 1.0)의 성립이다.
김석환 한국외대 초빙교수 국제정치학

‘얄타 1.0’ 체제로 유럽에서는 동독과 동유럽을 중심으로 한 소련의 영향권과 서독과 서유럽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영향권이 공존 혹은 대립했다. 일명 냉전 혹은 G2(주요 2개국) 시대의 성립이다.

이런 ‘얄타 1.0’ 체제가 크게 변동한 계기는 동서독의 통일과 소련의 해체로 상징되는 냉전의 종식이다. 동독과 동유럽에 주둔하던 소련군이 자발적으로 철수했고 옛 소련권 동맹 체제는 와해됐다. 이후 동유럽 국가들의 나토 가입과 유럽연합(EU)의 확대가 잇달았다.

1999년부터 2021년까지 유럽의 안보 지형은 나토를 권력 행사의 주요 수단으로 삼았던 미국의 의도에 의해 그려졌다. 미국과 나토는 ‘얄타 1.0’ 체제 때와 달리 유럽 안보를 러시아와 협상하지도 않았다. 보스니아 코소보 사태 당시 러시아의 강력한 저항이 있었지만 미국과 나토는 이를 묵살했고 그 이후에도 EU와 나토의 동진(東進)은 계속됐다. 사실상 ‘얄타 1.0’ 체제가 종식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얄타 2.0’ 체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포스트 냉전’ 시대에 러시아가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지가 불분명했고 유라시아의 동쪽과 중동 등지를 중심으로 새로운 세력 변화가 아주 거칠게 일어났기 때문이다. 바로 중국의 부상과 중동의 혼란이다.

나토는 확장했지만 미국과 유럽의 국제사회 내에서의 영향력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이란 등의 도전에 의해 정치·경제적으로 점점 약해져 갔다. G0 시대의 도래다. 바이든 행정부 들어 아프가니스탄에서 황망하게 철수한 미군의 모습은 G0 시대를 극단적으로 상징한다.

이 때문에 현재 우크라이나 사태를 놓고 러시아와 진행 중인 외교 회담은 유럽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막기 위한 평화 노력으로 묘사되지만 실제로는 ‘포스트 냉전’ 질서와 안보 지도를 러시아의 참여하에 새롭게 그리려는 세력 갈등의 문제라고 보는 게 옳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 대부분은 이를 푸틴의 역사 수정주의적 도전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러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얄타 1.0’ 체제를 러시아의 참여 없이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일방적으로 그리는 행위를 수정주의로 본다. 이는 미국과 소련이 냉전의 원인을 놓고 국제정치학계에서 벌인 오랜 논쟁과도 비슷하다.

문제는 ‘얄타 2.0’ 체제의 성립은 ‘얄타 1.0’처럼 미국, 러시아, 영국만의 의도대로 흘러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유럽에서는 ‘얄타 1.0’에 참여할 수 없었던 프랑스와 독일이, 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인도 등이 목소리를 높인다는 것이다.

‘얄타 2.0’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또 적어도 당분간은 신냉전도 오지 않을 것이다. 냉전과 상호의존의 중간지대에서 각국이 점점 더 복잡한 셈법을 주고받는 그러한 G0 시대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얄타 1.0’ 체제의 형성 때처럼 한반도를 포함한 극동의 안보 지형에도 영향을 미칠 비공개 합의가 물밑에서 진행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좀 더 거시적이고 동시에 더 깊게 보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석환 한국외대 초빙교수 국제정치학

 

  •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