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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3.01 | 조회수 : 154

제목 : [기고] 우크라 사태는 러·미 간 ‘적대적 공존’… 韓, 국익 기반 실용외교 나서야할 것 글쓴이 : 러시아C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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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인터뷰- 러 전문가 홍완석 교수]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원장
"우크라 전쟁 최대 패자는 우크라이나"
"미·러의 치밀한 이해득실이 대립 고조"
"로케이션 우크라이나, 독·프 조연, 英 카메오"


25일 우크라이나 하르키프 인근에 폭격을 당한 러시아군 탱크가 버려져 있다. 하르키프=EPA 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운명이 바람 앞 등불이다. 국제사회를 향해 “침공은 없다”고 일축해오던 러시아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우크라이나 동ㆍ남ㆍ북부 국경을 넘어 나흘 만에 수도 키예프 턱밑까지 밀고 들어왔다. 시민들이 결사항전에 나서면서 진군 속도가 다소 더뎌졌지만 대규모 지상군 진입이 임박했다.

우크라이나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것은 ‘강대국 러시아’의 무력 때문만은 아니다. 유라시아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서방과 러시아 간 지정학적 힘 겨루기가 배경이다. 유럽질서 재편과 글로벌 에너지 패권, 미중 전략경쟁 같은 국제 이해관계가 얽히고설켜 있다. 러시아 전문가인 홍완석 한국외국어대 국제지역대학원장은 27일 한국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서방과 러시아 등 주요 행위자들 사이 세력관계, 미러 양국의 치밀한 이해득실이 대립을 고조시키고 있다”며 “지정학적 구도에서 이들이 갈등을 통해 얻으려는 전략적 의도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강대국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 위치했다는 점에서, 우크라이나와 한반도는 비슷하다. ‘지정학적 도플갱어’라는 말까지 나온다. 홍 원장은 “우크라이나 운명을 결정하는 자리에 우크라이나는 보이지 않았다”며 “힘을 키우지 않으면 주변 강대국에 휘둘리고, 안보와 국익마저 침탈당하는 냉혹한 현실을 교훈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침공을 강행했다.

“국제사회가 예측했던 ‘합리적 추론’ 수준을 넘어섰다.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지역을 점령한 뒤 서방과 협상에 나설 가능성을 가장 크게 봤는데 최악의 경우를 택했다. 푸틴의 다음 수를 읽기란 쉽지 않다. 국내정치처럼, 국제정치도 생물(生物)이다.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체를 손에 넣으려는 생각이 없었더라도, 상황이 진척될수록 더 큰 욕심을 가졌을 수 있다. 반대로 격렬한 저항에 가로막혀 침공이 예상보다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화전양면(和戰兩面)으로 대화에 나서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 (이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대표단은 28일 벨라루스에서 만났다.)

-전쟁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 같나.

“러시아 경제 규모만 생각하면 장기전은 어렵다. 다만 냉전시기와 달리 변수가 생겼다. 중국이다. 세계 경제력 2위 중국이 러시아에 확실한 출구를 제공해준다. 베이징올림픽 기간 양국은 천연가스와 원유를 고리로 에너지 동맹을 맺었다. 장기전까지 고려했다는 의미다.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 제재에 꿈쩍도 안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푸틴은 고단수다. 2008년 조지아 전쟁과 2015년 시리아 내전 당시 ‘비용 대비 효용’ 전략을 구사했다. 우크라이나를 통째로 장악하면 국제사회에서 우군이 없어지는 뒤탈이 생길 거라는 사실을 잘 알 것이다. 이 때문에 우크라이나에 친러 정권을 세운 뒤 빠져나오거나 핀란드화(중립국화)안을 갖고 서방과 협상하는 게 그나마 나쁘지 않은 시나리오다.”

-미국과 서방은 직접 파병 옵션을 검토하지 않고 있다.

“직접 파병은 명분도 없고 실익도 없다. 우크라이나는 아직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 회원국이 아니다. 국제조약상 보호 의무가 없다. 러시아와 미국ㆍ나토의 직접 충돌은 3차 세계대전의 시작이기도 하다. 게다가 우크라이나를 두고 미러 간 투쟁은 ‘적대적 공존’ 성격도 지닌다. 양국 갈등이 연일 격화하지만 두 나라는 이미 서로 원하는 것을 얻었다. 최대 패자는 우크라이나다. 이번 사태는 미국 감독, 러시아 주연의 ‘유럽에서 일어난 블록버스터’다. 로케이션 우크라이나, 독일ㆍ프랑스 조연에 영국이 카메오다.”

-그럼 미국과 러시아가 얻은 것이 뭔가.

“지금처럼 전선(戰線)이 우크라이나를 넘지 않고, 위기가 적당히 유지되는 상황은 미국엔 활용 여지가 많다. 우선 안보위기를 고조시키고 나토 응집력을 강화해 유럽 내 통제권을 높일 수 있다. 러시아를 주적화해 미국 의존적 안보구조를 항구화하는 셈이다. 경제적으로는 미국 핵심축 ‘군산복합체’와 ‘메이저 에너지회사’의 이익을 강화할 수 있다. 유럽이 러시아산 에너지 의존도를 낮춘 틈을 파고들 수 있다는 의미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 올 11월 예정된 미국 중간선거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을 만회하려고 한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러시아는 전쟁이 진행 중인 현재 뭘 얻었나.

"러시아는 나토의 무차별 동진(東進) 차단 외에도 수확이 있다. 냉전 종식 이후 오랜 기간 중국에 가려져 있던 지정학적 존재감을 국제사회에 드러냈다.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며 영향력도 과시했다. 푸틴의 장기집권에 따른 러시아 내 피로감을 외부로 돌리고 국내 결속을 강화하는 계기도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한국에 주는 교훈은 뭔가.

“자강(自强)이다. 우크라이나의 국가 위기를 주변 강대국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스스로 힘을 키워야 한다. 물론 한미 동맹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고, 공고함을 잊어선 안 된다. 동맹 가치를 훼손시키자는 의미도 아니다. 다만 의존은 힘과 외교력을 약화시킨다. 동맹이 건강하려면 힘을 키우고 상대 의도를 잘 알아야 한다. 우크라이나의 페트로 포로셴코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정권이 보여주듯, 외교노선의 양자택일은 대외입지를 좁히고 국익을 침식시켜 안보위기를 초래한다. 한미, 한중, 한러 관계의 지정학적 숙명에 비춰 진영외교 같은 이분법적 사고로 외교선택지를 다루는 것은 국익과 안보에 이롭지 않다. 대외전략 방향성은 냉철한 국익 기반 '실용외교'가 돼야 한다는 게 이번 사태가 한국에 주는 가장 큰 시사점이다."

홍완석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원장. 홍완석 원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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